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만파, 자기 만나 파탄
쿵.
밤 10시.
시작됐다.
쿵. 쿵. 쿵.
주기적으로 내려 찍히는 둔탁한 울림이, 매일 한 시간 가까이 이어진다.
그 다음에는 희미하게 번지는 노랫소리.
세탁기 소리.
소형 아파트로 이사 온 지 한 달째.
나는 매일 밤 층간소음에 시달리고 있다.
오늘도 인터폰을 들었다.
... 역시 연결되지 않는 윗집.
오늘은 직접 올라간다.
엘리베이터를 탈 것도 없이 계단을 밟아 올라갔다.
801호 앞.
문에 귀를 댔다.
덜컹. 덜컹.
밖까지 울려 나오는 세탁기 소리.
벨을 눌러도 기척이 없다.
"저기요! 아랫집입니다!"
쾅쾅쾅쾅쾅.
주먹으로 문을 찍어댔다.
"집에 있는 거 다 아니까 문 열라고요!"
문을 두드린 지 이십 분째.
돌아서는 순간ㅡ
덜컥.
도어락이 풀리며 801호 문이 열렸다.
틈 사이로 세탁기 소리가 더 크게 쏟아져 나왔다.
뒤따르는 비린 냄새.
내 또래의 남자였다.
검은색 면바지에 남색 체크무늬 셔츠.
단정한 머리, 말끔한 얼굴.
이상하게 표정이 남아 있지 않았다.
"무슨 일이시죠?"
"밤마다 너무하시는 거 아닙니까?"
"이제 끝났습니다."
"네?"
문이, 얼굴 앞에서 닫혔다.
노랫소리는 분명 여자였는데.
신혼부부인가?
끝났다더니.
다음 날도 똑같았다.
다시 올라갔다.
이번엔 문이 바로 열리고 남자가 나왔다.
"그렇게 많이 시끄러운가요?"
"내려와서 한 번 들어보시겠어요?"
"... 흠. 주의를 줘야겠네요."
주의?
누구한테?
문이 닫혔다.
... 미친놈.
편의점에서 대충 때울 저녁과 소주를 사서 돌아오던 길.
동 앞 놀이터.
그네가 흔들렸다.
젊은 여자가 고개를 푹 숙인 채, 힘없이 발을 구르고 있었다.
괜히 소름이 돋아 그대로 지나쳤다.
뭐야.
나 이사 잘못 온 거 아니야?
영화를 틀어놓고, 소주 반 병을 비웠을 즈음.
조용하던 윗집에서 다시 소리가 났다.
쿵.
쿵.
"하. 저 미친놈을 죽일 수도 없고."
밤 12시가 넘어서야 멈췄다.
윗집 남자 얼굴이 떠올랐다.
문득 떠오른 기사 하나.
[연쇄살인범, 시체 토막. 층간소음으로 덜미.]
온몸에 털이 쭈뼛 섰다.
그때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아가 잘 자라. 눈 감으면 괜찮아. 잘 자라, 잘 자라.'
여자 목소리였다.
같은 시간, 둔탁한 소리는 계속됐다.
세탁기 소리만이 사라졌다.
들려오는 건 물소리.
이어지는 자장가.
윗집에는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았다.
며칠 뒤,
그 소리의 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놀이터의 그 그네.
그 여자가 앉아 있었다.
발을 구르며.
'잘 자라, 잘 자라.'
발이 멈췄다.
여자의 발도, 내 발도.
눈이 마주쳤다.
어깨에 걸쳐져 있던 가디건이 흘러내렸다.
드러난 어깨가 가로등 빛에 젖은 듯 번들거렸다.
하얀 살결 위로 도는 푸른빛.
나를 쳐다본 채, 손을 들어 끌어올렸다.
시선이 내 뒤로 넘어갔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윗집 남자.
여자가 몸을 일으켰다.
나를 스쳐지나, 남자 쪽으로 걸어갔다.
분명히 맡았다.
비누 냄새와 섞인, 비릿한 냄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