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집에서 나는 소리 (2)

자만파, 자기 만나 파탄

by 밤얼음

뒤집힌 의자와 나뒹구는 술병들.

바닥에는 닦다 만 붉은 자국이 번져 있었다.


"그렇게 많이 시끄러운가요?"

"내려와서 한 번 들어보시겠어요?"

"...흠. 주의를 줘야겠네요."


801호 현관문이 닫혔다.

잠시 후, 방문이 열리고 남자가 들어왔다.

웅크려 있던 여자의 멱살이 잡혀 그대로 끌려 올라갔다.


손이 날아왔고,

몸이 꺾여 바닥에 부딪혔다.

입술 끝이 터지며 피가 스며 나왔다.

남자의 손에 들린 골프채가 엎어진 몸 위로 떨어졌다.


둔탁한 소리가 몇 번,

바닥을 타고 아래층까지 이어졌다.

남자가 지쳐 침대에 쓰러지고 나서야 방 안에 고요가 내려앉았다.


여자는 한동안 그대로였다.

조금 뒤,

느리게 손을 뻗어 붉게 젖은 옷과 천을 끌어당겼다.


언제나처럼 세탁기 앞까지 갔다가

그 앞에서 멈췄다.


몸이 먼저 굳었고, 손이 더 가지 않았다.

결국 화장실로 들어갔다.


욕조에 쏟아 넣고 물을 틀자

붉은 물이 천 사이로 퍼져 나왔다.


비누를 쥔 손이 같은 자리를 계속 문질렀다.

지워진 것 같으면 다시 번져 나왔다.


손을 바꿔 쥐고도,

같은 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한참 동안을 문질러도

색은 흐려질 뿐, 사라지지 않았다.


젖은 천을 움켜쥔 채 얼굴을 묻었다.

숨이 안으로만 부서졌다.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방 안에서 남자가 뒤척였다.

여자는 다가가 조용히 옆에 앉았다.

불어 터진 입술이 조금 벌어졌다.


"우리 아가 잘 자라. 눈 감으면 괜찮아. 잘 자라, 잘 자라."


손은 같은 속도로 머리를 쓸어내렸다.

남자의 숨은 점점 가라앉았다.




엘리베이터 안,

셋이 나란히 섰다.


여자의 목선이 눈에 들어왔다.

하얀 피부, 드러난 쇄골.

윗집 남자의 손이 올라와 여자의 어깨를 덮었다.

가디건을 끌어올리듯이.


"요즘은 세탁기 소리 안 나죠?"


8층을 누르더니,

내가 누르려던 7층까지 대신 눌렀다.


"세탁기 소리만 안 들리던데요."


그가 여자의 머리를 쓸어내리며, 씨익 웃었다.


"집사람이 밤마다 자꾸... 빨래거리를 만드네요. 피곤해 죽겠는데."


그날 밤도, 어김없이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가디건이 흘러내리던 어깨.

소리가 떨어질 때마다 윗집 여자가 따라왔다.


휴대폰이 진동했다.

'박성실' 형이다.


"아, 여자친구는 무슨. 결혼 생각도 없다니까."


대충 끊었다.


끊겼던 생각이 다시 이어졌다.

윗집 여자.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며칠째 밤마다 놀이터 그네에 멍하니 앉아 있다.

오늘도 모른 척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집 앞 복도 난간에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윗집 남자가 놀이터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려던 그때였다.

남자가 여자의 머리채를 확 틀어잡았다.

그네에서 떨어진 몸이 질질 끌렸다.

그 순간,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이쪽이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숙였다.

1층과 7층.

그 아득한 거리.

심장이 빨라졌다.


잠시 후,

다시 밑을 보았다.


아무도 없다.


... 엘리베이터다.


비밀번호를 몇 번이나 틀린 끝에 문을 열었다.

닫힌 문에 등을 기대 숨을 몰아쉬는데,

위에서 다시 소리가 시작됐다.


쿵.


쿵.


... 이게 그 소리였어?

계단을 뛰어올라 801호 앞에 섰다.

문에 귀를 댔다.


둔탁한 타격음.

그 사이를 메우는 억눌린 신음.


손이 떨렸다.


쾅! 쾅! 쾅!


"아랫집입니다!"


소리가 끊기고, 곧 문이 열렸다.


비누 향에 섞인

그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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