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첫사랑 (2)

자만파, 자기 만나 파탄

by 밤얼음

입술이 파르르 떨렸던 건,

사실 비 때문이 아니었다.

여름밤 차가운 저녁 공기 때문도 아니었다.


내 입술에 닿아 있던 그의 입술 때문이었다.


첫키스.


툭.

발 밑으로 우산이 떨어졌다.


머리카락을 타고 내린 빗물이

어깨를 지나 천천히 흘러내렸다.


흰 교복 셔츠가 몸에 달라붙었다.

젖은 천 너머로 희미하게 드러나는 선.


눈을 감고 있었지만 알 수 있었다.

붉어진 두 볼의 온기.


더 깊게 숨을 참고 눈을 꼭 감았다.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아서 그의 옷을 더 꽉 붙잡았다.


그날,

세상에 남은 건 우리 둘 뿐이었다.


그리고 알고 있었다.

앞으로 함께할 건 우리 둘이 아니란 것도.


그를 마지막으로 보았던 날에도

비가 내렸다.

조금은 다른 비가.


"나 졸업하면 약혼자랑 미국 가."


그는 그저 조용히 날 안았다.


"우리 집이 가난해서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이

내 입이 아닌, 그의 입에서 나왔다.


돌아서던 그의 걸음이 잠깐 멈췄다.

다시 돌아와 내 손을 잡아 올렸다.


손바닥 위에 얹힌 건 작은 갈색 감기약 병.


"감기 걸렸다며."


그날은 젖지 않았다.

나만.


그가 쥐여준 우산이 있었으니까.


그날 젖은 건,

그의 몸과 마음이었다.


그는 군대로,

나는 미국으로 떠났다.

지금의 남편과 함께.


뒷모습조차도 아름다웠던 사람.

용건오빠.


"오빠는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네..."


"영자, 넌 많이 변했다."


그렇겠지.

지금의 난... 여자가 아니겠지.


"더 예뻐졌네. 우리 영자는."


투둑.

투둑.

빗방울이 하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다시 그날처럼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오빠. 우리 오늘은... 헤어지지 말자."


남진오빠, 나훈아오빠가

영원한 오빠잖아?

나한텐 용건오빠가 영원한 오빠다.


암만.

그런 거 따질 시간이 어딨어.


늦게라도 만났으면

잡아야지.


"남편분은...?"


맞다.

나, 남편이 있었네.


"잘 있지. 쓸데없이 너무 잘."


내 남편 명줄은 안 봐도 비디오다.

시아버님께서 백세 꽉 채우고 가셨으니.


"자식들은?"

"아들 하나. 결혼도 시켰고."

"나도 속만 썩이는 아들놈 하나 있네."

"안사람은... 어떤 사람이야?"


가끔씩 궁금했었다.

그의 아내.


"... 좋은 사람이었지."

"... 었지?"


호프집에 들어온 이후로,

잔에 입만 축이던 오빠가 맥주를 단숨에 비웠다.


"아주 오래전에... 아이 낳다 죽었어."


잠깐 말이 끊겼다.


"지 어미 빈자리 티 안 나게 해주고 싶어서... 이것저것 하다 보니 이 나이까지 왔네."


호강에 겨운 내 남편이 스쳤다.


거칠고 갈라지고 힘줄이 도드라진 오빠의 손등.

그의 손을 잡았다.

닿는 순간, 맥이 흐트러졌다.


"이제 고생하지 마, 오빠."


돌고 돌아 다시 이 남자 앞이다.


남은 인생,

비워져 있던 마음.

이제라도 채워야지.




"황혼이혼 같은 소리 하네."


... 이 인간만 없으면 되는데.


내 남편.



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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