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첫사랑 (1)

자만파, 자기 만나 파탄

by 밤얼음

"바람도 수준이 있는 거야, 경 여사."


사람들은 늙으면 사랑을 못 한다고들 한다.


"늙어도 심장은 안 죽어."


나는 오늘도 벽에 대고 말을 한다.

남편이라는 벽.


"심장 같은 소리 하네."


저 늙은이는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지.

하긴.

사랑 없이 묶인 우리 관계에 뭘 더 바라.


"준수는 내 도파민이었어."

"어린놈한테 돈 쳐바르면서 노는 게 도파민?"

"난 스폰서로서 투자한 거야."

"투자를 주둥이로 하더만? 진공청소기마냥 아주 그놈 입술을 흡입하던데."


남편이 코웃음을 쳤다.


"정작 해야 할 흡입은 따로 있지 않나?"

"뭔데, 그게."

"뭐긴 뭐야. 지방흡입이지."


저 늙은이가.

노망이 단단히 났다.


"아무리 당신이 재벌사모라 해도 그렇지. 준수? 그놈은 비위가 재벌급이야."


우린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함께 유학을 떠났다.


정략결혼.

비즈니스였다.

집안 대 집안.

이쪽 세계에선 흔한 일이다.

흔하지 않은 첫사랑까지 포기시킨 망할 놈의 집안.


남들이 못 누리는 걸 누리는 대신,

남들 다 하는 걸 포기하고 살아야 했다.


'바람은 놀이다.'

남편과의 첫날밤.

근사한 고백 대신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날 남편은 옆방으로 갔다.

쉽게 말하면 '애첩'을 만나러.

대단하신 여배우님.


피는 못 속인다고.

우리 만수도 신붓감으로 여배우를 데려왔었으니까.


"쓸모없는 애는 몇 번 놀았으면 진작에 버렸어야지."


가끔은 궁금하다.

저 양반은

사랑이란 게 뭔지 알긴 알까?

저 양반에게도 첫사랑이 있었을까?


"이실장! 드라이브 가게 차 대기 시켜. 10분."


아니다.

오늘은 동네 좀 걸어봐야겠다.

그래, 조만간 이 살덩어리들이랑 작별해야지.


평생 붙어 다닌 경호원들이지만

산책까지 따라붙는 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그럴 거면 의자라도 하나 들고 나오지.

일머리 없는 것들.


아고 삭신아.

아이고 무릎아.

의자. 의자 어디 없나.


오, 벤치다.


"으잇차아."


벤치에 앉는 것뿐인데 입에서 기합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이실장. 비만클리닉 잘하는데 좀 알아봐봐."

"사모님, 굳이..."

"자네 입은 시키는 일에만 쓰라 했지?"

"죄송합니다."


손수건을 꺼내 코를 세차게 풀어버렸다.

옆으로 훽 던지는 순간.


"이보쇼! 거 쓰레기를 그렇게 버리면 됩니까!"


"뭐라고요?!"


고개를 돌리자 서 있는 한 노년의 남자.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사람.


내 첫사랑.


"... 용건 오빠?"


칠십은 됐을 텐데.

고등학생 때 모습 그대로다.


"영자? 경영자?"


주름까지 섹시한 남자.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저 잠깐 날 채워줄 도파민이 아닌,


진짜 심장.


확실히.

늙어도 심장은 안 죽는다.



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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