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인 리더십
- 1편

화장실에서 울다

by UNLEAD

"울지 마"라는 익숙한 한마디.

우리는 우는 것을 장려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지 않다.
그래서 감춰야만 했다.


‘직장에서 눈물 참는 법’이라고 검색해 보면, 나만 운 게 아니었구나 싶다.
‘회사에서 안 우는 법’, ‘회사에서 울었어 ㅜㅜ’ 같은 글들이 블라인드와 각종 커뮤니티에 가득하다.

직장이란 공적인 장소에서 개인적인 감정을, 그것도 ‘눈물’을 보인다는 건
적어도 내가 일했던 조직들에선 환영받지 못했다.

선배의 당황한 표정, 주변의 뜨거운 시선.
우는 사람은 ‘눈물을 보인 사건’으로도 괴롭지만, 그 후폭풍까지 감당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는다.


“도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 그따위로 하면 일이 되겠어? 어휴!”

갑자기 코끝이 찡해지고 두 눈이 뜨거워진다.
밥과 반찬은 처음 상태와 다를 바 없이 줄지 않은 채 그대로 담겨 있다.

“아니, 생각을 하는 거냐고!”

상사는 호통만으로 부족한 듯 말을 덧붙인다.

“... 다, 다시 알아보고 업데이트하겠습니다.”

‘스-후, 스-후, 스-후.’
천천히 심호흡을 하면 가라앉는다고 했는데, 가라앉긴 개뿔.
눈이 무겁다. 물이 올라와 눈으로 몰려드는 게 실시간으로 느껴진다.
이대로는 밥은커녕 말 한마디 더 듣는 것도 버겁다.

“저, 처리할 일이 있어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달그락. 숟가락은 하얀 식판 가장자리에 내려 놓이고,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던 듯 주식 이야기를 하거나 전날 퇴근 후 이야기를 이어간다.

‘안 보는 척’하지만, 시선은 이미 고정돼 있다.

“눈물이 떨어지면 안 돼. 이따 실컷 울게 해 줄게.”
나는 나 자신에게 다급하게 말을 걸며, 닭똥 같은 눈물이 식판에 떨어지지 않도록 황급히 자리를 정리하고 식당을 빠져나와 화장실로 향한다.

‘여기만은 안전해. 아무도 안 봐. 괜찮아.’

크게 소리 내어 울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눈물이 터져 나오고 끅끅대고 싶었지만, 애써 눌러 담는다.
코가 막혀 몇 번이고 휴지를 뽑아낸다.

억울하다. 화가 치민다.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고 했는데, 다 같이 식사하는 점심시간에 이렇게 호통을 쳐야 했을까?

무안하고, 수치스럽고, 너무 작아진 나 자신이 미웠다.

약한 내가 미웠고, 당당히 말하지 못한 내가, 빨갛게 눈이 부어 도망쳐 나온 내가, 너무 창피했다.


‘하... 이 얼굴로 자리에 어떻게 돌아가지?’

시원하게 울었다고 생각했지만, 감정의 해소나 카타르시스는 없었고 빨갛게 부어오른 눈만 남았다.

찬물로 어떻게든 가라앉혀보지만, 그렇게 쉽게 가라앉을 거면 사람 몸이겠나.

그런데 진짜 문제는 그다음 날이다. 직장에서 울고 나면, 그다음 날은 진심으로 출근하기 싫어진다.

휴가를 쓰고 싶지만, 그조차 ‘눈치’가 보여서 더 괴롭다.
복잡한 마음이 회오리처럼 뒤엉킨다.


수십 년이 지나도 ‘식사 중에 호통 듣던 그날’은 여전히 생생하다.

나이 들면 눈물이 마를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4-5년에 한 번씩은 위기가 찾아왔다.
잦진 않았지만, 그때마다 너무나 수치스러웠다.

‘눈물 = 약한 사람, 감정적인 사람, 이성적이지 못한 사람, 비논리적인 사람’
이런 학습된 믿음 때문인지, 나는 우는 나를 허용할 수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궁금했다.
“나는 왜 직장에서 도대체 왜 울었던걸까?”

- Q1 : 직장을 너무 사랑해서? 아니다.
- Q2 : 직장 사람들과 애착이 커서? 그건 더더욱 아니다.
- Q3 : 억울해서? 조금은 그런 것 같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거다!' 할 정도의 이유는 찾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 유튜브 쇼츠에서 배우 이병헌 님의 짧은 인터뷰를 보고 깨달았다.

아내 이민정 님이 힘든 얘기를 하면 늘 해결책을 주려 했다는 이병헌 님.

그날도 여지없이 솔루션을 주려던 찰나, 이민정 님이 외쳤단다.

“오빠, 들어!”

그래서 그날은 조언을 하지 않고 듣기만 했고, 이민정 님은 금세 감정을 풀었다고 한다


직장과 상관없을 것만 같은 그 영상을 보고 갑자기 '아!' 하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나는 ‘공감’과 ‘수용’을 박탈당해서 울고 있었던 거구나.

맞고 틀림의 문제가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철학과 입장에 대한 존중과 인정의 갈망이었구나.

직장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방향성에 누군가가 ‘공감’해주길 바랐던 것이구나!


후에도 종종 눈물 날 일이 있었지만, 그 감정의 뿌리를 인식한 뒤로는 좀 달라졌다.

나는 소통, 존중, 그리고 ‘관계 안에서의 인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고 그것이 내 삶의 본질적인 가치 중 하나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게 됐다:


말이 안 통하면 답답한 게 아니라, 내가 소중히 여기는 걸 ‘인정받지 못해’ 아팠던 거야.

상대가 바뀌지 않더라도, 회사라는 공동체 안에서 어떤 건 내려놓아야 하는 일이야.

모든 사람은 인정받고 싶어 해. 나부터 먼저 존중하고 표현하는 법을 배워가자.


이제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언제 멈추고 언제 단호히 나아가야 할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됐다.


직장에서 눈물 흘린 적 있다고?

화나고, 슬프고, 분노했던 그 감정 이면에 어쩌면 당신의 간절한 바람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

그 바람은, 우리가 진짜 원하는 삶과 가장 깊은 가치를 향한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빈 노트나 컴퓨터 어디라도 좋다. 차분하게 글을 써보자.
감정의 밑바닥에 어떤 핵심 믿음이 숨어 있는지 하나하나 분해해 보자.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다 보면 손끝에서도 마음이 말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한 줄 한 줄 이어질 때 삶을 대하는 우리의 선택이 변화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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