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사람
예상치 못한 난관
그날 아침, 남편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커피를 내려주었다.
한국 부임 소식을 전했을 때 그가 보인 첫 번째 반응은 미소였다.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자신이 일을 그만두고 집안일을 맡겠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주저함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다. 일본 국적인 남편만 비자가 필요하다는, 그 단순해 보이는 사실이 만들어낼 복잡함을(나는 한국 국적, 아이들은 한국과 일본 이중국적.).
처음 겪는 케이스
사무실 담당자는 당황했다.
지금까지 부임자는 모두 일본인이었고, 그들의 가족 비자는 회사에서 일괄 처리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부임자가 한국 국적자였다. 매뉴얼에 없는 케이스였다.
‘죄송합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담당자의 말끝이 흐려졌다. 미안한 마음에 내가 직접 알아보겠다고 했지만, 그것이 긴 미로의 시작이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대사관에 몇 번이나 전화했는지 모르겠다. 결론은 남편에게 해당하는 비자는 결혼이민비자뿐이라는 것이었다.
문제는 필요 서류였다. 주민등록등본, 집 임대차계약서… 한국에서 살고 있지도 않는 사람에게 한국에서의 생활 능력을 증명하라는 요구였다.
주민등록등본의 벽
‘주민등록등본을 다른 서류로 대체할 수는 없을까요?‘
수화기 너머 목소리는 잠시 침묵했다가 답했다. ‘일단 제출해 보세요.’
희망을 품고 부임 두 달 전, 비자 신청서를 제출했다.
거절.
‘주민등록등본이 꼭 필요합니다.’
‘하지만 지금 일본에서 살고 있는데요...’
‘규칙입니다.’
그 짧은 대답이 담고 있는 무게를 나는 그때 처음 느꼈다. 규칙 앞에서 개인의 사정은 소음에 불과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가족 모두에게 좋은 경험이 되리라 믿었던 한국 생활이, 첫 번째 관문에서 벽에 부딪혔다.
막막한 선택지
처음에는 내가 혼자 먼저 입국하는 방법도 생각했다. 주민등록을 마친 후 남편 비자를 신청하면 가족들이 나중에 들어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비자 신청에는 보통 한 달이 걸린다. 그동안 아이들은 학교에도 못 가고 기다려야 한다. 게다가 회사 인사이동에 맞춰 해제되는 집 계약 때문에, 가족들은 집도 없이 일본에서 버텨야 하는 상황이었다.
상상만 해도 막막하고 무서웠다. 이게 최선일 수는 없었다.
재일교포 친구의 목소리
비자 탈락 소식을 들은 재일교포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다. 그의 목소리에는 나와 같은 피로가 배어 있었다.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한국 국적을 지키고 있는데, 정작 한국에서는 이런 식으로 대하는 거야?’
일본 국적을 취득하면 모든 게 간단해진다. 그걸 모르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지키고 싶은 것이 있었다.
거창한 이유는 아니었다. 애국이나 민족 같은 말들은 공허하게 들렸다.
재일교포가 겪어온 역사를 생각했을 때, 또 그 속에서도 정체성을 지키려 애써온 앞선 세대를 생각했을 때 나 스스로 귀화하는 것이 억울했을 뿐이다.
그런데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가운데, 끝까지 버티려는 사람에게는 조금의 배려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관광비자라는 임시방편
결국 우리가 선택한 방법은 남편이 일단 관광비자로 입국하는 것이었다. 내가 주민등록을 마친 후 그가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 비자를 재신청하는, 우회적인 방법이었다.
하지만 비자 처리 기간 동안 아이들을 돌볼 사람이 필요했다. 특히 둘째는 아직 어려서 학교 규칙상 등하교에 보호자가 동행해야 했다.
결국 내 어머니가 일을 쉬고 한국에 와주셨다. 재일교포 2세인 어머니 역시 한국어를 못 하셨지만, 가족을 위해 낯선 땅에서의 생활을 감수해 주셨다.
우리가 재일교포이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며 남편에게 미안해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가슴 한편이 무거워졌다.
학교에서 또 다른 문제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아이들 학교 입학 처리를 하는데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제출 서류 중 남편의 비자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학교 측에서는 ‘원래 제대로 된 재류자격을 가진 부모의 아이만 받는다’며 규칙 위반이라고 했다.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건가. 이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는데.
사정을 설명하고 간신히 양해를 구했다. 모든 일이 마무리된 후에도 마음 한편은 여전히 무거웠다.
내가 재일교포가 아니었다면, 그냥 일본 사람이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한국 국적을 고집하는 나 때문에 가족들이 고생했다는 생각에 미안하면서도 억울했다.
나 때문에 남편까지 규칙을 지키지 못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소속되지 않는 사람들
우리는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일본에서 살지만 일본 국적은 없다.
제도는 이런 존재들을 예상하지 못했다.
서류 위의 국적란에 적힌 '대한민국'이라는 세 글자가, 때로는 이렇게 무력하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자리는, 규칙과 규칙 사이의 좁은 틈새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