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들어!

3분의 듣기가 가져오는 인사이트

by UNLEAD

“내가 보기엔 말이야…”

그날도 그는 문제를 해결해주고 싶었다.

늘 그렇듯 진심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갑자기 외쳤다.

“오빠, 들어!”


이 장면은 배우 이병헌 님이 밝힌 일화 중 하나다.

5년 만에 깨달았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돕고 싶다면, 먼저 ‘해결’보다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 이야기가 왜 일과 연결되는 걸까?

조직 또는 협업 관계 속 수많은 대화도 해결이 아닌 듣기가 먼저였어야 하는 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병헌 님은 아내인 배우 이민정 님과 대화할 때 늘 솔루션을 고민해서 건넸다고 한다.

그날도 고민을 듣고 “내 생각엔 말이야…”라며 조언을 시작하려 하자, 이민정 님은

“오빠, 들어!”

그렇게 그는 처음으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그냥 들어주기만 했다고 한다.

놀랍게도, 아무 말 없이 들어주었을 뿐인데, 아내는 스스로 감정을 정리하고 화를 풀었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왜 고심해서 건넨 조언은 통하지 않고, 말없이 들어주는 건 오히려 상대에게 위로가 될까?


이건 단순한 부부관계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에서도 마찬가지다.


'일'에서의 말하기와 듣기


회사에서 ‘듣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상사의 입장에서는 지시 중심의 의사소통을 한다.

듣기보다 말하기가 우선이다.

지시(指示)는 '가리킬지(指)'와 '보일 시(示)'로, 방향을 정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언어다.


직원 입장에서는 보고 중심의 말을 한다.

보고(報告)는 '갚을 보(報)'와 '알릴 고(告)'로, 중요한 사실을 알리는 행위이다.


그런데 이때, 듣는 사람의 뇌는 어떤 상태일까?


정보를 ‘받는다’기보다는 이해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두뇌 풀가동 상태로 전환된다.

그래서 말하는 사람의 감정이나 맥락은 잘 전달되지 않는다.


질문이 튀어나온다.

말을 끊고 판단한다.

때로는 결론부터 말한다.

그리고 결정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숙제를 던지고 회의를 마무리한다.


보고자가 경험하는 무력감


여러 명이 함께 있는 회의라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서로 같은 단어를 사용하더라도, 해석이 달라지며 대화는 산으로 간다.

보고자는 대화의 주도권을 잃고, 자신의 말이 엉뚱한 이야기로 전개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말을 꺼낼 타이밍을 잃은 보고자는

갑자기 튀어나온 생뚱맞은 사람이 되어버린다.


보고자는 원래 목적, 결론, 이유가 담긴 스토리라인을 준비해 왔을 것이다.

하지만 질문이 끼어들기 시작하면, 그 서사는 산산조각 난다.

당황한 보고자는 처음 무슨 이야기를 하려 했는지조차 잊어버린다.


편도체가 과활성화되고, 스트레스 반응이 시작된다.

이성적 사고가 저하되고, 단순한 질문조차 위협처럼 느껴진다.

운 좋게 결론이 났다 하더라도, 그 결정은 내 결정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런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


회의 한 번 했을 뿐인데 동기부여가 와장창 되는 순간


- 정작 급한 건 놔두고, 상사는 ‘꼬투리’에 집착하는 것 같다.

- 결정을 내려줘야 하는데, 뜬금없는 조사 과제만 시킨다.

- 나는 말도 끝까지 못 했고, 남는 건 버거움 뿐이다.


그래서 이렇게 마음먹는다.


"이젠 시키는 것만 하자.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월급만 받으면 됐지."

"괜히 나섰다가는 또 혼나겠지."

"요령껏 눈치껏, 그렇게만 하자."


그 순간 팀은 한 명의 동료를 잃는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다고 부부처럼

“오 정말 많이 힘드셨겠어요! 저라도 화가 날 것 같아요. 누가 김 팀장을 힘들게 했어요? 제가 가서 혼내줄까요?” 이렇게 감성적으로만 회의를 끝낼 순 없다.

공감은 좋지만, 일엔 시간제한도 있고 결정의 의무도 있다.


하지만 최소한, 발화자가 충분히 서사를 펼칠 수 있는 시간은 줄 수 있다.

놀랍게도, 우리가 듣고자 했던 정보는 그 흐름 속에서 자연히 나온다.

단 1~3분만 기다리면 된다.


경청은 돌아가는 게 아닌 가장 빠른 전략


신뢰가 부족하면 조급해지고, 조급하면 질문이 쏟아진다.

하지만 말을 끊지 않고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예상치 못한 사실이 나온다.

상대의 지식과 나의 배경지식이 융합되고, 새로운 통찰이 생긴다.


이건 사고 구조의 틀을 바꾸는 경험이기도 하다.

3분의 인내가 꽤나 괜찮은 ROI를 가져다준다.


그리고 결과는?


- 문제 해결의 정확도와 속도가 높아진다.

- 발화자는 존중받는 감정을 느끼고,

- 자신이 조직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감각을 갖게 된다.


“오빠, 들어!”는 일에도 필요하다


이건 부부 사이의 절규만이 아니다.

지금도 수많은 직장에서, 팀 안에서 누군가는 이렇게 외치고 있다.


“부장님, 제 얘기 좀 들어주세요.”

“팀장님, 제안드려도 될까요?”


이때 한 번만 귀 기울여보자.

가장 큰 도움을 받는 사람은, 귀 기울인 바로 당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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