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교포 공무원이라는 존재

내 방식의 저항

by 모모

‘이 일은 네가 하면 안 된다더라’


동료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같은 공무원인데,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 나 역시 어색했다.

우리는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가 각자 할 일로 돌아갔다.

일본에서 재일교포가 지방공무원이 될 수 있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닫혀 있던 문이 열리기까지

오랫동안 공무원 임용에는 '국적조항'이라는 보이지 않은 벽이 있었다.

즉 일본 국적을 가진 사람만이 공무원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조금씩 변화의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국제화의 진전과 함께 외국인(영주권자) 주민도 지역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인식이 서서히 생겨나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외국인도 일정한 직종에서는 지방공무원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변화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자치단체마다 달랐다.

적극적으로 외국인 공무원을 받아들이는 곳은 아주 드물고, 여전히 문을 굳게 닫고 있는 곳이 많다.


할 수 없는 일들

그리고 외국인 공무원은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공권력 행사' 또는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업무는 여전히 일본 국적자만 할 수 있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허가나 인가와 관련된 업무, 단속이나 처분과 관련된 업무는 할 수 없다.

정책을 결정하는 핵심 부서로의 인사이동도 제한된다.

승진에도 한계가 있다. 관리직이나 간부직으로 승진할 수가 없다.

이런 제약들은 법적으로 명문화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존재한다.

얼마 전 보조금 업무를 맡게 되었다. 원래 역할 분담상 내가 맡아야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외국 국적이라는 이유로 내가 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결국 다른 동료가 그 업무를 맡게 되었다.

동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업무량이 늘어난 것은 분명했다.

나 때문에. 내가 재일교포이기 때문에.

미안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보다, 그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간다는 것이 더 힘들었다.


항상 의식하지는 않지만

평소에는 그냥 평범한 공무원으로 일한다.

동료들과 농담도 하고, 업무 회의에서 의견도 내고, 야근도 하고 회식도 한다.

그럴 때는 내가 재일교포라는 것을 특별히 의식하지 않는다.

하지만 문득 생각난다.

내가 일본에서 몇 안 되는 재일교포 공무원 중 한 명이라는 것을.

내 뒤에는 아직도 이 길을 걸어보지 못한 많은 재일교포들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 앞에는 여전히 넘을 수 없는 벽들이 서 있다는 것을.

그래서 때로는 부담스럽다.

내가 잘못하면 '역시 외국인은… 재일교포는 안 되는구나'라는 편견을 만들어낼까 봐.

내가 잘 해내지 못하면 나 다음에 오려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그럼에도 여기 있다는 것

그럼에도 나는 이 일을 계속한다.

내가 여기 있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재일교포도 이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 방식의 저항이다. 재일교포는 공무원이 될 수 없다고, 될 수 있어도 제한적이어야 한다고, 핵심 업무는 맡길 수 없다고 말하는 현실에 대한.

물론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도 '외국인 공무원'이라는 말 자체를 낯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공무원은 일본인이 해야 한다는 생각이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사회다.

하지만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나처럼 국적의 벽을 넘어 공무원이 된 사람들이 하나씩 늘어나고 있다.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것, 우리도 이 사회를 위해 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다음 세대를 위해

언젠가는 재일교포든 다른 외국인이든 국적에 관계없이 능력에 따라 일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외국인 공무원'이라는 말이 특별하지 않게 여겨지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그때까지 나는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경계에 서서, 벽에 작은 균열을 만들어가는 일을.

내 다음에 올 사람들을 위해 길을 조금씩 넓혀가는 일을.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해야만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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