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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어색한 배낭, 말레이시아

2화_ 말레이시아 (D+4 ~ D+7) 세계여행 中

by 정재훈

D+4 말레이시아 (22.10.30) 싱가포르 -> 말라카 (말레이시아) 버스로 육로 국경 넘기


아침에 눈을 떠보면 개미가 팔에 올라와 있고, 바닥에도 잔뜩 기어 다니고 있다. 4일 차가 되니 많이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아무튼 오늘은 여행 첫 국가 이동을 하는 날이다.


처음으로 나라를 이동한다는 긴장감 때문인지, 아침부터 정신이 없다. 샤워를 하고는 수건을 챙겨가지 않아 휴지로 급하게 몸을 닦고, 몸이 젖은 채로 옷을 입었다. 더위에 옷은 금방 말랐고, 곧이어 다시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어제의 빨래가 마르지 않아 지퍼 백에 따로 담아서 가방에 넣었다. 빨래 쉰 냄새가 심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짐을 다 정리하고 이동 경로를 짜 보았다. 숙소에서 버스 터미널까지는 걸어서 15분. 가방을 메고 가야 하니 넉넉잡아 30분 정도 잡아야 할 것 같다.


준비를 다 마치고 마트에 갔다. 마트에는 사람이 너무 많았고, 남은 돈을 남김없이 쓰려고 하다 보니 시간이 꽤나 걸렸다. 초콜릿 바와 물 1.5리터를 2.35(싱) 달러에 골랐다. 버스 시간까지는 이제 15분이 남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계산대 앞에서 먼저 계산하길 부탁했고, 앞에 있는 여성분께서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그런데 계산에 세금이 붙으며 2.5싱으로 가격이 올라갔다. 시간이 촉박하니 어쩔 줄을 몰랐다.


그래서 나머지 0.1싱은 카드 결제가 되냐고 물어보려는 찰나에, 자리를 양보해 주신 부인의 남편께서 0.2싱을 건네어 주며 미소를 띠셨다. 너무 감사했다. 한국에서도 외국인이 이런 무거운 배낭을 메고 당황하며 돈이 조금 모자란다면 도와주었을까..? 작은 호의였지만, 너무 따뜻했다.


첫 여행지인 이곳 싱가포르에서는 사람들의 따뜻한 정을 많이 느낄 수 있는 4일이었다. 요즘 같이 힘든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정을 주고받으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우선 나부터, 내가 먼저 행동하려고 노력해야겠다.


아무튼 마트에서 나와, 조금 빨리 걸어서 버스 터미널로 이동했다. 도착하자마자 티켓을 받았고 버스에 가방을 실었다. 버스는 생각보다 편하고 시원했다. (무려 3.3만 원짜리 버스이니 편해야지. 물론 이 버스 편밖에 없긴 했었다.)

*싱가포르로 가는 비행기 티켓이 편도 티켓이었기에, 말레이시아로 넘어가는 버스는 한국에서 ‘12go’ 플랫폼을 통해 미리 예매해서 왔다.


사실 방콕(태국)으로 바로 이동을 하려고 했는데, 비행기 가격이 편도인데도 25만 원이 넘었다. 나는 돈이 없지 시간이 없는 것은 아니기에 말레이시아를 거쳐서 태국으로 갈 예정이다.


전날 미리 터미널 사전 답사를 왔었기에 어렵지 않게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내가 타는 버스가 맞는지 몇 번을 재확인했고, 문제는 없었다. 이제 말레이시아로 이동한다! 어제 바에서 만난 말레이시아 친구와 라비가 말라카는 음식과 바다 정말 좋다고 해서, 말라카는 아무런 정보가 없지만 기대가 되는 곳이다.


이어폰을 따로 챙겨 오지 않아, 버스에서 주변 소리와 풍경을 바라보는데 더 집중하고 있다. (시간이 잘 안 가지 않냐고 할 수 있겠지만, 이렇게 가방을 메고 힘들어보면 에어컨을 쐬며 푹신한 자리에 앉은 것만으로도 행복함을 느낄 수 있었다.)


싱가포르 국경에 도착했고, 여권만 챙겨서 나오라고 한다. 육로로 국경을 넘는 게 처음이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약간 걱정이 되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걱정되는 마음에 글을 쓰며 만약을 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사히 싱가포르 출국을 마쳤다. 뭐 여권과 지문, 얼굴만 확인하고 끝이다. 이제 입국이 문제다. 아마 아무 문제없지 않겠는가? 문제가 생긴다면 어쩌지. (아웃 티켓이 있어야 된다는 글들을 많이 봐서 걱정이 계속되었다.) 국경에서 걸릴 것이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지만 같이 탑승한 외국인들도 아무것도 모르고 온 것 같아서 괜히 안심이 된다.


말레이시아 입국 심사대에 들어섰고, 앞사람들은 문제없이 잘 통과해서 버스에 탄다. 앞사람들과 달리 나는 나가는 비행기 티켓이 없으니 어디로 가냐, 얼마냐 있냐 등등 여러 질문을 한다. 나는 내 가방 두 개를 보여주며 ‘말라카, 페낭을 각 3일씩 머무를 예정이고, 배낭 여행객이므로 모든 티켓을 살 수 없다. 일정을 보고 티켓을 살 것이다.’라고 말했더니 도장을 찍어 주었다. 그런데 이제야 안 사실은, 싱가포르는 도장(입, 출국)을 따로 찍어 주지 않았다. 전자 방식인 듯하다. 어쨌든 무사히 말레이시아 입국 수속을 마쳤다.


사람들을 다 태우고, 버스는 다시 출발한다. 그렇게 달려 말라카 도착 1시간 전, 휴게소에 내렸다. 말레이시아는 생각보다 습하지는 않은데 엄청 뜨거운 날씨이다. 버스가 다시 출발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길가에 있는 나무에 원숭이가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다. 동남아라는 것이 눈으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햇살이 너무 뜨거워 창문을 커튼으로 가리는데, 밖에서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난다. 창 밖을 보니 비가 엄청 쏟아지고 있다. 조금의 예고도 없이 소나기가 내린다. 그리고 2분 정도 지났을까 다시 엄청난 햇살이 버스 안으로 들어온다. 얘기로만 듣던 동남아 날씨를 직접 눈으로 보니 너무 신기했다.


조금 더 달려서 버스는 말라카에 도착했다. 터미널에서 시내로 가는 버스는 카드 결제는 안되고, 현금만 된다고 한다. 그래서 급하게 ATM을 찾아갔다. 영어가 없는 ATM이었는데,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서 도움을 청했다. 되게 젠틀한 남성분이 도와주었다. 그리곤 곧장 아까 터미널 직원이 알려준 17번 버스 정류장 쪽으로 갔고, ‘Ujong pasir 17’이라고 적힌 버스를 탔다.


같이 기다리던 한 가족이 버스를 타게 도와주었다. Mahkota Parade쇼핑몰에 내린다고 하니 알아 두었던 장소보다 가까운 곳에서 내리라고 한다. 덕분에 체력을 아낄 수 있을 것 같다. 외국인이 신기했는지 사진을 요청해서 함께 찍었다.


구글 맵도 좋지만 여기처럼 정보가 없는 지역이 더 많아질 것 같아서, 앞으로는 현지인들에게 물어보며 이동해야 할 것 같다. 이곳은 희한하게 차선이 전부 일방통행이다.


나를 도와준 가족은 먼저 내렸는데, 가는 길에 내게 몇 가지 팁을 주었다.

(‘트리마카시’ = ‘감사합니다’) (Asam pedaas에 가서 꼭 밥을 먹어 봐라.)


버스에서 내려 숙소까지는 걸어서 5분이다. 신호등이 보이지 않았지만, 돌아가면 20분씩이나 걸린다. 가방을 메고 20분까지 걸을 체력은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차가 오지 않을 때 이 길을 건넜다.


숙소에 도착했고, 저렴한 호텔이라 그런지 시설은 좋지 못했다. (그래도 싼 가격에 호스텔이 아닌 혼자 쓰는 방이어서 골랐다.) 숙소비는 현금으로 내야 했는데, 헤리티지 세금을 따로 내야 한다고 한다. 세금은 1박에 2링깃. 600원 정도 된다. 진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거짓말 같지는 않다. 와이파이가 되지 않는 방. 직원은 별로 일 하고 싶지 않아 보였다. 이름은 베스트 호텔이지만, 낫 베스트 호텔이었다. 하지만 가격이 모든 것을 납득시켜 주었다.


이동에 지쳐 우선은 씻고, 밀린 빨래도 하며 쉬었다. 저녁을 먹을 시간이 다가와서, 아까 버스에서 현지인이 알려준 아쌈 피다스를 찾아 나섰다. 식당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는데, 근처에 아무리 보아도 신호등이 없다. 이 도시 특징인 것 같다. 차 우선 주의. 걸어 지나가는 나를 박으려는 듯 빠르게 달리는 차들. 걸어가는 길에 Asam pedas JR이라는 곳을 발견했다. 사람들이 꽤나 있어서 이 집이나 찾았던 곳이나 같을 거라 생각하고 들어갔다. (나중에 찾아보니 아쌈 피다스라는 식당이 아니라 음식 이름이었다.)


치킨(닭가슴살과 날개)과 붕어(?)같이 생긴 민물고기를 Asam이라는 매운 향신료의 국물에 담궈서 준다. 직원이 밥이랑 같이 먹는 거라고 설명해 주었다. 계산은 5-6살 되어 보이는 어린 여자 아이가 하고 있다. 학교에 가고 한참 놀러 다닐 나이에 일을 하다니. 되게 일 하기 싫은 표정(쉴 때)이었지만 일할 때는 열심히, 밝은 표정으로 임한다. 난 저 때 뭐 하며 지냈더라. 그 외에 테이블 정리하는 친구들도 꽤 어려 보였다.


맛은 우리나라 카레 치킨 맛. 호불호가 없을만한 맛이다. 아쌈은 고춧가루의 깊은 매운맛이 아닌, 향신료의 매운맛이 느껴졌다. 밥에 비벼서 먹기엔 엄청 신 맛이 강하다. 그래서 생선과 치킨을 아쌈에 찍어 먹고 밥을 따로 먹었다. 손으로 먹는 사람도 있었고, 수저를 이용하는 사람이 있었다.(나는 당연히 후자.)


음식은 각각 10,12링깃이라 가격도 친절했다.(밥은 600원이었다.) 동남아시아라는 것을 고려할 때 엄청나게 저렴하지는 않았으나, 고기를 먹을 수 있었기에 합리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가게 바로 옆엔 음료를 파는 곳이 있었는데, 다들 하나씩 들고 다닌다. 나도 먹어보려 줄을 섰다. 달달한 음료를 찾다가 4링깃짜리 라씨?라고 적힌 음료를 시켰다. (인도 라씨와는 전혀 다른 음료) 아이스티 색이었고, 구수한 차에 열대 과일이 들어가 있었다. 더워서 최고의 선택이었다.


음료를 들고서, 야시장에 가기 위해 걸었다. 야시장 가는 길에는 강이 있었고, 보트도 지나다닌다. 특별한 것 없는 평범한 강이었다. 강가에 서서 영상을 찍다가 새끼손가락에 모기를 물렸다. (이게 추후 엄청난 여파를 가져온다.)


그 길을 따라 10분 정도 걸어 존커 워크 야시장으로 갔다. 야시장 길이는 엄청 길고 먹을 것도 많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구성으로 포장마차가 이어져 있었다. 가격이 엄청 싼 느낌은 없다. 냉장고 바지라도 사려고 둘러보았는데 평균 6000원 정도에 팔고 있다. 태국 가서 사는 게 쌀 것 같다. 둘러보는 중, 모기에 물린 손가락이 꽤나 많이 부어올라 더 이상 구경하는 건 무리였다. 얼른 숙소로 돌아가야 했다.


그래도 아쉬워서 가는 길에 또 다른 야시장에 들렀고, 시원한 빙수나 음료를 사려고 줄을 섰다. 현지인들이 ‘몰리’라는 초코 우유를 많이 먹길래 그걸 먹으려다 배를 채우려고 망고주스를 주문했다. 3.5링깃.(1000원 정도) 맛은 마트에서 파는 바로 그 망고 주스 맛이다.


숙소에 돌아왔는데, 방에는 와이파이가 안 된다. 직원에게 해결을 해 달라 부탁했지만, 안된다는 말만 연신 되돌아왔다. 결국 포기하고 1층 테이블에서 인터넷을 썼다. 벌써 11시다. 내일 아침에 다시 1층에 내려와서 여행 계획을 좀 세워봐야겠다.


방에 들어와 누웠고, 천둥번개가 마치 총을 쏘는 것처럼 빠르고 세게 내려친다. 이게 동남아인가.. 한국에서는 본 적 없는 날씨 변화다. 비가 주적주적 내리는 바깥, 가로등을 바라보니 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


방에는 콘센트가 딱 하나, 심지어 침대에서 가장 멀리 위치해 있었다. 모기를 두 방이나 물렸더니 진절머리가 나서 모기향을 일찍이 켰고, 침대와 이불은 심각한 수준까진 아니지만 깔끔하지 않아서 침낭을 꺼냈다. 베개에는 수건을 깔았다.


아무튼, 내일은 꼭 페낭 숙소와 버스 예매를 하자. 다음 일정 준비를 위해 3일은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우선 이곳은 2일만 계획하고 태국으로 가는 법을 알아봐야겠다.


*4일 차의 한 줄

지나고 보면, 걱정한 것보다 훨씬 아무것도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4일 차 정산

숙소비 : 25RM(7,423원)

식비 : 2.4싱(2,308원) + 31.5RM(9,353원)

교통비 : 98.5RM(28,800원)

총 합 : 57,237원



D+5 말레이시아(22.10.31) 말라카 2일 차. 비가 왔다 안 왔다 반복하는 하루.


오늘은 느지막이 10시 30분에 일어나서 여유롭게 나갈 준비를 했다.(일찍 일어났지만 누워서 조금 더 쉬었다.) 옷이 덜 말라서 냄새가 너무 많이 난다.(습해서 그런지 거의 마르지 않았다.) 오늘은 그냥 젖은 옷을 입고 저녁에 또 빨아야겠다. 이게 배낭여행의 어쩔 수 없는 점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1층에 내려가서 다음 버스와 숙소 예매 후 밥 먹으러 나가야겠다. 아, 주식도 좀 확인하고! 또다시 와이파이를 쓰기 위해 1층 로비에 앉았고, 더위와 한참을 싸웠다. 1시간 정도 검색을 해서 페낭으로 가는 버스와 숙소 2박을 예약했다. 어제부터 계속 모기에 물리고 있다. 최대한 조심한다고 했지만, 동남아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배가 딱히 고프지는 않았지만 시간상 무조건 먹어야 하는 시간이다. 나가서 미리 찾아놓았던 나시고랭을 파는 식당으로 갈 예정이다. 물을 챙겨서 곧장 밖으로 나왔다. 숙소 바로 아래, 기사식당 느낌의 뷔페가 있다. 현지인들이 포장도 하고, 식당에서 먹기도 하는 모습에 들어가서 메뉴를 둘러보았다.

현지 뷔페식당

음식들의 퀄리티는 꽤나 괜찮아 보였다. 미리 찾아 둔 식당 말고 그냥 여기서 먹기로 결정했다. 계산하는 사람들을 보며 식당 시스템을 살펴보았다. 나를 본 사장님이 내게 다가와 먼저 음식을 담아 온 뒤, 계산을 하면 된다고 알려주신다. 닭고기 위주로 담고, 계란 프라이, 족발, 돼지고기 볶음(?)을 골랐다.


사장님이 마실 것은 안 고르냐고 물어보셔서 라임이 그려진 주스를 하나 골랐다. 치킨 수프가 무료이니 가져가라는 아주머니. 음료가 3RM, 밥이 21RM이니 전부 다 해서 7200원쯤. 상당히 괜찮은 가격이다. 물론 위로 올라갈수록 더욱 저렴한 가격이 기다리고 있지만 말이다.(태국, 라오스, 베트남으로 갈수록) 싱가포르에서 비싼 음식을 경험해서인지 오늘 점심 값이 너무 싸게 느껴졌다.


치킨 수프는 우리나라 떡볶이 집 어묵 국물 맛이다. 닭 류는 생각보다 별로였고, 돼지고기가 예술이다. 사람들이 많이 가져가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오늘은 간단히 강 주변을 걸으며 카페에 가서 와이파이도 쓰고, 쉬려고 한다.


정해진 목적지는 없어서 우선 지도에서 가장 넓은 광장 쪽으로 걸어갔다. 네덜란드 교회(세인트 폴 교회)가 있었고,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특별히 볼 것은 없었지만, 언덕이 꽤나 높아 바람이 시원했다. 내 옆으로 동전을 막힌 철 창 안에(?) 넣으며 즐거워하는 청년 3명. 무슨 의미가 담긴 지는 모르겠지만 동전을 그 위에 올리면 좋은 것 같다.(물론 나는 하지 않았다.) 그저 이곳에 왔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을 뿐.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았고, 다들 내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했다. (내가 잘 찍게 생겼는지 나에게만 부탁을 한다.) 그들 중, 미국에서 온 멜라니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제 영어로 대화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고 느낄 찰나, 미국인을 만나니 또 식은땀이 난다.


그녀는 태국에서 1년간 여행을 하며 영어 선생님을 했다고 한다. 그녀는 나의 부족한 영어를 기다려주며 최대한 이해해 주려고 노력했다. 너무 고마웠다. 무슨 말을 하는지 전부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녀의 표정, 말투,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들을 유추하며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완벽한 문법이 대화를 더 매끄럽게 만들겠지만, 대화가 통하는 것이 언어의 첫 번째 역할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몸짓, 표정 또한 언어다.


그럼에도 30분 정도 대화를 하니, 머릿속이 하얘졌다.(영어를 너무 오랫동안 써서 그런 듯했다.) 대화가 끊이지 않을 것 같아 적당히 마무리하고, 다음 일정을 위해 연락처를 주고받은 뒤 각자 여행을 나섰다.


나는 또다시 목적 없이 말라카 강변을 따라 걷는 중이다. 이러다 나도 모르게 많이 걷게 될까 걱정은 되지만, 지금이 너무 좋아서 일단 걷는다. 매번 여행이 이렇다.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더우면 짜증이 나지만 바람이 불면 금세 기분이 좋아지고. 길을 잃으면 방황하다가도, 우연히 저렴하고 맛있는 식당을 발견하면 또 기쁘다. 내 여행에서의 행복은 별 것 없는 것 같다.


걷다 보니 여러 생각이 든다. 잘하는 것, 못하는 것, 좋아하는 것,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 이 중에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지금은 내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잘하는 것으로 돈을 벌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자고. 온전히 혼자 있는 시간이 처음은 아니지만, 별의별 생각이 다 드는 지금.


날이 흐려서 사진에는 잘 나오지 않았지만, 색감이 예쁜 건물들을 따라 걷고 있다. 가는 길에 모스크도 있어 잠시 구경하고, 현지인들이 많이 몰려 있는 Makan Avenue라고 하는 곳에 왔다. 이곳에서 가족들이 외식을 하는 듯 보였다. 빙수를 하나씩 들고 먹길래 나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미 2시간 이상 걸어서 지쳤고, 너무 더워서 괜찮은 카페를 찾아가는 것은 무리다.

Cendol

이 지역은 'HULU'인 것 같은데, 가게 이름은 ‘cendol kampung hulu’이다. 말레이시아의 팥빙수 'Cendol'을 팔고 있다. 생긴 것과는 다르게 호박죽과 팥 죽의 중간 맛이 난다. 또 특이하게 초록색 국수(?)가 올라가 있다. 식감은 물컹한 젤리. 푸딩보다는 약한 젤리인데 입에서 툭툭 끊어진다. 우유 빙수와 비슷해 입에서 녹았고, 엄청 차가운 느낌보다는 꽤 시원하다 정도였다.



말레이시아는 과일이 저렴하고 많을 줄 알았는데, 아직까지는 대형마트나 과일가게를 보지 못했다. 아, 이곳은 한국보다 물가가 3-40% 정도 저렴한 느낌이다. 40%도 많이 쳐 준 것이고 30% 정도가 맞겠다.



그리고 지금까지 느낀 말라카는 치안이 정말 좋고(도로 상황은 별로다.) 사람들 인심이 넘친다. 걷다 보니 어젯밤에 보지 못한 장소인 존 워커 로드에 왔다. 예상치 못하게 또 괜찮은 골목을 찾아와 구경하고 있다. 여행 며칠 되지 않았지만, 계획 없이 정보 없이 걷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장소들을 마주하고는 한다.


말라카 바다가 예쁘다는 얘기를 들어서 지도도 보지 않고 도로를 따라 무작정 바다 쪽으로 걸었다. 부자 동네를 지나, 끊긴 도로를 따라 다시 이동한다.


그렇게 정처 없이 바다를 향해서 걷는데, 한참이 지나서 드디어 사람들이 보인다.

해변 앞 가로수 길

끝내 넓게 펼쳐진 모래사장과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해변 뒤로는 큰 가로수가 멋지게 줄지어 있다. 메타세콰이어 길을 연상시킨다. 계획에 없던, 지도에도 정보가 없던 곳이지만 잘 온 것 같다. 까마귀가 떼를 지어 다니고, 그 모습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어린 자녀와 함께 연을 날리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 언제나 행복한 가족의 모습은 너무 예뻤다. 눈으로만 담기 아쉬울 정도로.(핸드폰 배터리가 나간 것이 조금 아쉬웠다.)



해가 저물어 가는 시간이 왔고, 다리가 아파 빨리 숙소로 돌아갈 방법을 찾았다. 핸드폰 없이 길을 찾아야 했기에 나는 조깅하는 할아버지를 따라갔다. 이제 구글 맵이 없으니 걸어왔던 기억에 온전히 의지 해야 한다.

그러다 길을 잃어 군부대 안으로 들어왔다. 지나가던 군인이 나를 보더니, 내가 길을 잃었단다. 그럼 길 알려주는 김에 좀 태워주지.. 웃으며 담배를 태우는 군인들. 지칠 대로 지친 나는 걷는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다. 숙소 근처에 도착하니 식당들은 이미 문을 닫았다.


그러다 우연히 슈퍼마켓을 발견했고 과자, 초콜릿, 물을 구매하며 물가를 다시 한번 보았다. 그리 저렴하지 않다 확실히. 물 가격은 7 일레븐이랑 엄청 극적으로 차이 나지는 않았다.


숙소로 가는 길, 다행히 근처에 맥도날드는 열어 있어서 곧장 들어갔다.

빅맥 세트를 주문했는데, 15.9링깃. 한국 돈 4800원이니 우리나라 7-8천 원 대비 30% 정도의 물가가 맞는 듯하다. 소스는 케첩이 아닌 칠리를 준다. 이럴 거면 너겟 시킬걸.. 감자튀김은 다 먹지 못해서 숙소에 들고 가려고 포장했다.


숙소로 돌아가, 내일 페낭으로 갈 준비를 하는데 멜라니가 저녁에 보트를 타자고 연락이 왔다. 보트는 30링깃, 9천 원이라고 한다. 나는 더 이상 걸었다가는 오늘 너무 무리하는 셈이라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친구를 만들 기회가 있을 때 놓치는 것은 나중에 후회가 될 것 같아 나가기로 결정했다. 돈과 체력도 중요하지만, 경험이 더욱 중요한 이번 여행이었기에 조금만 더 무리를 해 보기로 했다.


멜라니의 숙소까지는 꽤나 거리가 있어서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택시 가격은 5링깃이라 큰 부담이 없었다.) 택시비를 내려고 지갑을 보니, 10링깃도 남아있지 않았다. 돈을 아껴 쓴다고 썼는데 왜 이리 부족한지. 일단 지금 당장 돈이 필요하지는 않으니 내일 다시 계산을 해 보아야겠다.


생각보다 택시가 늦게 도착해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 택시 어플 그랩은 첫 이용할 때 얼굴 인증하는데 안경과 마스크를 쓰면 잘 안된다.(여기에 5-10분을 소비한 듯하다.) 멜라니와 만나자마자 우리는 크루즈 표 판매소로 걸어갔다. 나는 길을 미리 찾아보지 않아서 멜라니의 핸드폰을 보고 걸었는데, 그녀는 길치였다. 구글 맵을 따라 걷는데도 길을 찾지 못한다. 그래서 내가 이 길이 맞냐고 물어보았고, 잘 모르겠다며 뜬금없이 나에게 다 맞긴다고 한다. 내가 멜라니의 핸드폰을 건네받았다. 어찌저찌 도착한 곳에는 마지막 배가 출발 직전에 있었다. 우리는 배를 향해 뛰어가며 멈추라고 소리쳤지만 무심하게 떠나버린다.


결국 우리는 마지막 배를 놓쳤다. 그래서 그냥 강가나 걷자고 했다.


밤인데도 너무 더워서 편의점에 마실 것을 사러 갔다. 이동하는 동안 동남아의 도로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 또한 이곳이 신호등이 거의 없고, 오토바이가 많아서 위험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근처에 7 일레븐이 있어, 들어가 맥주 한 캔을 골랐다.

저녁 늦게 불렀는데 나와주어서 고맙다며 내 것까지 함께 계산을 해 주었다.


우리는 강가 어느 한 편에 자리를 잡아 앉아서 대화를 나누었다.

멜라니와 나는 한 살 차이였고, 그녀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친구였다.(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것 사이에서의 고민과 내 또래가 느끼는 비슷한 감정들) 그래서인지 영어가 부족해 원활한 소통이 되지 않았음에도 서로 무슨 말을 하는지 빨리 이해할 수 있었다.


직업에 대한 이야기, 미래 삶에 대한 이야기 등등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국에 살고 있는 멜라니였지만, 결국 사람 사는 것 다 똑같았다. 돈을 벌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 그래도 나와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그녀는 무언가 결정을 하는 데 있어서 본인의 의견이 가장 중요했다는 것.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닌 스스로의 판단으로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었다.


나는 대한민국이라는 사회 속에서, 정해진 길을 따라서 걷기 바빠 정작 ‘나’를 돌아보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었던 것 같다. 멜라니는 대학을 다닐 때도, 본인 전공이 아닌 철학 수업에 더 흥미를 느껴서 전공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다고 한다. 취업을 위해 전공 수업 이외에는 관심도 없던 나를 반성하게 된다.


나도 말이 많지만, 멜라니도 엄청난 수다쟁이다. 말이 엄청 많다. 나보다 수다쟁이여서 그녀를 멈추는 방법은 내가 숙소에 가는 것뿐이었다.(이미 시간이 새벽 2시가 넘었다.)


그래서 급하게(?) 대화를 마무리하고 숙소로 돌아갔다.


내일은 아침 버스를 타야 했기에 짐을 미리 싸 두고 서둘러 씻고 잠에 들었다.


*5일 차의 한 줄

계획대로 되지 않아서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5일 차 정산

숙소비 : 25RM(8,300원)

식비 : 49RM(16,268원)

교통비 : 12RM(3,984원)

총 합 : 28,552원



D+6 말레이시아(22.11.01) 말라카를 뒤로하고 페낭으로 이동.


아침 8시, 알람이 울리기 1분 전에 눈이 떠졌다. 어제 늦게 잤기도 하고, 짐을 미리 싸 두었기에 여유가 있어 10분만 더 자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잠시 뒤, 뭔가 이상해서 시계를 봤더니 8시 45분이다. 버스 출발 시간까지는 1시간 15분 남았다. 나는 대충 양치만 하고 서둘러 택시를 불렀다. 택시 안 타고 시내버스 타려고 미리 다 알아 뒀는데. 10분의 달콤함에 버스보다 7배 비싼 택시를 타게 되었다. 택시는 10링깃. 하지만 선택지는 없었다.


근데 문제는 택시 기사가 내 호텔을 못 찾는다. 택시 요금 덤탱이를 싱가포르에서 겪어 봤기에 설마 같은 수법인가 싶었다.(픽업 위치에 늦으면 추가 요금이 있다.) 뒤늦게 택시를 탔고, 택시에서 내렸을 때는 9시 47분이었다. 나는 혹시 늦을까 뛰어서 매표소로 갔다. 매표소도 한 번에 찾지 못해 물어 물어서 갔고, 창구 앞에서도 헤매다 본능적으로 내 줄을 찾아가서 기다렸다. 가격은 0.7링깃 추가 요금이 있었다. (예약 건당 한 번) 그리고 현장 티켓 가격은 48이다. 나는 온라인에서 52를 냈다. 그리고 다행히(?) 내 버스 시간은 10시가 아닌 11시였다.


결국 나는 택시비 3000원과 티켓 비용 1200원을 동시에 날렸다. 그래도 그 덕분에 늦지 않게 도착했고, 와이파이도 쓰며 편안함을 얻었으니 만족한다. (5천 원으로 편안함을 구매한 셈 치자.) 배가 아파왔고, 도저히 참을 수 없어 화장실을 갔는데 돈을 받는다. 0.3링깃 100원 정도. 근데 이번엔 휴지가 부족하다. 맥도날드에서 휴지를 충분히 챙겼다고 챙겼는데 모자란다. 그래서 휴지를 또 0.4링깃을 주고 구매했다.(이 뒤로는 항상 가방에 충분한 휴지를 챙겨 들고 다니게 된다.)


먹을 것을 더 살까 고민했는데, 지금 가지고 있는 양으로 충분할 것 같아 따로 구매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다 되어 버스에 탑승했고, 11시 2-4분쯤 가차 없이 출발한다. 인원 확인도 없이. 늦었으면 어쩔 뻔했나 싶다.


버스에 타자마자 배가 고파서 초코 바와 과자를 먹었다. 일찍 일어나서 그냥 밥을 먹고 올걸.. 하는 후회 중이다. 버스 내에 기침을 계속해서 하는 현지인이 있어 더운데도 마스크를 썼다. 의자는 너무나 불편해 팔다리가 저려왔다. 그 덕에 자다 깨다 여러 번 반복했다. 휴게소에서 먹을 것을 먹어도 되었지만 언제 출발할지 몰라 불안해서 먹지 않았다. (결국 1시간 뒤에 출발했고, 괜히 굶기만 했다.)


휴게소를 지나 페낭에 들어서자마자 교통 체증에 시달리는 중이다. 오늘은 숙소에 들어가서 일단 씻고 밥부터 먹을 생각이다. 오후 6시 도착 예정이었는데 벌써 6시 42분이다. 아마 숙소에 도착하면 8시가 좀 넘을듯하다. 버스를 타고 갈 예정인데, 40분쯤 걸릴 것 같다. 하지만 이 정도 교통체증이면 1시간은 가뿐히 넘겠다.


*갑자기 생각나서 적는데 여기 사람들은 인도계열 사람들이 많아 사원도 많고, 여성들의 거의 대부분 히잡을 쓴다. 쓰지 않은 사람들은 대부분 관광객뿐이다. 모스크와 힌두 사원이 같이 있는 신기한 지역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이 화이자로 보이는 스마트폰을 사용한다. 또, 삼성 매장은 보이지 않았다. 애플 매장은 있었지만 사람이 한 명도 없고, 주위에 아이폰을 들고 있는 현지인은 볼 수가 없었다.


페낭은 도로를 하나 두고 부자동네와 가난한 동네의 티가 팍팍 난다. 아무튼, 버스에서 내려 현지인들에게 길을 물어보며 301번 버스 정류장을 찾았다. 버스 표지판의 숫자가 애매하게 쓰여 있어 같이 기다리던 현지인에게 계속해서 물어봤다. 확실히 말라카보다 외국인들이 많이 보이고, 특히 흑인 여성들이 많다. 섬 자체가 큰 아웃렛 느낌이다. (쇼핑몰들이 계속 줄지어 있다.) 버스 가격은 2링깃.


버스로 가는 길에 보이는 높은 건물들은 대부분 넓은 평수이거나 호텔, 리조트이다. 절대 현지인들의 실질적 거주지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옆으로는 허름한 건물들이 꽤나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도 리틀 인디아가 있다. 페낭에는 인도 사람들이 같이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트가 꽤나 많은 게 인구가 말라카보다 훨씬 많게 느껴진다.


갑자기 문득 여행을 꼭 계획하고 올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전날, 혹은 지나가는 길에 새로운 여행지를 발견하고 찾을 수 있다. 어차피 전부 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욕심을 버리고 내가 지금 보고 느끼는 것을 최대한으로 하는 게 더 나을 때가 많다고 생각한다. 너무 좋았다면, 혹은 너무 아쉽다면 나중에 또 오면 된다. 다음을 걱정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이번 여행에서 느끼는 중이다.


*뜬금없이 여행 중간중간 드는 생각들을 기록하고, 이 글에 계속해서 적어 나갈 예정이다. 사실 여행 일지를 적기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사람인지 되돌아보며 '나'를 알아가기 위함으로.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가는 '나'의 모습을 이 글에 기록하고, 스스로를 돌보기 위함으로. 적어도 이 순간, 계획에 없던 새로움을 두려움보다는 즐거움으로 받아들이는 내 모습을 알아차린 것처럼.


숙소에는 9시가 다 되어서 도착했다. 저렴한 호스텔이라 바퀴벌레가 복도를 기어 다니지만 불만은 없다. 오늘 제대로 한 끼도 못 먹어서 가방도 풀지 않고 밥을 먹으러 나갔다. 시간이 늦어 그냥 문이 열린 곳으로 가야 한다.


숙소 근처에 사람들이 꽉 차 있는 식당이 있길래 들어가서 메뉴판을 보았다. 단 한 글자도 이해할 수 없었고, 다행히 뷔페식이라 골라서 먹으면 된다. 배가 고팠던 탓에, 가격은 물어보지도 않고 이것저것 막 담았다. 아무리 비싸도 만원은 넘지 않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맛을 느낄 새도 없이 미친 듯이 밥을 먹어 치웠다. 다 먹고서, 계산을 하려고 나가니 44링깃이란다. 아직 환율 계산이 잘 되지 않아서 ‘이게 얼마지..?’ 하며 계산기를 두들겨보니 12,000원이다. 나는 가격을 보고서는 화들짝 놀랬다. 가격을 물어보며 접시에 담았어야 했는데.. 그래도 일단 내가 먹은 음식이니 따질 것도 없었다. 그래도 계속해서 가격에 의심을 거둘 수는 없었다. 한국에서 한 끼 먹는 가격과 비슷하다니. 여기 말레이시아 아니야?


현지인들도 많이 먹는 식당이라 믿었는데. 아무래도 덤탱이를 쓴 것 같다.


어찌 되었던 다시 한번 말레이시아의 물가가 싸지는 않다고 느꼈기 때문에, 서둘러 태국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계산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사장님에게 상황 설명을 하니, 사기를 당한 것 같다고 한다. 그 식당은 관광객들에게 돈을 더 받는 곳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가격을 물어보지도 않고 고른 내 잘못이 크다. 다행인 건 오늘 한 끼도 안 먹어서 이 정도 가격은 부담은 크게 되지 않는다. 내일부터는 더 조심하면 되니까.. 오늘을 교훈 삼아 더 신중해야겠다.


*6일 차의 한 줄

항상 가격을 먼저 물어보고, 여러 번 확인하자.


*6일 차 정산

숙소비 : 19.5RM (5,790원)

식비 : 42.5RM (14,110원)

교통비 : 64.7RM (21,480원)

총 합 : 41,380원



D+7 말레이시아(22.11.02) 페낭에서의 첫 아침. 내일 하루 더 있어야 할까?


아침 8시, 숙소가 너무 건조해서 목이 너무 아팠다. 또, 모기 때문에 잠도 설쳤다. 일어나자마자 오늘 일정과 내일 일정 계획을 세우기 위해 로비로 나와 와이파이를 썼다. 그런데 와이파이가 안 되었고, 다른 숙박객들도 당황하며 허겁지겁 밖으로 나간다. 방법을 찾는 동안, 로비에서 또다시 모기에 물렸다. 그래서 곧장 방으로 들어가 팔토시를 했고, 동남아에서는 꺼내지 않을 것만 같았던 셔츠를 꺼내 입었다.(더워도 모기에 물려 고통받는 것보다는 나았다.) 유심 없이 여행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


일단 와이파이를 쓰려면 백화점 같은 곳에 가야 할 것 같다. 나가기 전에, 로비에서 쉬고 있는 대만에서 온 친구 ‘첸 민’과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영어를 잘 못하는 그는 나와 구글 번역기로 대화를 나누었다. 아무래도 번역기로 한 번 거쳐서 대화를 하다 보니, 대화가 느리고 이해가 어려웠다. 그래도 세상 참 좋아졌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우리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좋은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대화를 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2시간이나 흘렀다.


와이파이가 되지 않아서, 핸드폰을 보지 않고 새로운 친구와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오히려 좋았다’라는 말이 어울리는 시간이었다.


대화를 더 나누고 싶었지만 오늘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인사를 하고 호스텔을 나섰다. 한 끼도 먹지 않았고, 벌써 12시가 넘어서 밥부터 먹어야겠다.


버스 타러 가는 길, 중국 음식점을 보았다. 어제 숙소 사장님이 꼭 먹어보라던 메뉴가 있는 길거리 노포였다. ‘mince meat noodle’이라는 가게가 내게 꽂혔고, 국수 한 그릇을 주문했다. 싱가포르에서 국수 간이 조금 짰던 것을 기억해서 소금을 조금만 넣어 달라고 요청했다. 미디움 크기 가격은 5.5. 코카콜라는 한 잔에 2.6링깃. 어제 사기를 당했던 식당을 생각하니 정말 천국이 따로 없다. 어제 가격의 1/5 이라니.. 진짜 속상하긴 하다.


밥을 먹고 있는데 밖은 비가 쏟아진다. 페낭을 비 때문에 즐기지 못하고 떠날까 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비가 사그라들어, 백화점으로 가서 와이파이를 사용해 버스와 숙소를 알아보았다. (프랜차이즈 가게들의 와이파이는 전부 비밀번호가 있었고, 백화점 비밀번호 하나가 인터넷이 잡혀서 더위를 참고 밖에서 인터넷을 쓰고 있다.)


버스 정류장을 검색해서 찾아갔는데, 시내버스 정류장이었다. 나는 내일 국경을 넘어야 해서, 구글 맵에 ‘익스프레스’를 검색했다. 다행히 근처에 여행사가 있었고, 알아보니 45링깃에 태국 핫야이를 가는 버스가 가장 저렴했다. 아침 8시와 12시 버스가 있었는데, 도착해서 헤멜 것을 생각해 8시 버스를 예약했다.


12go 어플에서는 65링깃이었지만, 현장에서 결제해 20링깃을 싸게 살 수 있었다. 이걸로 어제 음식 손해 본 것을 메웠다고 생각해야겠다.


이제 얼추 일정이 정해졌다. 오늘 일정은 페낭 힐에 가는 것이다. 페낭 힐에 가는 버스 시간이 따로 안내되지 않아서 와이파이가 되는 장소를 찾아서 다시 짧은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터미널 바로 앞의 해피 마트에서 물과 빵을 하나 샀다. 여기서도 가격을 몰라 세금을 제외한 가격을 내밀었는데, 동전이 부족해 당황하니 직원이 괜찮다며 가져가라고 한다. 얼마 되지 않는 돈이었지만 그 마음씨에 감동을 받았다.


곧이어 버스가 도착해서 바로 탑승했다. 버스를 타서 영수증을 가방에 집어넣는데, 카드 지갑이 없다. 원래 넣어 두었던 곳은 또 지퍼가 열려 있다. 식은땀이 난다. 오늘 챙겨 온 짐이 너무 많은 탓인 것 같다. 차분히 가방 안의 내용물을 빼고 다시 찾아보았다. 다행히(?) 가방이 아닌 바지 왼쪽 주머니에 있다. 앞으로는 가방, 특히 자물쇠 걸려있는 곳 안에 넣어야겠다. 또 여행에서 필요한 주의점을 하나 배웠다.


그나저나 이 버스 창문을 열 수 없다. 그리고 온몸이 저릴 정도로 진동이 울리는 버스.

30분쯤 달려 페낭 힐에 도착했다. 도착한 버스에는 나만 앉아있었다. 구글 맵 업로드가 늦어 위치를 몰라 어쩔 수 없이 앉아 있었는데, 기사 아저씨가 먼저 내리는 것을 보고 도착한 것을 알았다. 내려서 챙겨 온 빵과 남은 물을 마시고, 그 옆에 냉장고가 있는 카페에서 물을 새로 하나 구매했다. 날씨가 더워서인지 시원한 물을 마시고 나서야 살 것 같았다.


트램 티켓을 사러 가는데, 직원들이 굉장히 친절하다. 관광지라서 그런지 영어도 꽤나 잘한다. 티켓은 왕복이니 절대 분실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티켓에는 바코드가 있어 물에 젖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고.) 평일이라 사람이 많지 않아서 편하게 올라갈 수 있었다.


상당히 가파른 경사를 빠르게 이동하는 트램. 정상에 도착했는데,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명확하게 표시가 되어있지 않아 사람들을 따라 무작정 걸었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정말 멋있다. 황금사원(모스크)도 있다. 별 것은 없었지만 그냥 그곳의 분위기가 주는 느낌은 엄청나다는 건 분명했다. 무작정 걷다 보니 내가 가는 길에는 아무도 없었고, 심지어는 조금 무섭기까지 했다. 사람은 없었지만 길이 나 있었고, 원숭이도 볼 수 있었다.


우연히 다른 길로 오게 되었는데, 원숭이도 보고 완전 운이 좋다. 걷다가 갈림길을 만났는데, 다행히 처음 트램을 탔던 장소로 갈 수 있었다. 더위에 지쳐갈 즈음 도착했고, 카페에서 쉬다가 내려갈까 고민했다. 하지만 내 소중에 돈이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곧바로 내려갔다. 트램을 타고 내려가, 버스 정류장에 섰다. 204번 버스를 눈앞에서 한 대 놓치고, 다음 버스 배차 30분을 기다리며 블로그를 작성했다. 그 순간 분명히 느꼈다. 여행을 하면서 일지를 적는 것도 벅찬데 블로그까지는 무리라고.


30분 뒤,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는 아까 내가 탔던 방향으로 가지 않았고, 중간에 방향을 틀었다. 그래서 급하게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 걸어서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밥을 먹으러 아침에 왔던 식당으로 갔다. 이곳은 음료가 2.6링깃인데, 테이블 값 대신으로 음료 가격을 받는다고 한다. 자리에 앉아 음식을 기다리는데, 사람들이 몰려왔다. 맛집을 잘 골라온 것 같다. 이곳은 숙소 옆에 있는 푸드 센터이다. 오늘은 중국(?)식 치킨 돌솥 덮밥을 주문했다. 원래 굴 전을 먹고 싶었는데 갑작스레 굴 전 사장님이 발에 피를 흘리고 있고, 영업이 중단되었다. 아쉽다 진짜 맛있어 보였는데. 오늘 일정이 바빴는지 피곤하다. 밥 먹고 전망대에 갔다 와서 씻고 얼른 자야겠다.


숙소에는 악취가 심한 아저씨가 있는데 견디기가 힘들다. 그래서 짐만 간단히 정리하고 나왔다. 리틀 인디아를 거쳐 빅토리아 여왕 전망대로 간다. 가는 길에 어제 못 봤던 야시장(외국인이 장악한)이 있었는데, 여기서 밥을 못 먹은 게 좀 아쉽긴 하지만 앞으로 남은 일정에 야시장은 많으니 괜찮았다.

계속 걸어서 바닷가로 나갔다. 바다를 보고 있으니 지친 몸이 금세 풀리는 듯하다. 현지인들 밖에 없는 거 보니 이곳은 꽤나 유명한 장소 같다. (지도에 따로 유명한 장소라고 표기되어 있지는 않았다.)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 먹을 것을 사 와서 바다를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는 커플들. 너무 평화로운 곳이다. 오늘도 역시나 다리가 아플 정도로 걸었지만, 왠지 모르게 지치지는 않았다. 페낭은 딱히 할 건 없는 도시였지만, 태국에 넘어가기 전 쉬어 가기 좋았다.


이곳이 독특한 게, 분리수거를 따로 하지 않고 쓰레기통 하나에 모든 쓰레기를 넣는다. 그리고 공기가 엄청 탁하다. 공장이 많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몸소 느껴질 정도일 줄이야. 마스크를 썼는데, 안쪽이 거멓게 물들었다. 왠지 숨쉬기가 힘들더라니. 내일은 버스 시간에 맞추려면 6시에 일어나야 한다. 악취 심한 아저씨 때문에 쉽게 잠에 들 것 같지는 않다. 방도 엄청 건조하고, 냄새도 심하고, 잠을 잘 수 있는 환경은 아닌 것 같다.


*7일 차의 한 줄

페낭은 페낭 힐만 가 보면 될 듯.


*7일 차 정산

숙소비 : 19.5RM (5,790원)

식비 : 26.5RM (8,798원)

교통비 : 4RM (1,188원)

관광비 : 30RM (9,960원)

총 합 : 25,736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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