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만든 작품에 나타난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끝까지 이르리라" (스가랴 9:9-10)
내 몸도 내 맘대로 할 수 없다.
내 육체를 보면 내 의지로 움직일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다. 머리와 고개, 손과 발 그리고 몸통. 극히 제한적인 활동만 내 뜻대로 구현할 수 있다.
나머지 수십 만, 수백 만 가지 생명 활동은 치밀한 질서를 유지하며 몸이 알아서 움직인다. 이 질서가 무너지면 병이 나고, 회복되지 못하면 숨이 멎는다.
세상 일은 내 뜻대로 움직이는가? 우주의 질서는 어떤가? 동일하다.
세상 일도 내 뜻대로 되는 게 거의 없다. 광활한 우주는 한 치의 오차 없이 완벽한 질서를 유지하며 운행되고 있다.
만드신 분이 운행하신다.
광고회사에서 있으며 TV, 신문, 잡지, 라디오 등 많은 광고 제작에 참여했다.
제작물은 만든 이의 성품과 의도가 진하게 담겨 있다. 글자 크기, 자간 간격, 색깔, 손동작, 행간. 하나하나에 의미가 담겨있다.
의미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단지 의미를 찾지 못할 뿐이다.
밖을 돌아보면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완벽하다. 창조주 하나님의 성품이 이처럼 아름답고 완전하다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만일 폭군처럼 군림한다면 견딜 수 있는 피조물이 어디 있을까!
세상 만물은 모두 다른 이의 유익을 위해 존재한다. 하나님도 인간을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다. 이렇게 살라고 보여 주셨다.
예수님이 오셨기에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분명히 알게 됐다.
주님을 만나 알게 된 것. 이보다 복된 사건은 없다. 그분이 내 삶의 주인이 되면, 책임지시고 의의 길로 이끄신다. 가장 좋고 완전한 길.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립보서 2:6-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마태복음 11:2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