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헤드셋이 하나 있다. 몇십만 원이나 하는 아주 좋은 것을 사지는 못하고, 가성비를 챙기기 위해 6만 원 정도 하는 노이즈 캔슬링 헤드셋을 샀다.
원래는 에어팟을 꼈었는데 선천적으로 귀가 약한 것인지 아주 오래 낄 수 없었다. 30분만 끼고 있어도 서서히 귀가 불편해졌기 때문이다. 보통은 귀 연골이 저리다거나 귀 속이 가렵다거나 하는 증상이었다. 그렇지만 영화를 보거나, 공부를 할 때 주변의 소리에 예민한 나로서는 노이즈 캔슬링과 귓구멍을 꽉 막아주는 무언가는 꼭 필요한 존재였다. 조금 불편해도 그냥 참고 썼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을 간과했다. 몸에서 무언가 불편하다는 것은 몸이 보내는 신호다. 귀가 불편하다는 것은 귀가 좋아하지 않는 상태라는 것이다. 이게 지속되면 통증, 일종의 병이 된다. 외이도염, 중이염 같은 병명을 달고 있는 증상 말이다. 몸이 나를 아프게 해서 에어팟을 적극적으로 거부할 때가 되어서야 그걸 깨달았다.
그래서 헤드셋을 샀다. 귓구멍을 직접적으로 막지 않고, 고막에 피로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주변의 소음은 여전히 달갑지 않기에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있는 것으로 샀다. 귀가 아주 좋아하지는 않지만 에어팟보다는 나아 보인다. 귀가 덜 아프다.
노이즈 캔슬링을 켜고 기분 좋은 팝송이 흘러나오는 6만 원짜리 귀마개를 끼고 있으면 세상과 분리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아주 미세하게 새어 들어오는 주변의 소리와 그것을 밀어내고 귀 가까이에서 들어오는 듣기 좋은 음악은 나를 어떠한 세계로 이끌고 들어가는 것만 같다. 혼잡한 카페 속의 남들의 시선에 들어오지 않는 구석 자리 같은 느낌이다. 내가 무엇을 해도 아무도 모르는 그런 자리 말이다. 어쩌면 사방이 반투명한 벽으로 막혀있을 수도 있겠다. 그렇게 난 분명 이 세상과는 분리되어 있다. 그 느낌이 꽤 좋다. 현실에서 도망쳐 어딘지 모르는 곳에서 마음 놓고 쉴 수 있다. 그래서인지 몇 달 쓰지 않았지만 도망칠 곳을 마련해 주는 헤드셋에 벌써 애정이 많이 들었다.
한 번씩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수단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나의 경우에는 헤드셋과 함께 하는 산책 시간이 그러하다. 소설을 읽어서 소설 속으로 빨려 들어가 쉬는 사람도 있고, 영화를 보거나 단순히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애써 현실로부터 멀어지는 사람도 있다. 무엇이든 좋다. 모두가 자신이 하는 일을 즐길 수는 없는 일이고, 실제로 그렇다. 그러니 그 일에서 멀어질 필요가 있다. 24시간 내내 시달리면 금방 지치고 병이 든다. 잘 살자고 하는 일인데 고달파서는 될 일이 아니다. 이건 일종의 회복이다. 회복의 수단이 없다면 의식적으로라도 만드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