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빛으로 이어붙인 시간

지승과 줌치의 시작

by Grace Lim

한지공예의 세계에 들어선 지도 어느덧 10년이 넘었을 무렵.

그 사이 나는 ‘작가’라 불리기엔 조금은 무거운 책임들을 지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게 공예의 길을 열어주고,

내 삶을 만든 사람들은

거창한 이름을 가진 거장들이 아니었다.

그저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던

평범한 공예인들.


공예 입문 10년 즈음,

나는 생각지도 못한 큰 사업을 단독으로 맡게 되었다.

그 사업은 바로 **한지공예 체험관 운영**이었다.


일주일 중 6일,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체험관을 운영하며 수십 명의 방문객을 맞이하고,

체험 준비와 설명, 마감 정리까지

혼자 감당해야 하는 일이었다.


겉보기엔 화려해 보였지만,

실상은 지독히도 고되고 외로운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때,

“하루는 쉬셔야죠.” 하며

조용히 도와주신 한 선생님이 계셨다.


그 고마움 하나로

나는 4년이라는 시간을 그분과 함께 일하게 되었고,

그 인연을 통해 처음으로

**지승과 줌치의 기초**를 배울 수 있었다.


당시 나는

색한지를 다루는 기존의 공예 방식에

어느 정도 회의감이 들고 있던 시점이었다.


그때

지승의 끈질긴 꼬임,

줌치의 부드럽고 거친 질감은

내게는 전혀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어주는

빛 같은 존재였다.


손끝으로 꼬고, 두드리고, 비비고,

문양을 엮고, 풀어내고,

밤을 새워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지승으로 엮은 안경집,

줌치로 빚은 연꽃 문양의 파우치,

손바닥만 한 조각 안에

내 마음을 다 쏟아붓던 시간.


작품을 만들고, 체험 아이템을 개발하고,

키트를 구성하고,

공예를 ‘일’로 바꾸는 작업에 매달렸다.


지금은,

그때의 가르쳐준 선생님보다 훨씬 더 많은 작업을 해냈고,

훨씬 더 다양한 결과물을 만들 수 있게 되었지만,

나는 지금도 그분께 배운

아주 기본적인 지승과 줌치의 기술들이

오늘의 나를 만든 단단한 초석이었다고 믿는다.


그 기술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 시간을 통해 다져진 내 태도와 마음가짐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이니까.


결국 공예란,

기술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손끝을 따라

조용히 이어붙이고

묵묵히 엮어낸 시간들이

작은 ‘나’를 만든다.


그렇게,

나는 다시 손끝에 집중하고

다시 한지를 꺼내 들며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의 나’를 만든다.


빛을 엮고, 결을 다듬는 이 고요한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시작은

누군가의 작은 손길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나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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