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_ 싱가포르 (D+1 ~ D+3) 세계여행 中
2022년 10월 27일, 드디어 여행을 시작하는 날이다. 아침 10시 비행기여서 인천 공항에 7시쯤 도착했다. 캐리어가 아닌 배낭으로 떠나는 첫 여행이라 짐을 맡기는 것부터 너무 떨리고 긴장된다.
편도 티켓으로 싱가포르에 입국해야 하기에 준비한 서류도 손에 꼭 쥐고 긴장된 상태로 체크인을 진행했다. (편도 티켓에 대해 따로 질문을 하지는 않았고, 입국 신고서만 보여달라고 했었다.)
체크인을 마치고서 당분간(?) 먹지 못할 한식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 이른 아침이라 연 곳이 많이 없어 선택지가 별로 없었고, 결국 순두부찌개를 먹었다.
밥 먹고 쉬다가 체크인 시간이 되어서 이제 게이트로 들어가야 한다. 엄마와도 인사를 하고, 이제서야 떠난다는 느낌이 든다. 탑승구 앞에 앉아서 싱가포르 도착한 뒤, 숙소에 어떻게 갈지 찾아보고 숙소 위치도 다시 한번 저장했다.
비행기를 타기 전, 미래의 나를 위해 지금 드는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25살(만 24살),
대학 졸업을 한 학기, 취업을 목전에 두고
세계여행을 떠난다.
남들보다 열심히 돈을 벌고, 모은 것이
이렇게 세계 여행을 떠날 기회를 주었다.
나의 일상을 모두 멈추고 떠나는 여행.
사실 너무 무모한 도전이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하지 못할 도전이다.
약 10개월을 혼자서 17kg, 10kg 가방만 메고 떠난다.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을 것이고,
외롭고 힘든 여정일 것이다.
그래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땐,
나도 한 뼘 성장 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남들보다 1년 뒤처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이런 생각들을 뒤로하고 떠난다.
싱가포르를 출발로,
동남아-중앙아시아-유럽-남미-일본을 거쳐 다시 한국으로 돌아 올 예정이다.
한 층 더 성장해서 돌아오길.
글로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내가 진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마음인지 더 잘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매일 여행 일지를 적기로. 단순 일기가 아닌, 나의 하루를 모두 기록하는 것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무엇이든 해 보려고 떠나는 여행인 만큼 꼭 여행 끝까지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켜보려 한다. (이번 여행에서만큼은 생각만 하는 사람보다는, 무엇이든 해 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
10시 20분, 비행기에 탑승했다. 이제는 정말 한국을 떠난다!
6시간의 장기간 비행기는 처음이어서 너무 설레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기내식도 나왔다. 도착하면 오후 4시쯤이라, 첫날부터 돌아다니기 위해 쪽잠을 자 두었다. 목베개를 챙겨 왔지만 별로 편하지 않았다. 그리고 물병을 가져오지 않은 건 실수다.. 비행기 시간이 꽤나 길어 물을 자주 줄 것 같았는데 2번밖에 주지 않았다.
오후 4시, 드디어 싱가포르 창이 공항에 도착했다. 편도 입국이라 걱정을 했는데 백신접종도 확인하지 않고, 여권과 얼굴, 지문만 확인하고 입국할 수 있었다. 찾아본 정보와 달라서 당황스러웠지만 결론적으로 잘 넘어가서 너무 홀가분하다. 줄이 너무 길어서 수속을 마치고 나오니 내 가방만이 수화물 찾는 곳에 있다. 가방을 찾고, 게이트를 나오자마자 돈을 뽑으러 ATM으로 갔다.
공항 ATM을 사용했는데, 네이버에서 환전 관련 블로그에서 본 정보와 수수료는 비슷했다. 수수료는 0.2~3달러 수준이니 거의 없다고 보면 될 것 같다. 50 싱가포르 달러부터 인출이 가능했다. (싱가포르는 거의 카드 사용이 되기 때문에 현금이 딱히 필요는 없다고 들었지만 혹시 몰라 뽑았다.)
날씨가 엄청 후덥지근하다. 공항철도를 타고 숙소에 가려고 하는데, 공항 밖으로 나오자마자 온몸이 다 젖었다. 이때부터였을까 힘든 일정의 시작이..
공항에서 시내로 가려면 MRT를 타야 하는데, 꽤나 복잡하다.
구글 맵에 MRT 위치를 보고 한참을 걸었는데, 아무리 걸어도 나오지 않아서 가방을 메고서 40분을 걸었다. 여행 출발 첫날부터 쉽지 않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직원에게 물어보면 될 것을, 무슨 생각이었는지 혼자서 찾아가겠다고 그 무거운 가방을 메고 생 고생을 했는지. 아마 영어로 말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게 아닐까..?
아무튼 나는 그렇게 1 시간쯤 고생을 하고, MRT 타는 곳으로 이동했다.
터미널 3에서 내려서, MRT까지 가는 방법은 꽤나 어려워 간단히 정리를 해 본다.
1. 스카이라인 타고 T2 trerminal로 이동.
2. ‘MRT to city’ 표지판을 따라간다. (꽤나 거리가 된다.)
3. 가려고 하는 방향으로 MRT를 탄다.
교통카드를 사려고 했는데, MRT가 빠르게 들어오고 있다. 그래서 혹시 모를 가능성에 챙겨 온 트래블로그(여행용 체크) 카드를 찍어 들어갔는데, 다행히 잘 된다. 전철을 타고 이동하는 내내 미리 저장해 놓은 사진과 정거장 이름을 비교했다.
인터넷 없이 숙소까지 가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았는데, 구글 맵 오프라인 지도도 생각보다 잘 되었고 미리 정보를 찾아둔 덕에 어렵지 않게(?) 이동할 수 있었다.
숙소가 있는 역에서 내려, 숙소를 찾기 위해 또다시 걸었다. 수달이 길가를 다닌다. 또, 영화 ‘아바타’에서 보던 나무들이 빌딩 사이사이를 채우고 있다. 마치 ‘자연’ 속에 ‘도시’가 있는 듯하다.
지도에 나온 숙소 위치 바로 앞의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할릿을 만났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40세 아저씨.) 나에게 숙소를 찾냐고 물어보더니, 나와 같은 숙소로 이동한다. 숙소는 간판이 따로 없어서, 건물을 한참 돌고 나서 입구를 찾을 수 있었다.
호스텔 치고는 꽤나 가격이 있었는데(하루 약 3만 원) 시설이 상당히 낡았다. 같이 들어온 할릿은 예약을 하지 않고 왔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 호스텔에는 남은 방이 없어서 짧은 대화를 마치고 나만 체크인을 한 뒤, 작별 인사를 했다.
다행히 방에는 에어컨이 시원하다. 첫 외국에서의 호스텔인데 나쁘지 않았다. 짐을 놓을 공간이 마땅치 않아서 그냥 침대 아래에 두었다. 캡슐 침대였는데 하룻밤 잠을 자기에는 충분했다.
짐을 간단하게 풀고 땀을 식히고 있는데, 할릿이 들어와 오늘 빈자리가 갑자기 생겨 같은 방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직 저녁을 먹지 않은 우리 둘은 함께 밥을 먹으러 밖으로 나갔다.
여행 첫날부터 예상치 못하게 함께 할 친구가 생겼다.
영어로 외국인과 대화를 하는 것은 처음이라 너무 긴장도 했지만, 막상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렵지 않았다. (내 영어 실력이 좋지 못해서 번역기를 계속 사용하기는 했지만 어떻게든 뜻을 전달할 수 있었다.)
시간이 늦어 숙소 근처에서 밥을 먹기로 했고, 인도네시아 식당이 있어서 가 보았다.
인도네시아 음식은 처음이고, 메뉴판도 뭐라고 쓰여 있는지 전혀 모르겠다. 할릿은 다행히 인도네시아 사람이라 메뉴를 잘 알고 있었고, 내게 하나하나 설명을 잘해주어서 수월하게 고를 수 있었다.
나는 소고기로 만든 나시고랭을 주문했다. 밥을 먹으며 우리는 서로 어떤 일을 하는지, 이곳에 왜 왔는지 얘기하며 밥을 먹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꽤나 친해져서 마리나 베이에 함께 가기로 했다.
다 먹고 계산을 하려는데 할릿이 내가 화장실을 갔다 온 사이 계산을 마쳤다.
그냥 얻어먹기 너무 미안해서 괜찮다고 했지만, 식사 자리가 너무 즐거웠다며 자기가 내고 싶다고 한다. 계속 거절하는 것도 실례일 것 같아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식당에서 나왔다.
마리나 베이에 가기 전, 할릿이 원래 머물던 호텔에 짐을 가지러 가기로 했다.
(직장에서 제공한 호텔은 어제까지여서 오늘부터는 자유 시간이라 숙소를 옮겼다고 한다.)
호텔까지는 거리가 꽤나 있어서 버스를 타고 30분 이상 가야 했는데, 퇴근 시간이라 그랬는지 더 오래 걸렸다. 사실 할릿은 혼자서 갔다 온다고 했지만, 난 버스를 타 보고 싶었다. 또, 숙소에 들어가면 피곤해서 나가기 싫을까 봐 함께 이동했다.
지금 싱가포르는 전체적으로 마스크를 쓰는 분위기이다.
밖에서는 잘 안 쓰지만 실내에서는 정말 열심히 마스크를 쓰고 있다.(아직 코로나 여파가 끝나지 않았던 시기)
할릿이 짐을 찾고 오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같이 가려던 지인이 시간이 안 될 것 같다고 했고,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우리 둘 다 더위에 지쳐서, 돌아갈 때는 택시를 불렀다. 할릿이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며 택시비를 내주었다.
첫날인데, 공항에서 숙소에 오는 과정이 너무 고되서일까. 너무 피곤하고 지쳤다.
싱가포르에서의 일정을 3박 4일밖에 잡지 않아서 시간이 부족하긴 하지만, 내게는 아직도 299일이 남아 있으니 앞으로는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자기 전, 씻고 침대에 누워서 오늘 일지를 적고 있다. 첫날이라 어디서부터 어떻게 적어야 할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차츰 나아지겠지!
오늘 예상치 못하게 할릿과 함께 시간을 가졌는데, 대화를 하기에는 영어가 아직 너무 부족하다.. 오늘 대화하면서 번역기를 썼던 문장들을 적어 놓고 하루 한 두 문장씩이라도 외워서 다음번에 다시 말해봐야겠다.
내일은 오전에 숙소 주변을 둘러보고, 저녁에 마리나 베이에 가 봐야겠다.
모레는 무료 공원에 가보고, 버스 터미널에도 한 번 가 봐야겠다.
*1일 차의 한 줄
영어 공부가 필요하다.
*1일 차 정산
숙소비 : 30.10싱(28,942원)
식비 : 1.5싱(1,442원)
교통비 : 2.4싱(2,308원)
항공비 : 210싱(201,923원)
총 합 : 234,615원
새벽 6시, 에어컨 바람에 너무 추웠고 코가 막혀 몇 번을 깼다. 잠도 깰 겸 밖으로 나가보니 우중충하다. 비가 오고 있다. 오늘 여행은 비를 맞으며 다니거나, 쉬면서 다음 일정을 계획해 봐야겠다.
할릿과 작별 인사를 하고 짐을 싸고 나니 귀신같이 비가 그쳤다.
나는 오늘 다음으로 옮길 숙소에서 사용할 가방을 메고 아침 일찍 나가기로 했다.
(지하철을 타고 조금 이동하면 ‘리틀 인디아’라고 하는 인도 거리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하루는 그곳에서 숙박을 하며 구경을 하려고 메인 가방은 지금 숙소에 맡기고, 작은 가방에 하루치 물건만 챙겨서 이동하려 한다.)
아침밥을 먹으러 어제 할릿과 함께 먹지 못 한 국수(돼지고기) 가게로 왔다.
(할릿은 무슬림이라 돼지고기는 먹지 못한다.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왜 수많은 고기 중에 돼지일까? 소랑 닭, 생선은 괜찮은 건가..? 그냥 궁금해졌었다.)
내가 주문한 국수는 간장국수 느낌인데 스낵면(건강누들?)을 덜 익힌 볶음 국수 느낌이었다. 계산으로 현금만 가능해서 5싱(화폐 단위)을 냈다. 다들 식후에 커피와 차를 마시고 있는데 나는 페어 마켓에서 마실 것을 사고, 오늘 목적지인 '서던 릿지스'에 가려고 여기서는 마시지 않았다.
가게에서 나와 얼그레이 밀크티(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료 중 하나)를 샀다. 그리곤 당당히 미리 검색해 놓았던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중이다.(짧은 여행이라 유심을 따로 구매하지 않고, 숙소 와이파이로 미리 저장해 둔 장소로 이동 중이다.)
그런데 구글맵에서 안내해 준 버스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곧바로 지나가던 행인에게 도움을 청했다. 영어를 곧 잘하시는 여성분이 설명을 해 주셨다. 버스를 타고 그 근처에 가서 택시를 타라고 한다. 아마도 유명한 곳은 아닌 것 같았다. (오늘 목적지인 서던 릿지스 그냥 구글 맵을 보며 꽤나 넓은 공원이길래 어젯밤에 즉흥으로 고른 여행지이다.) 아침에 오던 비도 그치고, 이렇게 날씨도 도와주는데.. 이동하는 시작부터 일정이 꼬였다.
한참을 버스 표지판을 살펴보다, 서던 릿지스 근처의 Blk 54,55 정류장으로 가는 버스가 있어서 고민하다가 탑승했는데 경로가 얼추 맞는 듯하다.
혹시 몰라서 계속 경로를 확인하는데, 위치가 맞다!
그렇게 거의 다 와서, 버스는 내 경로를 벗어나서 가고 있다. 하지만 상관없다. 돌아오는 길은 물어서 오면 되고, 모르는 길로 가는 덕분에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으니. 유심이 없어서 생각보다 많은 지역을, 싱가포르를 제대로 느끼고 있다.
무작위로 탄 버스에서 얼추 비슷한 위치에서 내려 운동화로 갈아 신고 목적지까지 걷기 시작했다. 걷는 길이 너무 예뻐서 자꾸만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평소 한국에서 사진을 잘 찍지 않던 나였는데, 오늘만 카메라를 몇 번 켠 지 모르겠다.
더워서 잠시 그늘에 멈춰 섰고, 버스를 찾아 헤매느라 정신이 없어 바르지 못한 선크림을 바르고, 팔토시까지 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내가 걷는 것을 이렇게 좋아하나 싶을 정도로 계속 걷고 싶은 길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싱가포르는 어제 느꼈던 ‘자연 속의 도시’라는 말이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어제 즉흥에서 고른 장소였는데 너무 만족스럽다.
서던 릿지스 바로 옆은 호트 공원으로 이어져 있었지만, 서로 비슷한 분위기였다. 그래서 근처의 래브라도 자연보호구역(바다에 인접)으로 가기로 했다.
오늘 해가 너무 뜨겁다. 너무 더워서 가는 길에 땀을 식힐 카페를 찾는데, 다행히 맥도날드가 있다.
레몬 티를 주문했는데, 작은 건 성에 차지 않고 큰 것을 주문했다.(작은 것과 가격 차이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너무 크다.. 거의 1리터 가까이 되는 듯했다. 땀을 식히며 와이파이를 이용해 다음 목적지로 가는 길을 이번에는 2가지(오전과 같은 만약을 위해), 웬만하면 지하철을 타고 가는 경로로 저장했다.
급할 게 없는 오늘 일정. 땀도 식힐 겸 사진 정리를 하고 핸드폰 충전도 충분히 했다.
아직도 오후 1시다. 오늘 하루 진짜 길었는데.. 더위에, 가방 무게에.. 숙소에 도착해 짐을 내려놓으면, 저녁에 조금은 더 둘러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나저나 생각보다 영상을 많이 찍은 듯했지만 잘 담기지 않았다. 사진, 동영상 찍는 것도 연습을 해야 할 듯하다.
땀이 다 식을 때쯔음, 지하철을 타고 이동을 하려다 그냥 그 돈으로 물 한 병을 더 사서 가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걸어서 도착한 래브라도 자연보호구역. 닭이 자유롭게 뛰어놀고 있다.
사람들은 제마다 다른 방식으로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운동을 하는 사람들, 책을 읽는 사람들. 다양한 방식으로 공원을 즐기고 있다.
나도 그늘 한 편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쉬었다. 바다 근처에 오니 바람도 불고 파도소리도 시원하게 들린다. 비행기도 굉장히 낮게 날고 있다. 이 모든 게 나 혼자만의 기억인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그래서 힘들어도 사진과 영상을 많이 열심히 찍어서 남기려고 노력 중이다.
또, 이렇게 여행 일지를 중간중간 적다 보니 그냥 지나칠 수 있었던 순간도 새롭게 다가온다. 특별한 것도, 별다른 것도 없이 지나갔을 오늘 하루일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바람을 맞으며 그늘에 앉아있는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하다. 지금 나는 설명할 수 없는 행복에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분명 한국에서도 오늘 같은 날이 있었겠지? 내가 느끼지 못했을 뿐. 한국에서의 나는 주위를 둘러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 첫 여행지인 싱가포르. 2일 차 밖에 되지 않았지만, 삶의 여유를 느끼고 싶다면 이곳을 추천하고 싶다.
언젠가 도시와 자연이 공존한 장소를 생각할 때는 이곳 싱가포르가 가장 먼저 떠오를 것 같다. (여행이 끝난 지금도 같은 생각이다.)
20분가량 현재 상황 및 여행 관련된 나의 생각을 셀프 인터뷰 형식으로 영상을 찍어보았다. 아무래도 글로 적는 것보다 생각을 덜 거쳐서 입으로 나왔고, 내 생각을 더 잘 들여다볼 수 있었다. 영상의 장점과 글의 장점을 각각 잘 활용해서 나의 여행을 기록해 보아야겠다.
*셀프 인터뷰 내용 中
“항상 누군가와 함께 하려고 했던 나는, 혼자만의 시간이 얼마만인지 모를 정도로 사람에 의지를 했던 것 같다. 혼자 있으면 ‘외로움’을 느낀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이 순간은 전혀 외롭지 않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신경 쓰지 않고, 주위를 더 신경 쓰고 살았구나.”
그렇게 꽤나 오랜 시간 혼자만의 사색에 빠져 있었다.
슬슬 배도 고프고 숙소 체크인을 위해 리틀 인디아 동네로 이동했다.
인도에 가 보지는 않았지만, 동네에 들어서자마자 ‘여기 인도 마을이야!’ 하는 분위기를 내주었다.
인도 사람들이 실제 거주하는 지역이었고, 이 지역의 건축물, 문화 모두 인도였다. 건물들이 모두 5층 미만의 것들이었고, 건물의 외관에는 각기 다른 벽화들이 눈에 띄었다. 그 덕분이었을까, 입구에서 생긴 두려움(?)은 편안함으로 뒤 덮였다.(처음 동네 입구에서, 앉아있는 인도 사람들의 눈빛이 약간 무서웠었다.)
오늘 밖에서 오래 걸었더니 힘들다. 씻고 좀 누워서 쉬어야겠다. 숙소에는 어렵지 않게 갈 수 있었고, 매니저는 상당히 친절했다. 나는 체크인 이후 곧바로 샤워를 하고 빨래를 했다.
짧은 낮잠을 자고 나서, 7시에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왔다.
숙소 앞 힌두교 사원에는 저녁에도 기도를 하러 온 많은 인도 사람들이 있었고, 다들 신발을 벗고 들어간다. (나는 혹시나 신발을 도난 맞을까 들어가지 않았다.. 지금은 약간 후회가 된다, 들어가 볼 걸) 길거리에 판매 중인 과일과 채소. 그냥 좌판에 정리만 해 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위에 밝은 등을 설치하여 상품이 더 돋보이게 했다. 멋진 마케팅 방법이었다.
2일 차밖에 되지 않았는데 식당을 미리 알아보는 일이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300일간 식당을 매번 찾아서 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그냥 느낌이 좋은 식당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숙소 바로 앞에서는 인도 음식을 팔고 있는데 외국인 손님을 비롯해 현지 손님들이 많다. 일단 돌아보다가 마땅한 곳이 없으면 다시 와 봐야겠다.
리틀 인디아를 한 바퀴 돌고 나니 테카 센터(인도 시장)가 나온다. 여기는 이미 자리가 만석이었고, 현금 결제만 된다고 한다. 시장에서 밥을 꼭 먹어보고 싶었는데, 근처의 ATM은 수수료가 5000원이다. 말도 안 된다. 5천 원짜리 먹으려고 5천 원을 더 내고 뽑아야 하다니..
그래서 아까 처음 봐 두었던 식당으로 돌아갔다. 가는 길에, 손님으로 꽉 찬, 코너에 위치한 인도 음식점을 찾았다. 외국인 부부가 거의 다 먹어가서 카드결제가 가능한지 물어보고 옆에서 기다리다가 앉아서 주문을 했다. 마살라 치킨 카레, 차파티 2장, 스위트 라씨. 총 3가지를 주문하니 15,000원 정도였다. 그리고 얼마 후, 직원이 옆 테이블에 손님 한 명 더 앉아도 되냐고 해서 알겠다고 했다. 옆자리에 앉은 남자는 내 옷을 보고 한국인이냐 물었다. (ROKA 티를 입고 있어서 한국인인 것을 알았다고 했다.)
내가 주문한 음식이 먼저 나왔고, 어떻게 먹는지 몰라서 주위를 살폈다. 내가 헤매고 있으니 옆 테이블에서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인도 음식 먹는 방법을 알려주었는데, 인도 사람이었다. 그걸 시작으로 우리는 대화를 나누었고, 테이블을 합쳐서 같이 밥을 먹었다.
첫날보다 영어 울렁증이 덜어졌는지 대화하는데 끊임이 없었다. 번역기를 중간에 계속해서 사용했지만, 어제 할릿과의 대화보다 훨씬 매끄러웠다. 사실 오늘 7시간 넘게 걸으면서 영어 공부를 계속했다. 어제 너무 후회스러워서.. 우리는 1시간 30분 정도 대화를 이어갔다.
그의 이름은 Lavi. 인도에서 온 싱가포르 거주자이다. 미네랄(골드)을 배로 수출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가족들도 인도가 아닌 싱가포르에 있어서 이곳에서 거주한다고.
처음엔 이곳에 와서, 사람들의 나를 쳐다보는 눈빛(시선)이 조금은 무서웠다. 하지만 라비를 만나고, 생각이 바뀌었다. 그냥 똑같은 사람이라고. 그저 사용하는 언어와 피부색이 다를 뿐이었다.
그는 굉장히 유쾌했고 내게 잘해주려고 하는 것이 느껴졌다. 나이차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젊은 기운을 가지고 있었던 라비. 내 이야기를 편하게 이끌어 내 준다. 그래서인지 대화를 더욱 편하게 할 수 있었다.
그는 뭄바이에 살았었는데, 내가 다음 여정에 인도를 갈 것이라고 하니 이것저것 알려주었다. (가야시대 황후의 고향인 인도 ‘아요디야’를 꼭 가 보라고 추천해 주었다. 정말 친절한 친구다. 45세 아저씨지만 우린 친구다 친구!)
내가 여행을 나온 이유를 물어봐서 대답을 해 주었는데 너무 멋지다고 응원을 해 주었다.(프롤로그 참고)
라비는 말을 많이 하지 않고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상대방이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게 대화를 참 잘한다. 평소 나는 사람의 말을 듣기보다 말하는 쪽에 가까운데, 라비를 보며 잘 들어주는 사람이 얼마나 멋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내가 영어를 좀 더듬어도 이해해 주고, 내가 천천히 말할 수 있도록 라비도 천천히 말해주었다. 모든 게 고마웠다. 그리고 마지막에 본인이 계산한다고 하며 ‘You’re my guest. Thank you for giving me a good time.’라고 얘기했다. 나는 저 말을 듣기 전 계속해서 거절을 했지만, 그 말을 듣고 나서 매우 고맙다고 말할 뿐이었다.
라비의 질문 덕분에 내가 스스로도 할 수 없었던 대답들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고, ‘나’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내 인생의 질문에 답을 찾게끔 도와준 라비였다.
이틀간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만나 내 여행의 시작을 행복으로 가득 채워주었다.
우여곡절이 많은 여행의 첫 단추였지만, 끼워가는 과정이 힘들었을 뿐 마지막은 너무나도 완벽한 하루였다.
'고진감래'라는 말은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달콤한 것들로만 가득한 세상에 산다면, 그것이 달콤한 지 알 수 있을까?
쓴 맛을 알아야 단 맛이 단 맛인지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2일 차의 한 줄
처음 여행을 나올 때, 여행을 통해 ‘나’를 알아가 보려 했다. 하지만 사람을 통해 '나'를 알아간다. 결국 ‘여행’은 ‘사람’이 아니었을까?
*2일 차 정산
숙소비 : 31.60싱(30,385원)
식비 : 13.55싱(13,016원)
교통비 : 2.4싱(2,308원)
총 합 : 45,721원
오늘은 느긋하게 아침 8시쯤 일어났다.(언제부터 8시가 느긋하게였지..?) 10시까지 천천히 준비를 하고 나서려고 한다. 오늘은 기필코 가방을 두고 여행할 예정이다.
일단 버스 터미널에 가서 내일 타야 할 버스만 우선 확인한 뒤에 첫날 숙소로 이동해야겠다. 걷다 보니 문득 싱가포르 길가에는 개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개똥이 길에 많은 우리나라와 비교해 정말 ‘깨끗하다’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로 깨끗한 줄은 몰랐다.
터미널에 가서 내일 탑승할 버스와 위치, 시간을 확인하고서 숙소로 이동했다.
가는 길에 ‘Berseh food centre’라는 곳(작은 식당가)에 본능적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역시나 이곳은 합리적인 가격에 음식을 팔고 있었다. 한 바퀴 돌아보선, 이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결정했다.
10개 정도의 가게가 있어서, 한참을 고민하다 몸이 이끌리는 곳으로 따라갔다.
그곳에서는 족발, 삼겹살, 껍데기, 내장, 두부, 유부를 간장 베이스 소스에 졸이고 있다. 족발 덮밥이랑 비슷하게 생겼다. 앞사람과 같은 것으로 하나 주문했고, 수제비 같은 당면과 쌀국수 느낌의 국도 나왔다. 꽤나 맛이 좋았다. 고수를 조금만 올려주셔서, 추가로 더 넣었다. 나는 고수가 잡내를 없애주는 듯해서 참 마음에 든다. (쑥갓 같은 맛이 나서 좋았다.)
밥을 다 먹고 숙소로 돌아가, 쉬다가 다시 느긋하게 3시 20분쯤 나왔다. 싱가포르 여행의 처음이자 끝이라고 할 수 있는 마리나베이, 가든스 바이 더베이.(이제껏 그렇게 들어왔다) 싱가포르에서의 마지막 여행이기에 숙소에서부터 걸어서 가기로 했다. 편도로 7km, 주위를 둘러본다면 10km 정도 되는 거리였다.
오늘은 별 일정이 없으니까 야경 볼 때까지 걸어서 천천히 가면 오늘은 꽤나 여유로울 것이라 생각된다. 나와서 마실 것을 사려고 fair market에 들렀다. 오늘은 복숭아 티를 사서 출발한다.
길을 걷다가 싱가포르의 첫 미국 교회도 방문하고, 우연히 퀸 스트리트가 옆에 있어 내일 버스 위치도 확인했다. 어제 길에서 잠깐 보았던 클라크 퀘이로 갈 예정이고, 가는 길에 포트 캐닝이라는 장소에도 갈 예정이다.
포트 캐닝은 어제의 서던 릿지스와 비슷했다. 연속해서 자연공원을 보니 그리 큰 감흥이 생기지 않았다. 고작 2일 봤다고 똑같이 느껴지는 인간의 마음이 참 간사하다.
그래도 왔으니 서둘러 공원을 둘러보았다. 내려가는 길에 다리에 모기를 4방이나 물렸다. 싱가포르에는 모기가 없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아니었다.(다른 장소에서는 없었는데 여기서 물린 것을 보니 아마 숲이라 그런 것 같았다.)
간지럽다고 오늘의 목적인 야경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 다시 클락크 퀘이로 이동했다. TV에서 보던 유럽의 강가와 비슷하게 보였는데, 다른 점은 양 옆으로 높은 빌딩이 있다는 정도였다.
걷다 보니 드디어 마리나 베이가 보인다. 하염없이 걷다 보니 생각보다 너무 많이 걸었고, 슬슬 배고픔과 더위, 다리 아픔에 지쳐갔다. 어느 순간 경치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식당만이 내 시야에 남아있었다. 더워서 강가에서 맥주와 가벼운 음식을 먹으려고 메뉴판을 보았는데 너무 비싸다. 내가 너무 저렴한 것들만 먹었던 탓일까 도저히 이 돈을 주고 먹을 수는 없었다. 구글 맵을 통해, 가든스 바이더 베이에 맥도날드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불굴의 의지로 다시 걸었다. (중간중간 마리나 베이 센터, 골목 노상에도 가봤지만 가격이 터무니없었다.)
그렇게 야경은커녕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한참을 걸어 도착한 맥도날드. 사람은 너무 많았고 숙소로 돌아가는 시간은 걸어서 50분. 지하철을 타더라도 걷는 시간을 포함하면 결국 1시간 가까이 걸린다. 그래서 조금만 더 참고 걸어서 숙소 쪽으로 걸어가 보기로 결정했다.. 가는 길에 '하지 레인'이라는 곳이 내 눈에 들어왔고 경로를 바꾸어 들렀다 가기로 했다. 분위기가 꼭 이태원 같았다. 입구에는 한국인 관광 투어객들 (10명 이상의 아주머니들)이 보였고 내가 몰랐던 유명 장소 같았다. 12시에 점심을 먹고는 오늘 한 끼도 먹지 않아서 이곳에서 무조건 끼니를 해결해야 한다.
돌아다니다 자리가 남은, 꽤나 조용하면서도 할로윈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에 앉았다.(뒤늦게 알고 보니 오늘이 할로윈 데이였다.) 음식값이 비싸서 고민을 하다가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돌아갈 수는 없었기에 버거와 맥주를 시켰다. (맥주와 버거 세트를 주문했는데 원화 33000원 정도가 나온다.) 유쾌하고 친절한 말레이시아 점원의 추천 맥주는 정말 맛있었고, 버거도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내가 요 근래 먹은 버거 중에 가장 맛있었다. 3일 만에 처음 느껴보는 여유(?)였다.
충분히 분위기를 즐긴 뒤, 결제를 했다. 39.9싱이었다. 뭔가 이상했다. 서비스 차지 10%에 GST? 7%가 추가로 붙었다. 처음 겪어보는 메뉴판과 다른 결제 금액에 당황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거 어쩔 수 없었다. 맛있게 먹었고, 분위기도 만족스러웠으니 내일부터 다시 아껴서 쓰면 된다.
숙소에 가는 길, 아랍 거리도 방문하고, 마트에 가서 물을 샀다. 물 가격 비교를 하며 한참을 고민하다가 가장 저렴한 물이 단 하나 남았길래 냉큼 골랐다. 그리고 내일 버스에서 먹을 빵과 목 캔디를 골랐는데, 빵은 세금 때문에 가지고 있던 돈을 넘겨 어쩔 수 없이 뺐다.(진열대의 가격은 세금이 포함 안된 가격이다.)
숙소에 도착하니 저녁 9시 30분쯤이다. 씻고 빨래하고 널고. 11시 반이 되어서야 편하게 누웠다. 오늘 걸음 수를 확인해 보니 3만 보가 한참 넘은 숫자. 다리가 왠지 많이 아프더라.
모기 물린 곳은 아직까지 부어 있었고, 반바지는 동남아에서 피해야 할 듯싶다. 말레이시아에서 냉장고 바지의 가격을 확인해 보고 5천 원 아래라면 하나 구매 해야겠다.
모든 하루 일정을 마무리 짓고, 누워서 일지를 적는다. 오늘 나는 ‘마지막’이라는 단어의 무서움을 느꼈다. 싱가포르에서의 마지막 날이라고 몸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무리한 것. 하루 5만 원 아래로 쓰겠다는 강박 때문에 대중교통도 타지 않고 걸어 다닌 것도 한몫했다.
내 체력을 너무 과대평가했고, 남은 여행이 훨씬 긴 것을 간과했다.
12시에 첫 끼를 먹고 물 이외에는 아무것도 마시지도 먹지도 못하고 3만보를 걸었다.
다시는 무리하지 말자. 여기에서의 ‘오늘’이 마지막이지 영원한 마지막이 아니니깐.
*3일 차의 한 줄
싱가포르 물가는 우리나라와 거의 비슷하고, 배낭여행으로는 길게 있을 곳이 아닌 듯하다. 1 SGD=1000원(대략)
*3일 차 정산
숙소비 : 31싱(29,808원)
식비 : 51싱(49,038원)
총 합 : 78,846원
저의 이야기가 여러분의 일상에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도록
새로운 주간을 맞이할, 지난 한 주를 마무리하는 시간으로서
매주 일요일 오후 7시에 연재를 결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