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대통령선거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는 순간, 손이 떨렸다.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일이었다. 재일교포 3세로 살아온 나에게 선거권은 먼 나라 이야기였으니까.
목소리 없는 시민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랐지만, 한국국적인 나에게는 선거권이 없었다.
일본 사람들과 똑같이 세금을 내고, 똑같이 이 사회에서 살아가지만 정치에 참여할 권리는 주어지지 않았다.
시민으로서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것, 그것이 재일교포로 산다는 것의 현실이었다.
물론 2012년부터는 재외동포도 한국의 국정선거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일본에서 계속 살고 있는 나에게 한국 정치는 여전히 낯설었다.
게다가 시골에 살다 보니 관할 영사관까지 가려면 3시간이 걸렸다.
핑계일 수도 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선거는 늘 먼 일이었다.
뜻밖의 기회
그런데 올해, 예정에 없던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게 되었다. 이미 한국에 와 있던 나에게는 생애 첫 선거에 참여할 절호의 기회였다.
투표소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볍고 설렜다.
40년 넘게 해보지 못했던 일을 드디어 할 수 있다는 기대감과 동시에, 생애 첫 선택을 앞둔 떨림이 함께했다.
시민이 되는 순간
투표용지를 받아 들고, 후보자들의 이름을 살펴보며 신중하게 선택하는 그 순간은 특별했다.
이것이 민주주의구나, 이것이 시민의 권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투표함에 용지를 넣으면서 문득 생각했다. 일본에서는 아무리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도 정치적 결정에는 참여할 수 없었는데, 한국에서는 이렇게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 새삼 신기했다.
재일교포에게 선거가 갖는 의미
재일교포에게 선거권은 단순한 정치 참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시민으로 인정받는다'는 뜻이다.
내가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목소리를 낼 자격이 있다는 인정이다.
40년이 넘도록 정치적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나에게, 그 첫 번째 투표는 단순한 선거 참여가 아니었다. 그것은 시민으로서의 첫 발걸음이었다.
투표소를 나서며 마음 한편이 뜨거워졌다.
40년 만에 처음 낸 목소리. 작지만 확실한 한 표.
그것이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오늘 나는 침묵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