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카드다 (1)

자만파, 자기 만나 파탄

by 밤얼음

아내 화장대 서랍 속,

콘돔이 또 줄어 있었다.


아내와는 안 잔다.


상관없다.


여자는 카드다.

필요할 때 긁고, 다 쓰면 버리면 된다.


호텔에서 나와 차에 올랐다.

조수석 여자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오빠가 준 쿠폰 오늘 다 채웠당!"


의미는 없다.


"근데 왜 여덟 칸인 거야?"


열은 꽉 차 보이고.

아홉은 타이트하고.

일곱은 괜히 의미 있어 보인다.

그래서 여덟.


"찍어."


내 말이 떨어지자 여자의 입술이 마지막 칸에 찍혔다.


꾹.

붉은 립스틱 자국.


"오빠. 여덟 번 다 채운 기념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내 귓불을 깨문다.


"차에서 아홉 번째 할까?"


여자의 손이 셔츠를 지나 배꼽 아래로 미끄러졌다. 나는 그 손에 들린 쿠폰을 빼앗아 조수석 서랍에 넣었다.


"내려."

"응? 또 호텔 가자궁? 몰라아."


끝까지 혀 짧은 소리나 내고 있다.


"아 좀 꺼지라고."


여덟 번째 칸이 차는 날,

한도는 끝이다.


새 카드는 널렸다.


여자들은 말한다.

남자의 지갑을 여는 건 여자라고.


난 다르게 말한다.

내 지갑을 열면 여자가 나온다.


현시린.

요즘 얼굴 좀 팔린 배우.

신인인데 값이 꽤 올랐다.


스타일이 좀 바뀌었네.

긴 생머리. 화장기 옅은 얼굴.


오늘따라 낯익다.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그 모습이다.


그녀를 태운 내 차가 조용한 건물 앞에 멈췄다.

경호원들이 내 얼굴을 확인하자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전용룸에 들어서자
친구들이 여자들을 하나씩 끼고 있었다.
눈이 풀린 여자들.
낯익은 얼굴도 몇 보였다.
굴러다니는 샴페인 병을 발로 치우고 소파에 앉았다.


시린이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야, 만수. 네 새 카드 죽이는데?"

"하여간 신인배우 킬러라니까."


잠시 뒤

시린이 자리를 비웠다.

친구놈이 시린의 술잔에 장난질을 쳤다.


"야. 그거 넣지 마."


그놈의 손을 쳐냈다.


"왜 그래. 어차피 놀다 버릴 애 아냐?"

"이 새끼가."


그놈의 멱살을 잡았다.


"만수, 너 오늘 왜 그러냐."


순간 멈칫했다.


그러게.

나 왜 이렇게 화내고 있지.


술잔을 꽉 쥐었다.

쨍.

손바닥이 갈렸다.


화장실 쪽에서 시린이 나왔다.

나를 보고 웃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그만 가자."


시린의 팔을 거칠게 잡아 그대로 룸을 나왔다.


놀란 얼굴로 내 손을 붙잡는다.


"피..."


자기 목에 두르고 있던 스카프를 풀어 내 손을 급히 감싼다.


그때였다.

낯익은 얼굴과 눈이 마주쳤다.


소유영.

한때 스크린을 씹어먹었던 배우.

요즘은 이런 파티를 더 씹어먹고 다니는 여자.


내 아내였다.

아내 옆에는 남자가 하나 서 있다.


"그새 남자 또 갈아치웠냐?"


내 말에 아내가 씩 웃더니

시린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너야말로 이번엔 현시린이니?"


아내가 손에 쥐고 있던 클러치를 열더니 무언가를 꺼냈다.


툭.

시린의 가슴팍에 맞고 떨어진 것.


콘돔.


"하나는 부족하려나?"


여자는 카드다.

그렇게 생각했다.

방금 전까지는.



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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