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계명과 부모의 올바른 역할(1)
3편에서 소개한 태산가 십계명은 자녀들이 말귀 알아 들을 수 있을 때 부터 수시로 말하면서 당연히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지금도 틈만 나면 확인 및 재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가끔 자녀들이 “돈 많이 벌어 효도하겠다”고 하면 우리는 “우리가 알아서 살면 되니, 우리 신경쓰지 말고 너희들이나 잘 살아라”라고 합니다.
특히, 얘들은 제가 자동차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는 “나중에 돈 벌어 페라리, 람보르기니 등 고성능 스포츠카를 사주겠다”고 한다. 그럴때마다 사줄려면 지금 사 주던지, 나이들면 눈 어두워 사줘도 운전이 불가능하니 필요없다고 사양한다.
부모 자식간 너무 냉정한 거 아닙니까?라고 비판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이런 냉정함을 유지하는 것은 독립적이고 미래 발전적 자녀를 위해 名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부모들은 자녀들을 끝까지 지켜주지 못합니다. 언젠가는 죽기 때문이고, 자연사 할 경우, 자녀들보다 반드시 먼저 죽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헬리콥터 맘처럼 늘 자녀들 곁을 빙빙 돌면서 케어할 시간이 없습니다. 설령 시간이 있다 해도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집에서 키우는 화초나 금붕어는 제 경험상 결핍으로 죽는 경우가 없습니다. 화초는 물을 너무 많이 주어서, 금붕어는 먹이를 너무 많이 주어서 죽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과 관심을 많이 준다고 훌륭한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절제된 사랑과 관심이 자녀를 독립적이고 강하게 만듭니다.
공부를 잘 해야 행복하고, 못하면 죽습니까? 절대 아닙니다.
그리고 모든 인간이 축구나 달리기를 잘 할 수 없듯이 공부 또한 타고난 재능이 어느 정도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학창시절 공부를 하는 이유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학식과 교양을 익히는 과정이지, 모두 교수나 학자가 되기 위해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학교나 가정에서 공부 못하는 학생을 뭐라 하는 것은 축구장에서 공 못차는 선수를 탓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공 못차는 축구선수가 일부러 그렇게 하겠습니까?
학생이 학교에서 일부러 공부 못하는 시늉을 하겠습니까? 단언컨대 단 한명도 그런 학생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참 힘든 상황인데, 자꾸 뭐라고 하면 그들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저라면 미쳐 버릴 것 같습니다. 어떤 일이던지 잘 하는 사람들은 칭찬하지 않아도 됩니다.
공부나 어떤 일을 잘하는 이들은 자존감이 높고 자신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뭘 못하는 사람은 본인이 제일 답답하고 힘들고 죽고 싶습니다. 잘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그들에게 알려주고, 도저히 안되는 상황이면 딴 일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합니다.
안되는 일은 억지로 시키거나 시도를 한다해도, 결국 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녀 학업문제로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들어보면 자녀보다 부모가 잘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그런데도 그 부모들은 자녀가 부모의 말을 안듣고 문제를 일으킨다고 합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항상 부모는 옳고 자녀는 무조건 부모 말을 따라야 합니까? 이런 가정은 부모 자식간 대화단절 등 점점 더 많은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다음편은 부모의 올바른 역할(2)에 대한 글을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