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만파, 자기 만나 파탄
짝.
화투패가 바닥에 들러붙었다.
패를 집어던진 여자가 담배를 문 채 치마를 걷어 올렸다.
"돈 냄새 좋네, 자기들."
앉아 있던 의자 뚜껑을 툭 열어젖히고 그대로 내려앉았다.
물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천장은 연기에 절어 있었다.
"하. 골부인이 오늘 제대로 먹었네."
벌떡 일어나
옆에 앉은 놈 멱살을 틀어쥐었다.
"이 바지새끼가. 내가 모를 줄 알아?!"
"오늘 빨래질 끝장나게 당해부렀지?"
놈이 손을 팍 쳐냈다.
몸이 뒤로 밀렸다.
"돈 없으면 호구 하나 물어오던가."
낮게 웃음이 깔렸다.
그때, 사진 한 장이 툭 떨어졌다.
"이봐, 용건이. B가 쪽 사모여. 옛날에 자네 손 탔다며. 한 번 판 짜보던가."
시선이 내려갔다.
익숙한 얼굴.
영자.
그날, 빗물보다 차가웠던 건 영자의 표정이었다.
"오빠 집이 너무 가난하잖아. 오빠랑 어울리는 여자 만나."
"... 우리 집이 가난해서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은 내 입에서 나왔다.
돌아서기 전,
주머니에서 꺼낸 갈색 감기약 병 하나.
돈이 없었다.
그래서 겨우 하나.
등을 보인 채 걸었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아무렇지 않은 척 계속 걸었다.
그녀는 젖지 않았다.
젖은 건 나였다.
그 긴 거리를. 꽤 오랜 시간을.
사랑은 서로 다른 이름으로 기억된다.
영자를 다시 만났다.
꾸며낸 우연.
첫사랑의 이름으로
호구의 이름 앞에 다시 섰다.
ㅡ
"일명 '호구'라 합니다. 나용건 씨가 사모님께 의도적으로 접근한 건 확실합니다."
"와이프 죽은 건 맞아?"
"사망 확인 되었고, 노름으로 억대의 빚이 있습니다. 아들과는 연락이 끊긴 상태로 보입니다."
이실장에게 받은 서류를 넘겼다.
손이 멈췄다.
아들 이름.
나준수.
... 나준수.
나용건.
같은 성.
닮은 얼굴.
이제야 보였다.
찻잔을 들어 올렸다.
뜨거운 김이 얼굴에 들러붙었다.
기분 나쁘게.
"용건오빠 빚은 이실장이 조용히 처리해."
이 정도면, 값은 됐다.
남편이 옆 소파에 앉았다.
"고놈이 그놈 아들일진 당신도 몰랐겠지?"
테이블 위로 다리를 올리자,
비서 둘이 붙어 다리를 주무른다.
"어린놈이나 늙은놈이나 여자 등쳐먹는 건 똑같네. 그것도 부전자전인가?"
로열패밀리만 아니었으면
진작에 묻어버렸을 인간.
"경여사, 당신 남자 취향 한결같은 건 인정할게. 껄껄."
남편만 없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정작,
없어져야 할 건 따로 있었다.
내 과거.
그걸 알게 하면 안 되는 사람.
내 첫사랑이었다.
계산은 끝났다.
내 과거가
바꿀 수 없는 현재가 되어 있었다.
돈으로도.
상관없다.
미래를 바꾸면 되니까.
돈으로.
조용히 이실장을 불렀다.
이실장이 고개를 숙였다.
용건오빠가 날 의도적으로 만났던 그 벤치.
오늘 밤 우리는 다시 만났다.
"빚... 갚아줬다고 들었어. 다 알면서도 왜..."
"오빠 몫이야."
"응?"
"잘 가, 오빠."
"... 미안하다."
미안하다는 말은
이번에도 오빠의 것이었다.
나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에서,
차 문이 거칠게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늘은 비가 안 왔다.
우리 둘 다, 젖지 않았다.
안녕. 용건오빠.
영원히,
내 첫사랑으로만 남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