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 찾아간 재일교포 1세 할머니의 생가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그 자리에서
‘여기가 할머니가 태어난 집이야.’
오촌 아재의 안내로 들어선 그 자리에서 나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아름다운 전통 한옥이 정갈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처마 끝의 기와들이 햇살에 반짝이는 모습이 고즈넉하고 평화로웠다.
100년 전 할머니가 첫걸음을 떼고, 12년을 보내신 바로 그 터 위에 나와 일본인 남편,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 2학년인 아이들은 함께 서 있었다.
그곳에선 시간이 겹겹이 쌓여 흐르는 게 온몸으로 느껴졌고, 잘 관리된 잔디밭 위로 드리우는 그림자들은 마치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 같았다.
증조할머니가 뛰어놀던 그 마당에서
재일교포 4세인 이 아이들에게 이곳의 의미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직 어린 둘째는 넓은 잔디밭을 신나게 뛰어다니며 그저 새로운 놀이터를 만난 기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큰아이의 표정에서는 뭔가 다른 감정이 스쳐 지나가는 걸 볼 수 있었다. 마치 ‘이곳이 정말 우리와 연결된 곳이구나!’하는 깨달음 같은 것이었다.
그때 아께서 장고를 가져오셨다.
쿵덕쿵덕—
한국의 전통 북소리가 고즈넉한 한옥에 울려 퍼지는 순간, 아이들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둥둥 울려 퍼지는 장고 소리가 한옥의 따뜻한 마루를 가득 메우며, 나무 기둥과 서까래 사이사이를 돌아 더욱 깊고 풍성한 울림이 되어 되돌아왔다. 일본에서는 결코 들어볼 수 없었던 깊은 울림과 리듬이었다.
‘너희들도 해볼래?’
아의 따뜻한 권유에 아이들은 조심스럽게 장고채를 잡았다. 서툰 손길이지만 쿵덕쿵덕 소리를 내며 깔깔거리는 아이들을 보니, 내 가슴 깊숙한 곳이 뜨거워졌다. 이 자리에서, 이 땅에서 울려 퍼지는 장고소리. 할머니가 어린 시절 들으셨을 그 소리와 똑같을 것이다.
‘나중에 너희가 자신이 누구인지 고민하게 될 때가 올 거야. 그때 오늘 이 순간을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
마음속으로 아이들에게 전하는 간절한 바람이었다. 지금은 몰라도 언젠가는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될 테니까. 그때 이 땅에서의 기억이, 이곳에서 울려 퍼진 장고소리가 작은 나침반이라도 되었으면 했다.
한 세기를 관통하는 할머니의 발자취
오촌 아재께서 들려주시는 이야기 하나하나는 소중한 보물이었다.
‘할머니께서 1925년에 이 집에서 태어나셨으니까, 살아계셨으면 올해가 딱 100세시지.’
우리 가족의 재일교포로서의 역사가 벌써 한 세기를 넘어섰구나. 우리 가족이 걸어온 길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한옥 마당에서 할머니는 12년을 보내셨다. 아마도 지금 내 아이들처럼 이 잔디밭에서—그때는 흙마당이었을 테지만—뛰어노셨을 것이다. 가난한 살림에 입 하나라도 덜어드리기 위해 12세의 할머니는 부산의 부잣집으로 가서 살림일을 도우며 지내야 했다. 그 후 1944년, 19세의 할머니는 새로운 삶을 위해 일본으로 향하셨다. 먼저 일본에 건너가 계시던 할아버지와 결혼하기 위해서였다. 아마도 일본에 가면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서의 삶은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할머니가 마주한 현실은 강가의 좁은 판잣집에서 여러 가족이 함께 지내며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텨나가는 삶이었다.
그리고 해방 후에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국교가 단절되어 자유로운 왕래가 불가능했다.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가 이뤄진 후에야 비로소 고향 방문이 가능해졌고, 할머니는 일본에 건너간 후 무려 22년이 지나서야 1966년에 처음으로 고향 땅을 다시 밟으실 수 있으셨다. 19세에 떠나신 이곳을 41세가 되어서야 다시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할머니께서 22년 만에 고향에 돌아오셨을 때가 바로 지금의 나와 비슷한 나이였구나. 41세의 할머니는 어떤 마음으로 이 땅을 다시 밟으셨을까.
할머니께서는 그 22년 동안 얼마나 이곳을 그리워하셨을까. 일본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시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늘 이 터, 이 땅이 있으셨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들, 마당에서 뛰어놀던 순간들을 그리워하셨을 것이다.
4세대가 이어가는 새로운 이야기
이 터가 할머니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
어린 나이에 떠나야 했던 고향, 하지만 평생 마음 한편에 간직하셨을 그곳. 10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 그 할머니의 증손자들이 바로 이 땅에서 웃으며 뛰어놀고 있다.
재일교포 1세, 2세, 3세가 걸어온 길과 지금 4세가 살아갈 길은 분명 다를 것이다. 아이들이 살아갈 일본은 우리가 경험했던 것보다 훨씬 나은 환경일 거라 믿는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돌아보는 시간이 온다.
아이들에게 선물하고 싶었던 것
사실 이번에 한국에 오게 된 가장 큰 이유도 아이들 때문이었다.
재일교포 3세와 일본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한국이라는 또 다른 뿌리를 직접 느껴보게 해주고 싶었다. 머리로 아는 것과 온몸으로 느끼는 것은 전혀 다르니까.
할머니의 고향 마당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며 생각했다. 이 아이들이 자라서 언젠가 자신만의 길을 찾아갈 때, 오늘의 기억이 든든한 뿌리가 되어주기를. 1세부터 시작된 이 긴 여정이 아이들에게도 이어져, 그들만의 방식으로 꽃 피우기를.
그날 저녁, 피곤에 지친 아이들은 ‘오늘 정말 재미있었어’라며 스르르 잠이 들었다.
큰아이는 분명 기억할 것이다.
증조할머니가 태어나신 그 터의 모습을, 그곳에서 울려 퍼진 장고소리를, 그리고 그날의 특별함을.
그리고 언젠가는 둘째도 이 여행의 진짜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뿌리를 아는 것, 그것이 진정한 날개를 펼치는 힘이 된다고 믿으며 ⋯
할머니의 터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뿌리의 땅으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