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당신에게 이 일로 서운함을 느껴도 괜찮을까요?
나는 서운하다는 감정을 자주 느끼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섬세하고 예민하기 때문에, 서운함을 잘 느낀다고 생각한다. 친구, 가족, 연인 등 관계에 상관없이 사람에게 쉽게 서운함을 느낀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다면, 그렇다고 해서 너무 자책하거나, 나 스스로가 속 좁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내가 생각하는,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서운함을 잘 느끼는 이유는, 우리가 인간이기에, 너무나도 이기적이어서, 세상 사람들 모두가 나와 같다고 착각해서이지 않을까 싶다.
가령 나는 이만큼의 배려를 해주었는데, 그것이 똑같은 만큼 돌아오지 않을 때, 즉 내가 해준 만큼 기대를 하고, 그 기대를 돌려받지 못했을 때 서운함을 느낀다고 생각한다.
서운함이라는 감정은 참으로 애매모호해서, 그 감정을 내가 느껴도 되는 상황인지 의심이 되고, 이 감정을 들게 한 사람의 잘못인지, 아니면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인지 구분하는 것이 어렵다. 표현을 하자니, 상대방 입장에서는 의도하지 않은 상황이라 당황스럽고, 그저 삼키자니, 내 마음이 불편하고 무거워진다.
하지만 서운함 자체는, 내가 느낀 감정이다. '내'가 '느낀' '나의 감정'이기 때문에, 서운함을 느껴도 되고 느끼면 안 되는 상황이라는 건 없다. 느꼈기 때문에 느낀 것이다. 다만,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주의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서운함을 느꼈다고 해서, 상대방이 서운함을 느끼게 해서 미안해할 의무는 없다. 사람마다 서운함을 느끼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그 사람이라면 서운해하지 않을 만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그 행동에 대해 사과를 한다면, 오히려 말뿐인 사과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차라리, 서운함을 느끼게 한 것에 대한 사과가 더 진정성 있을 것이다.
또한, 그 서운함을 표현하는 과정에 있어서, 그 사람의 사과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기대해서도 안된다. 대부분 그 서운함을 표현하는 것이, 그저 알아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탓하고 책임을 요하고 사과를 기대하는 마음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그 마음 자체가 상대방에게는 강압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아직 나도 서운함이라는 이 애매한 감정을 다루는 것에 능숙하지 않고, 어렵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깨달은 것이 있다면, 어떻게 하면 현명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있는 그대로 이 감정을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1. 미루지 말 것 : 상황
발생 즉시, 최대한, 미룰수록 더 얘기하기 힘들어짐, 뒤끝,
모든 일에 있어서 미루지 않는 것은 굉장히 어려우면서도 중요하다. 특히나 감정을 전달함에 있어서 미루지 않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상대방에게 감정을 전달을 할 때,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럽게 수그러드는 감정이 있을 수도 있다. 반면,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과 상상과 걱정이 뒤얽혀 감정이 고조되고 증폭될 수 있는데, 그럴수록 점점 더 상대방에게 이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미룸의 이유가 귀찮음이든,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든, 두려움이든, 그 어떤 것이 든 간에, 감정이 증폭되기 이전에, 가볍게 있는 그대로 전달할 수 있을 때 전하는 것이 가장 현명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타이밍이 맞지 않아서 그 즉시는 어려울 수 있더라도, 적어도 너무 긴 시간이 지나버려서 담아두기에는 응어리가 남아있지만 얘기하기에는 너무 많이 지나버린, 그런 애매한 때가 되기 전에 말을 하는 것이 서로에게 있어서 좋을 것이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감정에 대한 온전한 기억보단, 그 사이에 편집되고 왜곡되는 나만의 생각과 상상이 가미될 수도 있고, 그만큼 말을 꺼내는 것조차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하게 된다. 감정이 생긴 직후 상대방에게 쏟아내라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 감정에 대해 어떤 감정이며 왜 느꼈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생각하되, 미루지는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2. 이성적으로 전달할 것 : 감정적으로 언성을 높이면서 얘기하면 핀트가 어긋남, 그 상황에서의 내 서운함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새로운 갈등이 생김
내 서운함은 상대방이 당연하게 달래주고 사과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내 감정을 전달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감정과 생각 또한 충분히 이해하고 존중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내 감정을 전달할 때 감정적으로 말을 하게 되면,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이 아닌, 그 전달하는 순간에 섞여 있는 감정으로 논점이 전이될 수 있다. 감정을 전달할 때에 있어서는, 따라서, 오히려 더 이성적으로, 느꼈던 감정에 대한 팩트 그 자체만을 담담하고 담백하게 전달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3. 내 입장에 대해서 전달하고, 상대방의 생각은 상대방에게 맡길 것
앞서 언급했다시피 서운함은 내 감정, 그 이후의 일은 그 사람의 선택과 책임인 것이다. 내가 판단하고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 사람이 내 서운함이 이해가 되어 사과하든, 그 상황에 대한 그 사람의 입장이 있다면 해명하든, 나 또한 이에 대해 귀 기울여 들어주어야 할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4. 서운할만한 상황인지 객관적으로 판단해 볼 것
물론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나처럼 다른 사람에 비해 쉽게 서운함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내가 과민반응하는지, 혹은 그런 사람이 아니더라도, 오늘따라 유독,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예민해져 있는 상황이라 평소라면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을 일도 그렇게 느껴지는 건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무조건적인 남 탓도, 무조건적인 자책도 좋지 않다. 최대한 나와 상대방, 그리고 이 상황에서 멀리 떨어져서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5. 사소한 건 가볍게, 진지한 건 무겁게
아주 사소한 일조차도 엄청나게 무게를 잡으며 진지하게 말하면, 괜히 상황이 어색해질 수 있고, 진지하게 말해야 하는 상황에서 장난스럽게 말하면 상대방도 별일 아니라는 듯이 받아들일 수 있다. 상황에 맞게, 때로는 센스와 유머를 발휘하고, 또 때로는 이성과 논리를 기반으로 적절하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6. 그 밖의 주의할 것
비교 금지, 옛날 얘기 금지, 남 탓 금지, 표현 없이 알아주길 바라기 금지
또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또, 나라는 사람에 대해 몰랐다가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있다. 나는 부모님, 특히 엄마와 대화를 할 때 내가 느낀 감정을 이성적으로 잘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어느 부분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친구, 특히 연인에게는 이런 표현을 함에 있어서 어려움을 느끼면서 깨달았다.
내가 그렇게 엄마께는 잘 표현하고, 연인에게는 표현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상대방이 나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던 것 같다.
엄마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내 곁에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무의식적으로 있지만, 연인은 내가 어떤 표현, 특히 서운한 감정을 말을 할 때, 그 상황에 대한 해결 혹은 노력보다는 나와의 관계를 놓는 것을 택할 가능성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기에 용기를 내기가 어려운 것이라고 깨달았다.
하지만, 이런 감정들을 말하지 못하고 쌓아두고 참고 견딘다고 해서 더 좋은 관계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만 곪아가고, 나 혼자 참다가 한 번에 이 감정들을 터뜨려 버리면, 그것만큼 상대방에게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운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두렵겠지만, 용기를 내어보는 것이 관계를 좋은 방향으로 이어감에 있어서 하나의 큰 과제라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처음이 어렵다. 한 번 용기를 내어보면, 그만큼 나도 성장을 할 것이고, 더 현명하게,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면서도 상대방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잘 전달하는 나만의 방법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이는 꼭 연애가 아니더라도, 앞으로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나의 큰 자산 중 하나가 될 것이고, 사람을 대하는 상황에 있어서 나만의 무기와 능력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건투를 빈다. 여러분 모두, 그리고 나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