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준비하는 방식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예전의 나는 여행을 계획할 때마다 작은 연구자가 된 듯이 책을 펼치고, 인터넷의 수많은 페이지를 넘기며 자료를 수집했다. 또한 여행 블로그를 보며 메모장을 빼곡히 채우던 시간은 번거롭지만 묘한 설렘이 있었다. 그 과정을 거쳐 완성된 여행 일정표는 내 손끝에서 직접 지어진 작은 작품 같았다.
하지만 요즘은 세상이 달라졌다. 검색창에 질문을 던질 필요조차 없다. AI에게 한 줄만 물으면 금세 답이 쏟아진다. 어느 도시에서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어떤 숙소가 가성비 좋은지, 심지어 몇 시에 어느 길로 걸으면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는지까지 친절히 알려준다. 손안에서 이루어지는 정보의 축적은 놀랍도록 빠르고 편리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마음 한쪽에서는 ‘너무 쉽게 얻은 답’이란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얼마 전 가족 여행을 앞두고 동생과 함께 일정을 상의했다. 나는 여전히 예전 습관대로 인터넷을 뒤지고 있었고, 동생은 옆에서 태연하게 말했다.
“AI가 다 알려주는데 굳이 그렇게 고생할 필요 있어?”
나는 잠시 멈칫하다가 대답했다.
“AI는 거짓말을 많이 해. 틀린 정보가 많잖아.”
그러자 동생은 웃으며 한마디 툭 던졌다.
“그래도 사람보다는 덜하지 않아?”
순간, 그 짧은 말이 나를 멈춰 세웠다. 그렇다. 사람도 거짓말을 한다. 때로는 선의의 거짓말로 위로를 주지만 대부분은 상처와 피해를 주는 거짓말이 더 많다. 동생의 말은 단순했지만 묘한 울림을 남겼다. 그 울림은 내 안에서 천천히 맴돌며, 곧 불안이라는 이름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단순히 ‘AI가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었다. 진짜 불안의 실체는 우리가 그 말을 아무런 검증 없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사용하는 태도였다. 여행 일정에서 작은 오류가 발생한다면 그저 재미있는 해프닝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중요한 선택 앞에서 그런 오류를 그대로 믿어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그 순간 찾아올 혼란은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AI가 내놓는 답은 어디까지나 인간이 남긴 기록의 집합이다. 누군가의 잘못된 경험담이 데이터가 되고, 그것이 다시 새로운 오류로 되돌아온다. 결국 AI의 거짓은 인간의 불완전함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문제의 본질은 AI의 신뢰성에만 있지 않다. 그것을 걸러내고 검증하지 않은 채 받아들이는 우리의 책임이 더 크다.
편리함은 유혹이 된다. 버튼 하나로 길잡이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점점 더 게으르게 만든다. 그러나 삶의 중요한 선택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병원을 고를 때, 금융 상품을 결정할 때, 아이의 진로를 상담할 때도 우리는 AI에게 답을 묻는다. 그러나 그 답이 언제나 옳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쉽게 얻은 답일수록 반드시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한다.
나는 동생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이런 생각에 닿았다. AI의 오류는 결국 인간의 거짓보다 덜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차이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진짜 중요한 건 우리가 그 답을 대하는 태도다.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정보의 주체가 아니라 소비자에 머물고 만다.
여행을 준비하는 일은 삶을 미리 연습하는 일과도 같다. 길 위에서 언제나 돌발 상황이 생기듯, 정보의 세계도 늘 불확실하다. 비가 예보 없이 쏟아지거나, 예약한 숙소가 갑자기 취소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변수를 마주하며 우리는 조금씩 단단해진다. 정보 역시 마찬가지다. 틀린 정보를 만나더라도 그것을 바로잡고, 다시 길을 찾는 과정에서 우리는 성숙해진다.
'사람보다는 덜해'라고 동생이 한 말은 결국 이렇게 되묻는 듯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람의 거짓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누군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상처받은 적은 없었는가. AI의 문제를 탓하기 전에, 인간 사회 속에서 거짓과 진실을 어떻게 구분하며 살아왔는지를 먼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여행의 목적지는 어쩌면 부차적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어떤 태도를 배우는가다. AI든 사람이든, 거짓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그러나 그것을 걸러내고, 책임을 지고, 더 나은 길을 선택하는 힘은 오직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그 몫을 기꺼이 감당할 때, 여행은 한결 안전해지고, 삶은 조금 더 단단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