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 그리고 국민국가라는 시스템에 관한 이야기

by 모모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잠시 망설인다.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재일교포라고 답한다.

그런데 이 대답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나는 오랜 시간에 걸쳐 깨달아왔다.




동생의 대답


언젠가 친동생이 자신의 아이에게 같은 질문을 받았다.


‘엄마는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초등학생 아이는 일본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라고 일본 이름으로 살아왔다.

당연히 엄마도 일본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아이에게 동생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


‘엄마는 한국인이야.’


제도상으로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 그렇게 쉽게 ‘한국인’이라고 말할 수 없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한국을 알수록 멀어지는 '한국인'


동생은 나와 달리 한국에 유학한 적도 없고 한국어도 유창하게 구사하지 못한다.

객관적으로 보면 나보다 훨씬 더 '한국인'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동생은 쉽게 ‘한국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반면 나는 어땠나. 대학 시절 한국에 유학하고,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문화를 깊이 공부해왔다.

그 과정에서 나는 깨달았다.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한국인이 될 수 없다.'


이상한 역설이다.

한국을 잘 모르는 재일교포일수록 오히려 쉽게 ‘한국인’이라고 답한다.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자신있게, 당당하게 ‘나는 한국인’이라고 말한다.


올드커머 재일교포는 한국어도 한국 문화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1세들은 대부분 돌아가셨으니…).

즉 우리에게 남아 있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은 국적밖에 없다.

많은 재일교포들이 그저 한국 국적이라는 하나의 제도적 사실만으로 한국인임을 주장한다.

나는 그것이 불편했다.

국적이라는 제도에 너무 의존하는 것 아닌가?

국적을 가지고 있으면 정말 한국인인가?

정체성은 국적이라는 제도를 넘어 본인이 스스로 결정하는 것 아닌가?




국적을 거부하다


아버지가 제안했다.


‘네 아이들도 한국에 국민등록을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나는 즉시 거부감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한국 국적을 부여하면, 아이들도 쉽게 ‘나는 한국인’이라고 말하게 될 것 같았다.

나는 아이들이 국적에 의존해 고민없이 쉽게 한국사람이라고 답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


‘우리 집은 하지 않을게요. 아이가 좀 더 자라서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때 본인이 결정하면 되지 않을까요?’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한국행


그런데 인생은 계획하지 않는 일이 일어나는 법이다.

우리 가족은 한국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나는 한국 국적이 있으니 문제없지만, 아이들의 비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아니, 생각해 보니 간단한 방법이 있잖아?

한국 국적자면 비자가 필요 없다는 것.

결국 아이들은 정식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하게 되었다.

아니, 정확히는 혈통주의를 채택하는 한국에서는 우리 아이들은 이미 한국국적 자격자이며 뒤늦게라도 출생신고를 하면 제도상 정식 한국인이 되는 거였다.


이름을 등록할 때, 나는 아이들에게 나의 성을 물려주기로 했다.

한국 성을 가진 한국 이름.

그것이 한국에 공식적으로 등록되었다.

아이들의 한국 여권을 받아 든 순간, 가장 감동한 사람은 바로 나였다.


그토록 ‘국민국가라는 시스템에 의존하지 마라’, ‘국적이 뭐가 중요하냐’고 말하던 내가, 아이들의 한국 이름이 새겨진 여권을 보고 가슴이 뜨거워졌다.




결국, 우리 모두


그 순간 깨달았다.


'아, 나도 국민국가라는 시스템 안에서 살고 있구나.'


나는 오랫동안 이 시스템에 거부감을 느껴왔다.

국적이라는 제도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정체성을 선택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법적 지위가 필요한 순간, 아이의 이름을 등록해야 하는 순간—우리는 이 시스템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이 시스템은 때로 폭력적이다.

사람들을 '한국인', '일본인', '외국인'으로 나누고, 카테고리 안에 가두려 한다.

복잡한 개인의 정체성을 단순한 국적 하나로 환원시킨다.


하지만 동시에 이 시스템은 우리를 보호하기도 한다.

법적 권리를, 이동의 자유를,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한다.

내가 아이들의 여권을 보고 감동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그 작은 책자는 단순한 신분증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이들이 이 세계에서 인정받고 보호받을 수 있다는 증명이었다.


우리는 이 모순 속에서 살아간다.

시스템을 비판하면서도 시스템에 의존하고, 국적을 초월하고 싶지만 국적 없이는 살 수 없다.

이것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특히 경계에 서 있는 우리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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