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이름을 상황에 맞춰 사용하며 살아가는 얘기
어떤 저녁의 일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이다. 남편이 집에 친구를 불렀다.
남편은 처음 만나는 나를 그의 친구에게 소개했다. 내 한국 이름으로.
아직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배우자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는 일은 처음이었다.
친구는 명백히 일본 성씨가 아닌 이름을 듣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어?’ 하고 웃으면서 되물었고, 남편은 한국인이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예상했던 일이 벌어졌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서로의 반응을 살피는, 묘한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일본, 특히 시골에서는 외국인을 만나는 일 자체가 드물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한국인이라고 하면 또 다른 긴장이 생긴다.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그날 저녁의 공기도 그런 미묘한 긴장감으로 채워졌다.
나는 그 순간 생각했다.
만약 내가 직접 자기소개를 했다면 어땠을까.
순간의 판단
나는 두 개의 이름을 사용하며 살아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학창 시절까지 일본 이름만 쓰다가 직장인이 되면서 한국 이름도 쓰기 시작하고 지금은 상황에 따라 두 개의 이름을 쓴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자기소개를 할 때, 나는 순간적으로 판단한다. 어떤 상황인지, 상대가 어떤 배경을 가진 사람인지에 따라 어떤 이름으로 소개할지를.
상대방에 따라서는 재일교포라는 것을 아예 말하지 않기도 한다.
불필요하게 마음을 소모하거나 상처받을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다. 그 자리의 분위기를 애매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이런 노하우는 오랫동안 패싱(passing)하며 살아오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몸에 밴 능력이다.
이런 기술을 가지고 있는 재일교포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날 저녁, 만약 내가 직접 자기소개를 했다면 재일교포라는 것을 굳이 밝히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면 밝히더라도 표현하는 방식을 신중하게 골랐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방문이었고, 나는 그 친구들에 대한 정보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까.
외국인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 경험이 있는지 판단할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남편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내 본명으로 나를 소개했고, 한국인이라는 것을 덧붙였다.
당연히 남편에게 나쁜 의도는 없었다.
오히려 재일교포인 아내를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것 같기도 했다.
서로 다른 세계
남편을 탓할 수는 없다.
한반도에 뿌리를 둔 아내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런 망설임 없이 사실을 그대로 소개한 것일 테니까.
재일교포로 살아본 경험이 없는 그에게는 나 같은 노하우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어떤 기분이 될지 알 방법도 없다.
남편과 나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어릴 때부터 계속 알던 사이다.
우리는 같은 공간을 살아왔지만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아왔구나, 하고 그때만큼은 생각했다.
그것이 좋다 나쁘다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다를 수밖에 없는 현실이구나.
하지만 결혼한 지 10년이 넘은 지금 남편은 나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의 남편이 그때 그 상황에 다시 놓인다면 또 다른 소개를 했을 것이다.
보이지 않게 되는 것들
그날 이후로 생각해 보니, 내가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는 기술을 익힐수록, 재일교포를 둘러싼 복잡한 현실은 오히려 보이지 않게 되는 것 같다.
내가 그 기술을 발휘하면 할수록, 재일교포가 살아가는 미묘한 사회적 현실은 감춰진다.
부드럽게 넘어가 버린다. 문제없이 지나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순간순간의 작은 긴장들, 찰나의 판단들, 조심스러운 선택들은 여전히 내 일상 속에 있다.
그런 것들이 쌓여서 만들어진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두 개의 이름, 하나의 나
두 개의 이름을 쓰며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면, 이름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는 걸 느낀다. 그냥 부르는 소리가 아니라, 그 사람의 정체성과 소속감,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까지도 규정하는 무언가.
하지만 동시에 이름은 그저 이름일 뿐이기도 하다.
내가 누구인지는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변하지 않으니까.
두 개의 이름으로 살면서 오히려 그런 걸 더 확실히 알게 된 것 같다.
지금도 나는 오늘 어떤 이름을 쓸지 자연스럽게 선택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것이 내 일상의 작은 부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