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간호사

3. 진료지원? 간호사?

by 아직 간호사

얼마 전 대학 동기를 만났다. 임상에 진입한 이후 줄곧 수술실에서 있었던 녀석인데 해외 취업을 위해 이리저리 준비하고 있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비자인지, 영어인지는 모르겠지만 문전연결이 잘 안 된 탓에 공백기가 길어졌고 잠시간 머물 직장을 최근 구했는데 대학병원의 PA자리라고 했다. 불같이 끓던 올 초와 다르게 의정갈등의 화제성은 사그라들었지만, 전공의 복귀와 연계되어 꼭 풀어보고 싶었던 주제인 만큼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나름의 방식으로 현황과 미래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의정갈등이 고조되면서 병원들의 PA채용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전공의의 수와 PA의 수는 반비례 관계에 있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전공의의 역할을 PA가 대신할 수 있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공의는 PA로 대체되지 않는다. 모수가 적지만 그간 들어온 PA의 직무와 얼마 전 만난 동기가 말하던 PA의 직무는 거의 일치했다. 수술에 들어가고 전산으로 환자들의 처방을 내고 층별로 돌아다니며 드레싱을 하는 것은 전공의 개인이 맡기에는 벅찬 과업이다. 그렇기에 그 일을 조금은 덜어 줄 직역이 필요했고 그게 PA의 발단이었다. 시작부터가 독립적일 수 없는 구조인 데다 의료법 상의 권한 문제로 인해 PA의 한계는 분명하다.

더 큰 이유는 트레이닝에 있다. 병원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경험상 PA들은 신규들로 자주 채워졌다. 신규들에게 부서를 배정하듯 '너 PA 해' 이런 정도는 아니지만 선택권이 주어지는 상황들을 목격하곤 했다. 이미 4년간 책으로 배운 간호업무도 실전에서는 새로 배워야 할 것들 투성이다. 의사와 간호사의 임계점에서 신규가 해낼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배움과 업무수행을 동시에 해야 하기 때문이다. 태움이라는 부작용이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같은 직역이 맨투맨으로 붙는 '간호사'와 달리 PA에게 친절하게 뭔가를 가르치는 교수나 전공의는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스스로 책을 열거나 어깨너머로 요령을 깨우치는 방법이 아니라면 훈련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침습적인 시술에 대해 숙련된 간호사가 시행해도 된다는 법이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훈련이 이루어지지 않는데, 숙련된 간호사가 나올 수 있다는 말은 인과율에 어긋나는 소리다. 책임의 소재도 불분명하다. 매스컴에서는 대리수술이나 처방 같은 행위에 대해 간호사가 탐을 내는 듯 표현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핍진성이 떨어지는 시나리오와 다르지 않다. 책임의 문제 앞에서는 이익을 두고도 쉽게 모험하기 어렵다. 대표적인 예시가 휴대폰 성지다. 몇 번이고 구매자를 검증하거나 안 팔기도 하는 이유는 금전적 이익의 유혹보다 책임의 부담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익조차 없는 대리수술이나 처방을 하면서 책임을 마주할 거라는 생각은 소수의 망상에 가깝다. 다만 우려스러운 것은 그런 매스컴의 이야기를 통해 '간호사가 의사의 영역을 탐낸다더라'하는 생각을 대중이 가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상술한 법안에서의 '숙련된'이라는 표현도 몰이해를 부추긴다고 나는 느낀다. '숙련되어 봤자 간호사'라는 빈정 어린 말들도 이미 존재한다. 정리하자면 트레이닝을 통해 PA는 숙련되기 어려운 구조이고 숙련되었을지언정 자의식은 의사가 아닌 간호사에 있다. 필요에 의해 발생했지만 결국은 근본적으로 의사/간호사의 경계가 분명하고 넘을 생각이 없기에 PA는 전공의를 대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사태의 뒤틀림을 의사도, 간호사도 알고 있다. 별 수 없으니까 병원에 사정에 따라 현장이 누더기처럼 기워지는 모습을 볼 수밖에 없다. 공식적인 제도로 정착되지 못하고 땜질에 그칠 것이라 우려하는 건 소속조차도 일원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PA는 일종의 깍두기다. 법제화되지 못한 위치 탓에 진료부 소속의 직원으로 편입되는 일이 흔했다. 문제는 의정갈등 이후 간호부 소속으로 채용을 진행했다는 점이다. 앞으로는 간호부가 맡겠다는 일신상의 정리 같은 게 아니다. 같은 병원, 같은 진료과의 PA지만 누구는 진료부의 지시를 받고 누구는 간호부의 지시를 받는 촌극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안 그래도 깍두기인 입장에서 이런 상황은 소속감을 희박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진료부 입장에서는 간호부 소속 직원에게 이래라저래라 선뜻 말하기 어렵고 간호부에서는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지시하기가 쉽지 않다. 마지못해, 불편하게 같이 있는 셈이다.

그런 와중에 전공의들은 복귀했고 삽시간에 늘어난 PA들은 입지가 모호해졌다. '진료지원' 간호사로서의 역할로 돌아가면 그만이지만 문제는 그 수가 많아도 너무 많아졌다. 언제나 대목처럼 재고를 쌓아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몇몇 병원에서는 PA들을 간호사로 돌리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노동 법규나 이런 것들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근로계약에 명시된 업무를 병원의 의지대로 조정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총량은 보존되니까, PA에서 줄어든 인원은 곧 간호 현장에서 급증하는 인력이 된다. 매일같이 인력이 모자라다고 아우성치는 파트에 인력을 배분하면 좋겠지만 인건비를 고려한다면 병원 입장에서 100으로 돌아가는 부서에 150을 투자할 이유는 없다. 새로이 병동을 만들어 효용을 늘리는 편이 합리적이다. 다만 그 방안은 또 다른 신규 간호사들의 웨이팅을 늘릴 수밖에 없다. 과연 일을 잘 해낼지에 대한 물음표는 따라붙지만, 급여적인 문제에서 신규간호사의 채용은 확실한 이익이다. 그러므로 이 방안도 차선책쯤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근본적으로 이 일은 인력의 과충원으로 야기되었다. 논리적으로 과잉된 인력을 덜어내면 해결될 일이다. 한직으로 이리저리 뺑뺑이를 돌리면서 제 발로 나가게 유도하지는 않을지 우려스럽다. 정확히는 그러면서 한 켠으로 인력이 부족하다고 앓는 소리를 하며 새로이 누더기를 만들어내지는 않을지 우려스럽다.


동기와 얼큰하게 취한 다음날 전화로 집에는 잘 들어갔느냐 3차는 네가 계산했느냐 따위의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통화 말미에 녀석은 '11월에 우리 과도 인력 감축한대. 문자 왔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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