손톱달

by 모호

"네가 얼마나 바쁘게 살았는지 알고 싶으면, 손톱을 봐"


친구가 말했다. 나는 손바닥을 위로 한 채로 손가락을 구부려 손톱을 바라봤다.


"어? 언제 이렇게 많이 길었지? 손톱깎이 있어?"



'딱, 딱!'

나는 종이를 깔고 손톱을 깎았다. 커다란 톱밥 같은 손톱이 쌓여갔다.


"요즘 많이 바빠?"

"그냥 뭐"

"손톱이 긴 걸 보니 많이 바빴겠구만 뭘"


나는 보통 손톱을 바싹 깎는다. 내 친구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손톱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몰라?"

"또 이상한 소리 하네"

"얼마 전에 네가 피곤할 때는 손거스러미가 잔뜩 있었고, 작년에 그 이상한 놈 만났을 때는 매번 물어뜯겨 있었잖아"


나는 깎인 손톱이 쌓인 종이를 조심스레 접었다. 두리번거리며 휴지통을 찾자, 친구는 대신 버려주겠다는 듯이 종이를 받아가며 말했다.


"네 손톱이 만약 의식이 있었다면 SNS로 SOS신호를 보냈을걸?"


#또자람

#요즘주인상태별로

#그래도생존중


"그래, 내 손톱이 나를 더 잘 알고 있겠네. 네 손톱은 어때?"


친구는 손등을 위로해서 손가락을 쫙 펴고 손톱을 바라본다. 단정하게 정리된 모습이다.


"초승달 열 개가 예쁘게 떠있네"


나는 그 손톱을 보고, 어떤 그림이 하나 떠올랐다.


"야, 그거 초승달 아니야. 초승달은 아래쪽으로 둥글어야지. 저건 부분 월식이 일어난 달의 모습이야."


친구는 나를 어처구니없게 쳐다봤다. '또 저런다..'라는 표정이었다.


"월하정인 알지? 신윤복 그림"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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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딱 네 손톱 같은 모양이거든. 근데 평시에는 저런 모양의 달은 없단 말이야. 그래서 부분월식이 일어난 날에 그린 그림이라고 추측하고 있지"

"그래.. 우와와 그렇구나아~! 참 뜻깊은 이야기였어."


친구 건성으로 대답하며 손톱이 담긴 종이 뭉치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네가 방금 버린 손톱에도 인생이 새겨져 있듯이, 저 얇은 달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어. 들어봐. 그 밀회는 1793년 8월 21일 자정에 일어났어"

"응? 그건 어떻게 알아? 날짜가 적혀있지도 않구만"


나의 끈질김에 넘어간 친구는 나와 함께 월하정인의 밤에 숨어 양반과 기생을 지켜보고 있었다.


"달이 처마에 걸려있잖아? 그건 달의 남중고도가 낮은 여름이 밤이라는 거야"

"그래? 어쩐지 덥더라"

"그리고 신윤복이 활동하던 때에 월식이 두 번 있었어"

"응? 두 번? 그럼 어떻게 오늘이 8월 21인걸 알 수 있냐"

그게, 첫 번째 월씩 때 며칠간 비가 내렸다는 기록이 있거든"


1793년 8월 21일 자정, 크고 화려한 가체를 쓴 기생과 멋을 한껏 부린 양반이 헤어짐을 아쉬워하고 있다.


"스마트폰 없이도 만날 사람은 어떻게든 만나는구나"


친구의 산통을 깨는 말에 우리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너는 무슨 손톱에서부터 이런 이야기를 하냐."

"너는 손톱에서 인생을 이야기하잖아. 그렇듯 나도 과학 이야기를 할 뿐이야. 어쨌든 낭만적인 상황이잖아? "


손가락을 접으면 초승달, 손가락을 펴면 월식이 일어난 달. 어쨌거나 둘 다 모두 삶을 이야기한다. 접으면 나의 삶, 펴면 남의 삶.


손끝의 달은 삶을 머금고 자라나고, 수많은 이야기를 품은 채 우수수 잘려나간다. 그리고 또 다른 인생을 새기며 하얗게 자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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