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화라는 게 뭔지도 몰랐다고?
모름 그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된다는 것을, 그날 깨달았다.
그날 회의실에서 작은 일이 있었다.
동료들이 지역 외국인 주민의 귀화 소식을 나누고 있었다. 그때 내년에 정년퇴직을 앞둔 59세 선배가 물었다.
‘귀화가 뭐야?’
그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내게는 너무나 익숙한 단어
귀화. 나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늘 곁에 있던 단어다. 재일교포로 살아온다는 것은 이 단어와 평생을 함께하는 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 친척 중 한 명이 일본 국적으로 귀화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온 가족이 모인 자리는 마치 공개처형장이 되었다. 어른들의 차가운 시선과 날 선 말들 속에서 나는 어렴풋이 깨달았다. '귀화는 배신이구나.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구나.'
하지만 시대는 흘렀다. 재일교포 사회에서도 귀화에 대한 인식이 변했다. ‘일본에서 사는데 당연히 일본 국적을 가지고 사는 게 편하지 않겠어?’ ‘선거권도 있고, 시민권도 누리고, 국가공무원도 될 수 있는데.’ 이제는 귀화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더 크다.
나 역시 마음이 변했다. 아이들에게 불이익이 있다면 귀화를 선택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나는 아직 한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다. 지키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59년의 무관심
그렇게 내게는 너무나 익숙하고, 때로는 인생을 좌우하는 중대한 문제이기도 한 '귀화'라는 단어를.
59년을 살아온 사람이 모른다고 했다.
분명 뉴스나 신문에서 접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한 번도 그 의미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관심 밖의 일이었으니까.
물론 세상에는 모르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누구든 모를 수 있고, 모르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그날 나는 깨달았다. 때로는 '모름' 그 자체가 누군가에게 깊은 상처가 된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지를.
내게는 삶의 한복판에 있는 문제가 어떤 이에게는 59년 동안 한 번도 마주칠 필요가 없는 일이라는 것을.
보이지 않는 경계
일본 사회는 그렇게 만들어져 있다.
재일교포의 존재를, 그들의 고민을, 그들의 선택을 굳이 알 필요 없도록.
59년을 살면서도 '귀화'라는 단어조차 모르고 살 수 있도록.
‘다문화 공생’을 외치고, ‘국제화’를 말하지만 정작 우리 사회는 얼마나 서로를 알고 있을까.
재일교포 가정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가 매일 고민하는 정체성의 문제를,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흔들리는 마음을 과연 몇 명이나 이해하고 있을까.
그것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다만 슬프다.
한쪽에서는 평생의 고민인 것이 다른 쪽에서는 존재조차 모르는 일이라는 것이.
그래도 희망은 있다
그 선배는 내 설명을 듣고 ‘그런 게 있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59년 만에 알게 된 단어 하나.
그게 뭘 바꿀 수 있을까?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 한 사람이 보이지 않던 세계를 조금 들여다보았다.
오늘도 나는 이 불편한 한국 국적을 들고 일본과 한국 사이를 살아간다.
서로 다른 세계 사이에 작은 다리를 놓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