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만파, 자기 만나 파탄
아내 화장대 서랍 속,
콘돔이 또 줄어 있었다.
아내와는 안 잔다.
상관없다.
여자는 카드다.
필요할 때 긁고, 다 쓰면 버리면 된다.
호텔에서 나와 차에 올랐다.
조수석 여자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오빠가 준 쿠폰 오늘 다 채웠당!"
의미는 없다.
"근데 왜 여덟 칸인 거야?"
열은 꽉 차 보이고.
아홉은 타이트하고.
일곱은 괜히 의미 있어 보인다.
그래서 여덟.
"찍어."
내 말이 떨어지자 여자의 입술이 마지막 칸에 찍혔다.
꾹.
붉은 립스틱 자국.
"오빠. 여덟 번 다 채운 기념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내 귓불을 깨문다.
"차에서 아홉 번째 할까?"
여자의 손이 셔츠를 지나 배꼽 아래로 미끄러졌다. 나는 그 손에 들린 쿠폰을 빼앗아 조수석 서랍에 넣었다.
"내려."
"응? 또 호텔 가자궁? 몰라아."
끝까지 혀 짧은 소리나 내고 있다.
"아 좀 꺼지라고."
여덟 번째 칸이 차는 날,
한도는 끝이다.
새 카드는 널렸다.
여자들은 말한다.
남자의 지갑을 여는 건 여자라고.
난 다르게 말한다.
내 지갑을 열면 여자가 나온다.
현시린.
요즘 얼굴 좀 팔린 배우.
신인인데 값이 꽤 올랐다.
스타일이 좀 바뀌었네.
긴 생머리. 화장기 옅은 얼굴.
오늘따라 낯익다.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그 모습이다.
그녀를 태운 내 차가 조용한 건물 앞에 멈췄다.
경호원들이 내 얼굴을 확인하자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전용룸에 들어서자
친구들이 여자들을 하나씩 끼고 있었다.
눈이 풀린 여자들.
낯익은 얼굴도 몇 보였다.
굴러다니는 샴페인 병을 발로 치우고 소파에 앉았다.
시린이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야, 만수. 네 새 카드 죽이는데?"
"하여간 신인배우 킬러라니까."
잠시 뒤
시린이 자리를 비웠다.
친구놈이 시린의 술잔에 장난질을 쳤다.
"야. 그거 넣지 마."
그놈의 손을 쳐냈다.
"왜 그래. 어차피 놀다 버릴 애 아냐?"
"이 새끼가."
그놈의 멱살을 잡았다.
"만수, 너 오늘 왜 그러냐."
순간 멈칫했다.
그러게.
나 왜 이렇게 화내고 있지.
술잔을 꽉 쥐었다.
쨍.
손바닥이 갈렸다.
화장실 쪽에서 시린이 나왔다.
나를 보고 웃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그만 가자."
시린의 팔을 거칠게 잡아 그대로 룸을 나왔다.
놀란 얼굴로 내 손을 붙잡는다.
"피..."
자기 목에 두르고 있던 스카프를 풀어 내 손을 급히 감싼다.
그때였다.
낯익은 얼굴과 눈이 마주쳤다.
소유영.
한때 스크린을 씹어먹었던 배우.
요즘은 이런 파티를 더 씹어먹고 다니는 여자.
내 아내였다.
아내 옆에는 남자가 하나 서 있다.
"그새 남자 또 갈아치웠냐?"
내 말에 아내가 씩 웃더니
시린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너야말로 이번엔 현시린이니?"
아내가 손에 쥐고 있던 클러치를 열더니 무언가를 꺼냈다.
툭.
시린의 가슴팍에 맞고 떨어진 것.
콘돔.
"하나는 부족하려나?"
여자는 카드다.
그렇게 생각했다.
방금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