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두꺼비가 춤춘 날,
나는 로또에 꽝이 났다

춘곤(春困)과의 전쟁에서 기꺼이 포로가 된 이유

by 박동환


그날 오후, 내 무의식은 단체로 약이라도 먹은 게 분명했다.
한낮 선잠 속에서 금두꺼비가 나타나 무려 ‘풀스텝’으로 춤을 추고 있었으니까.

이건 누가 봐도 조상님이 보내준 인생 역전의 예고편이었다.
나는 춘곤의 나른함 속에 찾아온 이 화려한 환영을 ‘로또 1등’의 신호쯤으로 굳게 믿었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복권을 샀다.

결과는 역시나였다.
금두꺼비의 화려한 스텝은 온데간데없고, 내 손에 남은 건 번호 하나 맞추지 못한 종이 한 장뿐. 꽝손의 운명은 춘곤의 무게보다도 질겼다.

결국 그 길몽은 말 그대로 ‘일장춘몽(一場春夢)’이었다.
봄날의 짧은 선잠이 부린 짓궂은 장난이었을 뿐.

하지만 허탈함 뒤로 묘한 안도감이 찾아온다.
“그럼 그렇지. 내가 무슨…”

과학은 춘곤증에 뚜렷한 근거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낮 시간이 길어지며 늘어난 활동 기대치와 실제 몸 상태 사이의 괴리를 메우기 위해 우리가 만들어낸 일종의 ‘변명’이라는 것이다.

참으로 차가운 분석이지만, 나는 그 ‘변명’이라는 말이 싫지 않다.
만약 춘곤이 가짜 증상이라면, 그것은 우리 몸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지어낸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춘곤증을 이겨내야 할 적군이나 퇴치해야 할 질병쯤으로 여기며 ‘전쟁’을 선포하지만, 나는 이 평화로운 침공에 기꺼이 투항하기로 했다.
이 전쟁의 포로가 되는 대가는 고작 5천 원짜리 복권 한 장과 달콤한 선잠뿐이니까.

예전 같지 않은 몸의 무게를 느끼며 문득 깨닫는다.
이 쏟아지는 잠은 삶에 대한 권태가 아니다.

젊은 날의 봄이 질주를 위한 출발선이었다면,
지금 내 몸이 겪는 춘곤은 세월을 통과해온 엔진이 스스로 열을 식히는 자연스러운 휴지기다.

활동량 증가라는 세상의 요구에
“잠시만요, 아직은 나른할 때입니다.”
라고 점잖게 대답하는 내 몸의 정직한 신호인 셈이다.

그러니 춘곤은 몸이 부리는 부주의함이 아니라,
치열했던 계절을 지나온 이들에게만 허락되는 작은 훈장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비껴간 건 로또 번호만이 아니다.
내 삶의 수많은 욕망도 늘 한 끗 차이로 나를 비껴갔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나는 오늘, 큰돈 들어갈 걱정 없이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선잠을 청한다. 금두꺼비가 춤을 추든 말든, 꽝손이면 좀 어떤가.

잠에서 깨어나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마시는 미지근한 차 한 잔.
그리고 과학적 근거는 없어도 내 삶엔 꼭 필요한 ‘춘곤이라는 이름의 변명’.

어쩌면 이 부드러운 멈춤이야말로
내가 이미 당첨된 가장 확실한 행운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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