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기면서도 갈망했던 한국적인 것
요즘 재외동포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재미교포 메기 강 감독이 이끈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거둔 성과에 감탄했고,
재미교포 이민진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파친코〉는 전 세계에 재일교포의 이야기를 알렸다.
또한 블랙핑크처럼 해외에서 성장한 멤버들이 K-pop의 중심에 서기도 한다.
그리고 재일교포 3세 이상일 감독의 영화 〈국보〉도 빼놓을 수 없다.
2024년 6월 일본에서 개봉한 〈국보〉는 천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으며 약 140억 엔의 흥행 수입을 기록했다.
얼마 전 〈케이팝 데몬 헌터스〉 제작진의 인터뷰 영상을 봤다.
그들도 미국에서 살면서 수많은 벽을 마주했을 것이다.
인종차별을 경험하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과 K-문화의 힘을 세계에 증명해 냈다.
그 용기와 자부심이 참 아름답게 느껴졌다.
재일교포와 다른 나라 교포의 차이
그런데 재일교포와 다른 나라의 교포들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그건 바로 재일교포에게는 한국적인 것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 차이는 교포를 둘러싼 사회 환경과 역사적 배경에서 비롯된다.
다른 나라의 교포들은 그들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외모만 봐도 '아, 동양인이구나', '외국인이구나' 하고 알 수 있다.
얼굴에 ‘코리안’이라고 쓰고 다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들은 정체성을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 없다.
그만큼 인종차별과 정면으로 싸워왔을 것이다.
‘코리안’이라는 이름을 걸고 그 자리에서 버텨온 시간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치열했을 것이다.
그런데 재일교포 같은 경우, 외모로는 일본사람과 구별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일본어를 완벽하게 구사하고(사실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올드커머 교포는 극소수다), 일본 이름을 쓴다.
(참고로 이상일 감독처럼 본명(한국 이름)으로 활동하는 경우는 드물다.)
즉, 스스로 밝히지 않은 한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실제로 재일교포라는 사실을 감추고 사는 이들이 많다.
그렇게 재일교포는 오랫동안 일본인 속에서 숨어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자신 안의 한국적인 것이 하나둘 희미해졌다.
물론 올드커머 재일교포의 일본 정착 역사가 이미 1세기를 넘었기 때문에 현역으로 활약하는 세대가 이미 3~4세대에 이르렀다는 점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일본이라는 사회에서 교포로 산다는 것
'재일교포임을 감추고 살았다'고 하면 한국 사람들은 섭섭하게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게 생존의 방식이었다.
1세, 2세들은 살기 위해 일본 이름을 써 왔다.
대부분의 재일교포 가정이 그랬듯, 우리 집에서도 한국말은 쓰지 않았다.
완전히 일본 사람처럼 살아갈 수 있도록 자녀를 교육시켰다.
20~30년 전, 사춘기 시절의 나에게는 '재일교포'라는 사실은 들키면 안 되는 비밀이었다.
일본 사회가 그렇게 느끼게 했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비슷한 또래 재일교포들은 비슷한 고통을 겪으며 자랐을 것이다.
물론 1세들의 삶은 2세, 3세보다 훨씬 더 고단했지만.
사실 재일교포 중에는 유명인도 적지 않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못한다.
이미지가 떨어질까 봐, 차별받을까 봐 두려워서다.
'왜? 한국인임이 들키면 어때서? 부끄러워?'
그렇게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이렇게 답할 것이다.
'네, 맞아요. 부끄러웠어요. 들킬까 봐 늘 두려웠어요.'
물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자신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정체성을 부끄럽게 여길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나를 떠올리면 가슴이 아프다.
재일교포라는 게 부끄러웠다는 건, 결국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는 뜻이니까.
내 존재 자체를, 내 뿌리를 부정하며 살았던 그 시절의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또 안쓰럽고, 그렇게 숨길 수밖에 없게 만든 환경이 지금도 분하다.
그런데 세상은 바뀌어가고 있다.
얼마 전 만난 20대 일본인 젊은이에게 '한국 사람이다'라고 하니까 '우와, 멋있다!'라고 하더라.
이제는 '한국인'이라는 것이 멋지게 받아들여지는 시대가 온 것일까.
한국인이라는 것만으로 동경의 대상이 된다는 것도 결국은 또 다른 편견이라 이상한 일이지만...
어쩌면 지금의 젊은 세대는 우리가 겪었던 그 고통을 믿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일본에서는 숨기면서도, 한국을 갈망하며
한때 나는 대학생 시절 한국에 어학연수를 왔다. 정말 열심히 한국어를 공부했다.
사실 학부 때는 이과 전공이었기에, 한국어는 학교에서 배운 게 아니라 대학생 때 독학으로 시작했다.
어떻게든 한국 사람처럼 되고 싶었다.
한국어가 늘어갈수록 한국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해주셨다.
'우와, 이제 한국 사람 다 됐네.'
그 말이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열심히 하자. 이제 다 왔구나. 그렇게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나는 완벽한 한국 사람이 될 수는 없다는 것,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을.
지금이라면 그때의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아니야. 완벽한 한국 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아도 돼. 지금 그대로 있으면 돼.'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에서는 재일교포라는 사실을 그토록 숨기며 살아왔으면서도 나는 한국을, 한국 문화를, 한국말을 누구보다 간절히 갈망하고 있었다.
정체성, 그리고 목소리
재미교포들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자랑스럽다.
그 동시에, ‘코리안’ 임을 당당히 내세우며 멋지게 표현하는 모습이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재일교포들도 우리의 방식으로 열심히 살아왔다.
한국적인 무언가를 가지고 있지 않아도 괜찮다.
완벽한 한국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다.
우리의 뿌리가 코리아에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이제는 그 정체성을 가지고 각자 있는 자리에서 빛나면 된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도 그런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 같다.
이 작품은 자신 속의 약한 부분까지도 인정하고,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기에 관한 이야기였다.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정체성이 아니라, 내가 어디서 왔고 앞으로 어디로 나아갈지를 스스로 선택하는 과정이 곧 정체성이라는 메시지.
우리는 완벽한 한국 사람일 필요도, 완벽한 일본 사람일 필요도 없다.
그저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고, 그 목소리로 세상에 존재를 알리는 것,
그것이 바로 정체성의 본질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