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집에서 나는 소리 (4) 완결

자만파, 자기 만나 파탄

by 밤얼음

손에 들린 골프채 끝이 천천히 아래로 기울었다.

몸이 꺾이며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한 번의 큰 소리.


헐떡거리며 발버둥 치던 발끝이 멈췄다.


바닥의 붉은 웅덩이 위로 작은 파문이 번졌다.

안쪽은 언제나 늦게 드러난다.



남편을 재우는 방법은 하나였다.

수면제.

죽기 전까지만 맞아주다, 잠들 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알약을 곱게 빻아 넣는다.

다른 것도,

몇 방울.

티 안 나게.


오늘도 남편은 그걸 들이켰다.


그런데.

왜 안 죽지.

너무 조금 탔나.


빨래를 끝내고 나오니 곤히 잠들어 있다.

코 밑에 손을 가져다대보니, 뜨거운 이 스쳤다.


얼마나 더 처먹여야 뒤지는 거야.


자장가를 부르며,

남편의 머리 위를 천천히 쓸었다.


잠들었으면 좋겠어.

영원히.


바닥에 엎어져있는 골프채가 눈에 들어왔다.

내 살을 터뜨리던 쇳덩어리.

한참을 그걸 내려다봤다.

손이 천천히 올라갔다.


문득,

한 달 전이 떠올랐다.

계단에 숨을 죽이고 앉아 있었다.

아래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내가 아무리 여자 안 만나봤어도~"


순진해 빠진 목소리.

누구인지 궁금했다.

정확히는, 몇 호에 사는지가.


701호, 박헌신.


생각보다 더 순진했다.

쓸데없는 오지랖까지 고마웠을 정도니.

하마터면 진짜 사랑에라도 빠져버릴 뻔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이다.


잔을 하나 따로 꺼내놨다.


"남편 출장 갔어요. 오늘은 저희 집으로 올라와요."



윗집 여자에게서 온 전화였다.

집이 비었으니 올라오라는.


나도 안다.

정상적인 연애는 아니다.

첫 연애가 남의 여자.


그래서 더 피가 끓는다.


형처럼 성실하게 살다가 파탄 날 바엔,

처음부터 막장으로 가는 게 낫지.


애초에 정상적인 연애라는 게 있긴 해?


벨을 누르자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문을 열었다.

남편 앞에서는 절대 못 짓는 얼굴.

밤이 되면 내 앞에서만 보였다.


오늘도 그녀의 상처를 구석구석 더듬었다.

아프지 않게.


그녀의 손이 머리를 쓸어내렸다.

익숙한 노랫말, 자장가.


... 이상하다.


나른하다.

숨이 느려졌다.



눈이 확 떠졌다.


내가 언제 잠들었지.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프다.

일어나려는데 허리가 붙은 것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손에 뭔가 들려 있다.

끈적한 촉감.


골프채.


내 손바닥.


... 피... 피다.


바로 옆.

남자가 쓰러져 있다.


윗집... 남자.


출장 갔다던 그녀의 남편.


"헌신씨..."


구석에서 그녀가 떨고 있다.


아닌데.

이게 아닌데.


그녀가 울먹인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헌신씨가 내 남편을... 흐윽."


쿵. 쿵.

내 심장 소리 위로, 그녀의 숨이 겹쳤다.

창밖을 흘끗 보며 그녀가 처절하게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완벽한 피해자의 얼굴로.


"아냐... 내가 그런 게..."


비명이 끊겼다.


어느새 눈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엄지손가락이 내 뺨을 문지른다.


"헌신씨는... 내 남편이랑 다르다면서요."


입꼬리가 찢어진다.


내려갔다.

다시 올라간다.


"나도 알고 있었어요... 내 남편이랑 다르다는 거."


사이렌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창문 너머로 붉은빛이 흔들린다.


"그때... 신고해줘서 고마워요."


그녀가 내 어깨에 기댔다.

생긋 웃으며.

남편을 바라본 채.


풀렸던 손가락이

그녀의 손을 따라 하나씩 닫혔다.


안쪽은 언제나 늦게 드러난다.

가끔은,

영원히 드러나지 않기도.


자장가가 끝났다.


오늘은 층간소음이 없었다.


세상엔 조용해지는 방법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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