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재일교포
소속하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출장기관에 파견 중이었던 나. 그 때 겪었던 어떤 일을 오늘은 여러분께 들려드리고 싶어요.
처음엔 황당하고 가슴속이 묵직하게 눌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내게는 정말 소중한 선물 같은 경험이 되었더라고요. '나만큼 행복한 재일교포가 또 있을까' 싶을 만큼요.
그날 오후, 스며든 목소리들
내 자리에서 불과 3미터 정도 떨어진 곳. 여성 상사 M이 다른 상사와 웃음꽃을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어요. 가까운 거리, 자연스레 들려오는 대화.
"우리 남편이 그러더라고요. '키무라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 본명은 대부분 김씨야, 재일(코리안)이거든. 재일은 좀 그렇지?' 그래서 내가 '아니야, 모든 키무라씨가 재일인 건 아니잖아'라고 했는데(웃음)"
이 M이라는 분은 일도 잘하고 부하직원들도 잘 챙겨주는, 정말 존경해왔던 멋진 분이었기에 이 대화를 어떻게 받아들어야 할지 정말 당황스러웠어요.
한 달 반이라는 시간 속에서
그 대화 이후로 계속 마음속에 뭔가 찌꺼기 같은 게 남아있었어요. 예전의 나라면 그냥 마음속에 묻어두었을 텐데, 그 때 있었던 직장이 국제교류와 다문화 공생을 추진하는 곳이다 보니 조직 전체 관리직의 의식 수준이 어떤지 불안해지더라고요. 이대로 내가 가만히 있어서 없던 일로 만드는 것보다는 행동에 옮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M에게 직접 말할 용기는 없었어요. 어떻게 해야 할까 한 달 반 정도 고민하다가, 총무과 과장님께 메일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메일에는 이런 내용을 담았습니다:
"조직의 발전을 위해 말씀드리고 싶은 사안이 있습니다"
며칠 전 들었던 M의 대화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고 판단됩니다.
① 근본적인 인식에 관하여
해당 대화의 배경에는 재일교포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사고가 깔려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키무라라는 성씨를 가진 사람 중에 재일교포가 아닌 사람도 있다'는 것이 아니라, 재일교포라는 출신 배경을 근거로 해당 인물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사고 체계 자체라고 사료됩니다.
② 역사적 이해의 부족
재일교포가 일본 성명(통명)을 사용하게 된 역사적 경위, 현재도 사용하고 있는 이유,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적 상황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발언이라고 판단됩니다. 저 역시 오랫동안 일본 성명을 사용해왔으며, 본명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취업 이후의 일입니다.
③ 직장 환경에 대한 배려 부족
상당히 근거리에 재일교포인 제가 착석하고 있어 대화 내용이 청취 가능한 상황임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대화를 나누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사료됩니다. M은 제가 재일교포임을 당연히 인지하고 있을 것입니다.
현재 제가 한국 성명(본명)을 사용하고 있어서, 통명으로 생활하는 재일교포와는 다른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M은 웃으며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으므로, 아마도 악의 없이 발언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즉, 자신의 발언을 재일교포가 들었을 때의 감정적 반응에 대한 상상력이 부족했던 것으로 판단됩니다.
저는 재일교포으로서 지금까지 크고 작은 배제와 차별을 경험해왔습니다. “재특회(재일교포의 특권을 용서하지 않는 시민회)”의 헤이트 스피치를 직접 당한 경험도 있으며, 그런 관점에서 이번 건은 '공격성이 낮은 혐오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M 본인은 전혀 공격할 의도가 없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국제교류와 다문화 공생을 추진하는 입장에 있는 행정직 직원의 의식 수준이 이 정도로 낮아도 되는 것인지 우려됩니다. 다른 관리직 여러분들의 인식 수준은 어떠한지 걱정됩니다.
교과서 같은 대응
총무과장님의 대응은 정말 놀라웠어요.
‘이 건을 조직의 최고 책임자까지 즉시 보고드렸습니다. 최고 책임자의 지시로 관리직 연수 시 재일교포 문제 전문가를 모시는 방향으로 조정하겠습니다. 그리고 최고 책임자께서 직접 해당 직원(M)과 면담하고 지도하고 싶다고 하시는데, 당신의 의향은 어떤지요?
이런 교과서 같은 대응에 감동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워졌어요. M이 최고 책임자로부터 직접 지도를 받게 되면 받을 충격이 얼마나 클까. 현재 조직의 최고 책임자는 부하들로부터 인망이 두텁고, 무엇보다 M이 신처럼 존경하는 존재라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M이 정말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에게는 이 정도 경험은 솔직히 익숙한 일이라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았거든요. 그래서 제가 받은 피해보다 M이 받게 될 충격이 더 클 것 같이 느껴졌어요.
제가 바랐던 건 조직 전체의 관리직 의식 개선이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상사 M에 대한 직접적인 질책은 원하지 않는다고 전했죠.
'도망칠 수 없다'는 깨달음
며칠 후 총무과장님으로부터 다시 한 번 생각해달라는 연락이 왔어요.
생각해보니, M에 대한 지도를 거부하는 건 결국 나의 '도망'이더라고요. M과의 관계가 어긋나는 게 두려웠던 거죠. 하지만 조직 전체의 의식 개선에 앞서 먼저 발언의 당사자인 M의 의식을 바로잡는 것이 최우선이잖아요. M을 위해서라도 도망치면 안 된다고 생각을 바꿔 부탁드렸어요.
그 순간, 흘러내린 눈물들
상사 M이 불려가셨어요.
돌아왔을 때의 모습... 한눈에 봐도 많이 흔들리고 계시는 게 보였어요.
그때 마침 다른 직원이 ‘○○ 건에 대해 M의 의견을 확인해보지 않을래요?’라고 저에게 말했어요. '지금은 타이밍이 안 좋다'고 할 수도 없었고, 저도 관련된 업무였기에 따라갔죠.
상사 M에게 말을 걸었을 때, M은 제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함께 있던 직원이 깜짝 놀라 '괜찮으세요?'라고 묻자, M은 '잠깐만, 죄송해요'라며 황급히 자리를 뜨셨어요.
90도로 굽어진 진심
그 후 M이 저를 별실로 불렀어요.
깊숙이 고개 숙인 90도의 인사. 통곡하며 ‘상처를 주는 언행을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행정 공무원으로서,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행위였습니다’라고 몇 번이고 반복하시더라고요.
그 진심 어린 사과를 받으면서 저 역시 마음이 아파서 똑같이 90도로 허리를 굽혔어요. 평소 사과를 받으면 ‘아니에요, 괜찮아요. 별일 아니에요’ 하는 식으로 대답하는데, 이번에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서 그저 깊은 인사로만 답할 수 밖에 없었어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제가 잘못 이해한 부분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제가 들었던 그 말은 남편분의 발언이 아니라 시어머님의 말씀이었던 거예요. 그걸 알았다면 제가 받아들이는 마음도 완전히 달랐을 텐데 말이에요.
우리보다 윗세대 분들 중에는 재일교포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있어요. 저는 상사 M의 남편 발언이라고 착각해서, 그 의견에 M도 어느 정도 동조하고 있고 비슷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죠. 게다가 M 부부가 둘 다 행정 공무원이어서 같은 공무원으로서 더 큰 위기감을 느꼈던 경위가 있었어요.
M과 대화하며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M은 시어머님의 말씀을 회상하며 이야기했던 것이고, 어쩌면 비판적으로 인용했을 수도 있었겠더라고요. (물론 시어머님의 발언도 문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런 대화를 직장에서 나누는 것 자체는 부적절했다고 생각해요. 재일교포로 살다 보면 작은 말 한마디에도 ‘아, 또구나’ 하며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거든요.
M은 맹렬히 반성하시며 가정에서도 의식을 바꿔가겠다고 선언해주셨어요. ‘가정에서 그런 대화를 나누다 보면 다음 세대(아이들)에게도 잘못된 사고방식을 물려줄 위험이 있으니까, 시어머니라는 어른에 대해서도 잘못된 건 분명히 말씀드리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결혼을 해서 아는데, 시어머니에게 의견을 말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즉, 그만큼 자신의 언행을 반성하고 있고, 자신을 바꾸고 싶고 주변도 바꾸고 싶다고 말씀해주신 거예요.
목소리를 낸다는 것의 의미
우리 재일교포들은 일상의 작은 차별들을 겪으면서도 목소리 내기를 주저해요.
저 역시 그랬어요. 목소리를 내면 공격받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조직에서는 조용히 지내려고 애써왔어요.
특히 제가 처한 상황은 더 조심스러웠어요. 요즘에는 외국 국적의 재일교포가 지방공무원이 될 수 있는 지자체가 늘어나고 있는데, 저는 그런 지자체에 고용되었어요. 1, 2세 시대에는 공무원은 커녕 회사에 취직하는 것조차 어려웠던 걸 생각하면, 저는 정말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재일교포라는 이유로 직장이나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어요. 재일교포가 뭔가 실패하면 '아, 역시 재일교포이니까'라는 식으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재일교포이기 때문'이라고 연결되거든요.
그래서 가능한 한 눈에 띄지 않게, 비판받을 여지를 만들지 않도록, 항상 세간에서 '평범하다'고 여겨지는 모습으로 살려고 노력해왔어요.
더구나 당시 저는 지방자치단체에서 파견된 입장이었어요. 내가 거기서 문제를 일으키면 원래 소속인 지방자치단체에도 피해를 주니까, 너무 파장을 일으키면 안 된다고 생각했죠.
그런 제게 남편이 말했어요.
그건 잘못된 생각이라고. 나는 소속 지방자치단체를 대표해서 파견된 것이고, 내가 재일교포라는 것을 알고 보내주신 거라고요. 소속 지자체는 재일교포를 포함한 외국인들을 받아들이는 곳이니까, 오히려 지자체를 대표해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요.
그 말에 용기를 얻어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랬더니 조직의 최고 책임자부터 관리자분들까지 모두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최선의 대응을 해주셨어요.
이번 경험을 통해 많은 걸 배웠어요.
조직도 사람도 변할 수 있다는 희망. 그리고 목소리를 내는 것의 소중함. 때론 아픈 과정이 있을지라도 그 너머로 나아가는 것의 가치를요.
그렇게 마음 깊이 우러나온 사과를 받아본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어요. 재일교포 문제에 대해서도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요.
재일교포로서 정말 귀한 선물 같은 시간이었어요.
지금까지 목소리를 내온 수많은 재일교포들 중에 이렇게 따뜻한 결말을 맞은 이가 또 있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나는 참 행복한 재일교포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 저는 지금 본명(한국 이름)을 쓰고 있어서 주변에서 외국인임을 알기 쉽다고 생각하지만, 대부분의 재일교포들은 통명(일본 이름)을 사용하고 있어요. 어쩌면 당신 곁에도, 미처 알지 못했던 재일교포가 있을지 모르죠. 그렇게 일본 사회에 스며들어 살아가기에 '보이지 않는' 재일교포들은 차별의 말들을 더 가까이서 듣고 상처받아 왔을 거예요.
재일교포뿐만 아니라 세상이 점점 넓어지고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살게 됐습니다. 우리의 무심한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모두 한 번쯤 돌아보고 헤아려봤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