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집에서 나는 소리 (3)

자만파, 자기 만나 파탄

by 밤얼음

문이 열리자,

윗집 남자는 평온한 얼굴로 서 있었다.


"무슨 일이시죠?"


남자의 등 뒤, 안쪽 거실 끝.

여자의 다리가 바닥에 늘어져 있었다.

그 아래로 번진 붉은 자국이 문턱까지 이어져 있었다.


냄새가 밀려 나왔다.

골프채 끝이 시야에 걸린 건, 그 다음이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새까만 쇳덩어리.


"세탁기... 아직 안 돌렸는데."


젖어 있었다.

검붉게.


"곧 끝나는 건데. 아쉽네."


그날 이후,

801호에는 경찰이 몇 번이나 드나들었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지금도.


쿵.

쿵.


소리는 계속되고 있다.


자장가가 이어졌다.


숨이 천천히 풀렸다.

거부할 틈도 없이 잠에 잠겼다.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문 앞에 서 있는 건,

윗집 여자였다.


복도등이 깜빡였다.

푸른 살결 위로 빛이 끊겼다, 이어졌다.


작은 식탁에 마주 앉았다.


"... 신고해줘서 고마워요."


여자의 손이 떨렸다.

유리컵이 부딪히며 작은 소리가 났다.


"지금 자면... 아침까지 자요, 저 사람."


천장을 올려다보던 시선이 이내 아래로 떨어졌다.


손등.

없던 상처가 늘어 있었다.


내가 괜히 끼어든 건가.


생각과 몸이 따로 놀았다.


"잠깐만요."


서랍을 열어 약통을 꺼냈다.

뚜껑을 비틀자 묽은 냄새가 올라왔다.


손등의 상처 위로 손을 가져갔다.

닿기 직전, 여자의 몸이 짧게 굳었다.


"겁먹지 마요. 난 당신 남편이랑 다르니까."


방금 한 말이 머릿속을 늦게 따라왔다.


뭐라는 거냐, 박헌신.

유부녀다.

정신 차려.

인생 파탄날 일 있어?


여자가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입술을 가볍게 눌러 물었다.


가디건을 끌어내렸다.

허리까지.

하얀 살 위로 검은 자국과 붉은 자국이 겹쳐 있었다.

마치 짓이겨진 꽃잎처럼.


이번엔 내가 굳었다.


"보기... 흉하죠."

"... 도대체 왜 그렇게."


이유는 모르겠다.

왜 이렇게까지 거슬리는지.


원피스 끈이 풀렸다.

툭.

바닥에 닿는 소리가 공기를 갈랐다.


그녀가 내 얼굴을 감쌌다.

입술이 닿을 듯 말 듯, 아슬하게 스쳤다.


숨결에 섞인 지독한 비누 향.

그 아래로 끼쳐오는 비릿한 냄새.


온도가 어긋났다.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파고들었다.

도망칠 틈도 없이, 더 깊게.


약통이 손에서 미끄러졌다.

붉은 액체가 번지며 작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발끝이 그 가장자리를 건드렸다.


이 정도 깊이면, 빠져도 죽진 않겠지.


허리를 끌어당기자 그녀의 몸이 기울어졌다.

상처 옆을 입술 스칠 때마다 그녀의 몸이 작게 떨렸다.


붙잡힌 허리가 더 가까이 당겨졌다.

그녀의 손이 식탁 끝을 짚은 채,

다른 손으로 내 어깨를 꽉 움켜쥐었다.


손등에 붙은 밴드가 벌어지며 안쪽이 드러났다.

그때마다 짧은 숨이 터져 나왔다.


진짜 안쪽은,

저 숨보다 더 깊은 데 있었다.


그걸 모른 채,


그날 이후,

윗집에서 소리가 떨어질 때면 나는 가만히 멈춰 있었다.


이어지는 자장가.


그리고

우리 집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


문을 열면

그녀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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