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만파, 자기 만나 파탄
"이번 건은 내가 오사장 자네한테 다 밀어주지. 허허."
황 회장이 방을 나섰다.
나는 그가 나간 문을 밀고 들어갔다.
게스트룸 안엔 아직 습기가 남아 있었다.
아내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알몸 위로 가운을 걸치며.
테이블에는 샴페인 잔이 두 개.
한 잔은 비어 있다.
나는 종이 한 장을 꺼내 아내에게 보였다.
쿠폰.
뒷면에는 이름이 적혀 있다.
소유영.
아내의 이름.
나를 올려다보는 아내의 입술에 종이를 문질렀다.
"이제 세 칸 남았네."
아내가 쿠폰을 빼앗아 찢어
내 얼굴에 던졌다.
닿지도 못한 채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내 아내는 카드다.
접대 카드.
"쓰레기 같은 새끼."
잔을 들어 단숨에 비웠다.
익숙한 맛. 감흥이 없다.
"고마운 새끼지.
약에 찌든 너 살려준 게 나잖아."
"내 영상으로 협박해서
이딴 짓이나 시키는 게.
날 살려줬다고?"
아내가 일어나 내 멱살을 잡았다. 가운이 스르르 내려갔다.
"잊었나 본데.
니 사건 기사 막아준 것도 나야."
"처음 시작은 너잖아.
니 친구 새끼들이랑 내 술에다 약 타서는."
떨어진 가운을 집어 아내 몸에 걸쳐줬다.
"시작은 나였어도 선택은 너였어, 미친년아."
아내의 팔이 떨어졌다.
"즐길 거 다 즐기고 다니면서 뭐가 그렇게 불만이야?"
방을 나서려다 문득 그날이 생각났다.
"야, 와이프야.
남자 보는 눈 좀 길러라.
그때 걔는 또 뭐냐.
수준 하고는."
아내의 말이 날아왔다.
가만히 지고 있을 소유영이 아니지.
"넌 수준이 높아서 또 여배우니?"
현시린.
잠시 생각했다.
"현시린, 너 처음 만났을 때랑 비슷하더라."
"나 다음은 걔니?
넌 좋은 카드일수록 끝까지 싹싹 긁어먹잖아?"
원래의 나라면.
그게 맞다.
그날은 달랐다.
현시린 만큼은 뭔가 달랐다.
시린의 술잔에 장난을 치려던 친구 놈의 손을 내가 쳐냈다.
그때의 손바닥 상처가 욱신했다.
스카프를 묶어주던 손.
나는 이미 시린의 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얼마 후.
시린이 집에 찾아왔다.
거실 테이블 위에 무언가를 내려놨다.
임신 테스트기.
그리고
여덟 칸이 전부 채워진 쿠폰.
"저 임신했어요.
혼외자 기사 나가면 곤란하시잖아요.
전 50억이면 충분해요."
문이 닫혔다.
테이블 위를 바라보는 아내의 입에서 천천히 미소가 번졌다. 귀까지 찢어질 듯. 곧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순진한 줄 알았더니 난 년이네, 난 년이야."
나는 잠깐 생각하다 손가락을 들어 비서를 불렀다. 고개를 숙인 그의 귀에 짧게 말했다.
다음날.
속보가 떴다.
[신인 스타 여배우 현시린 임신]
사생활 논란으로
드라마 하차. 광고 줄줄이 해지.
위약금 수십억.
아이 아버지로 지목된 인물
모델 지망생 나준수.
인터뷰 단독 입수.
나에게 타인은 카드다.
필요할 때 꺼내 쓰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다.
한도가 없을 것 같은 카드도
결국엔 카드다.
가위질 한 번이면 잘리고 마는 종이쪼가리.
가치가 있을 때 가치를 지키는 것.
내가 그들에게 주는 한도다.
아내는 오늘도 준비를 하고 있다.
또 한 칸을 찍기 위해.
나에게 여자는 카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