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교포의 국적 이야기

by 모모

이번 글은 조금 길고 딱딱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이어질 제 이야기들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배경 설명이라고 생각해서 정리해 보았습니다. 조금 긴 글이지만 끝까지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국에 와서 가장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이것이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사시면서 왜 한국 국적이에요?’


질문하는 분들은 대부분 순수한 호기심으로 묻는다. 아마도 재미교포들이 미국 국적을 갖고 있는 것처럼, 재일교포들도 당연히 일본 국적을 가질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참고로 미국은 출생지주의지만 일본은 기본적으로 혈통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그런데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답변이 곤란하다. 듣는 분들은 아마 '그냥 편한 쪽으로 사시면 되잖아요?' 정도로 생각하실 텐데, 이 문제는 한마디로 설명하기가 정말 어렵다. 역사적 배경, 개인의 정체성, 가족의 선택, 사회적 인식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단한 대화 중에 이 모든 것을 설명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특히 같은 한국 국적을 가진 한국 사람에게서 그런 질문을 받으면 왠지 모르게 섭섭하고 기분이 이상하다.


할아버지가 일본인이었던 시절

우리 가족의 이야기는 100년 전부터 시작된다.


먼저, 재일교포라고 해도 크게 올드커머(Old Comer)와 뉴커머(New Comer)로 나눌 수 있다. 나는 이 중 올드커머에 해당한다. 올드커머는 일본의 식민지 정책의 영향을 직접적·간접적으로 받아, 일제강점기부터 광복 직후 혼란기에 일본에 건너온 사람들과 그 후손들을 가리킨다. 반면 뉴커머는 1980년대 이후 자발적으로 일본에 와 장기체류하게 된 한국 사람들을 뜻하며, 일본에 온 경위로 구별하기도 한다. 앞으로 이 글에서 다루는 ‘재일교포’는 올드커머를 지칭한다.


일제강점기 때 1세,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는 모두 일본 국적이었다. 강제로 일본인이 된 것이지만, 법적으로는 일본 국민이었던 것이다. 그때는 조선반도 전체가 일본의 식민지였으니까.

그런데 해방 후 1947년, 일본 정부가 갑자기 ‘조선인과 대만인은 당분간 외국인으로 본다’고 발표했다. 이때 일본에 거주하는 조선 출신자들은 법적으로는 여전히 일본 국적을 가지고 있었지만, 각종 서류의 국적란에는 출신지인 '조선'이라고 기재되었다. 하루아침에 일본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한 외국인도 아닌 애매한 존재가 된 것이다.

그리고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되면서 더 큰 변화가 일어났다. 일본은 '조선의 독립을 인정한다'며 조선인들의 일본 국적을 일방적으로 박탈했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당사자들의 의견을 전혀 묻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본 국적을 유지하고 싶습니까? 아니면 다른 국적을 원합니까?' 같은 질문은 없었다. 그냥 '당신들은 더 이상 일본 국민이 아닙니다'라는 일방적인 통보였다.

다른 나라는 어땠을까? 독일은 오스트리아 독립 때 오스트리아 출신자들에게 국적 선택권을 줬고, 영국은 식민지가 독립할 때 이중국적을 보장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은 그런 배려 없이 모든 조선인의 국적을 일괄 박탈했다.


분단된 조국 앞에서

그래도 조선이 독립했으니 조선 국적을 가지면 되는 거 아니냐고?

문제는 조국이 둘로 나뉘어 있다는 것이었다.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때, 일본은 한국만 국가로 인정하고 한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들에게만 '협정영주권'을 줬다. 북한은 인정하지 않는 나라였기 때문에, 한국 국적을 택하지 않으면 10년 넘게 영주권도 받을 수 없었다.

우리 1세들에게는 참 잔인한 선택이었다. 대한민국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생기기 전, 분단되기 전의 조선에서 태어나고 자란 분들인데, 갑자기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이었으니까. 그분들에게는 통일된 하나의 조선만이 진짜 고향이었다.


정치에 휘둘린 개인의 삶

결국 재일교포들의 국적은 개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본, 한국, 북한 세 나라의 정치에 의해 결정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은 냉전 체제 하에서 한국과 국교를 맺고, 한국 국적 취득자에게만 특혜를 주어 사실상 한국 국적 취득을 유도했다. 이는 순수한 정책적 배려라기보다는, 동아시아 냉전 정책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한국 국적에 '고집'하는 이유

① 마지막 보루


‘그럼 지금이라도 일본 국적으로 바꾸시면 되는데...’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복잡한 심정이 든다.

재일교포에게 한국 국적(또는 조선적)이 갖는 의미를 이해하려면, 우리가 처한 독특한 상황을 알아야 한다.

전 세계 어디를 봐도 재외동포들은 거주국 국적을 갖고 살면서도 이름, 언어, 문화 등 민족성의 일부라도 간직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재일교포는 정반대다. 거주국(일본) 국적은 없고, 민족교육을 받을 환경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서 언어는 물론이고 민족성을 보여주는 것들이 대부분 사라졌다. 일본 이름을 쓰고 마치 일본사람처럼 살아왔다.

그럼 재일교포로서의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는 게 뭐가 남았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이 강제로 박탈한 일본 국적 대신 갖게 된 '한국 국적'이나 무국적을 뜻하는 '조선'이라는 외국인등록증의 표시뿐이다. 이것이 우리 정체성을 나타내는 '마지막 보루'인 셈이다.

참고로 한국 국적을 선택하지 않고 '조선적'으로 남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일본에서는 '조선적'을 북한 국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일본 정부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조선적'은 법적으로는 사실상 무국적 상태를 의미한다. 물론 북한의 사상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모든 조선적 보유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국도 일본도 선택하지 않겠다'는 저항의 의미와 함께, 분단 이전의 통일된 조선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② 1세들에 대한 미안함

귀화에 대한 복잡한 감정도 있다.

과거에는 일본으로 귀화할 때 민족 이름 사용이 매우 어려웠고 귀화란 완전한 동화라고 여겨졌다. 그리고 원래 전쟁 후 국적 처리에서 일본 국적을 받거나 선택권을 얻었어야 할 우리가 스스로 귀화 신청을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굴욕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혹독한 식민지 시대를 견뎌낸 1세들에게 억압의 상징인 '일본 국적'으로 귀화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이 있다. 실제로 한 재일교포는 자녀에게 ‘귀화해도 되지만, 1세가 살아계실 때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③ 저항의 의미

민단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온 어떤 분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차별에 맞서 싸워왔는데, 그게 개선되지 않은 채로 그냥 귀화(포기)할 수는 없다는 자존심이 있다.'

수십 년간 지방참정권 획득이나 국적 조항 철폐 등을 위해 싸워온 재일교포 활동가들에게 한국 국적은 일종의 '저항의 상징'이기도 하다.


변화하는 시대

물론 시대는 변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로는 재일교포 사회에서도 귀화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줄어들었다. 국적과 민족성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재일교포들에게 국적 문제는 단순한 선택이 아니다. 100년이 넘는 복잡한 역사와 정체성이 얽힌 문제다.

그래서 ‘왜 한국 국적이에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곤란하다.

우리에게는 각자의 가족사가 있고, 그 안에 100년이 넘는 한일 관계의 복잡한 역사가 담겨 있다.

난 지금도 한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다.

만약 내 아이들한테 안 좋은 영향이 있다면 언젠가 귀화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조금 더 버티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 질문에 답하며, 우리의 이야기를 조금씩 전해나간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우리가 왜 이 국적을 '고집'하는지, 그 속에 담긴 복잡한 마음을 이해해 주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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