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딸에게] 델리스파이스-동물원-Oasis

프롤로그

by 오세용


딸! 잘 지내고 있니? 새로운 아르바이트는 시작했고? 아빠는 기다렸던 채용공고가 나서 잠깐 설렜는데, 이래저래 소문이 흉흉하네? 하하. 올겨울은 우리에게 어느 해보다 힘든 시간으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아빠가 최근에 박사과정 수업 때문에 로버트 치알디니(Robert B. Cialdini) 교수의 『설득의 심리학』을 읽었거든? 꽤 두꺼운 책인데 흥미로운 내용이 가득해서 읽는 데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더라. 그 책에서 아빠의 버릇, ‘팀원들과 함께 맛집서 맛난 점심’을 먹는 게 심리학적으로 어떤 효과를 일으키는지 알게 됐어. 후후. 너도 꼭 한번 읽어보길 바라.


아빠는 이 책에서 ‘무언가를 연상하게, 떠올리게 하는 것은 새로운 것이라도 호감을 불러일으킨다’는 내용이 특히 인상 깊었는데, 그러고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치더라. 아빠가 요즘에도 최신 K-pop을 즐길 줄 아는 건, 예전에 좋아했던 어떤 음악을 무의식적으로 연상해서가 아닐까 하는.


네가 알다시피 아빠는 ‘요즘 K-pop 많이 아는 아재’로 유명하잖아. 그건 아마 다양한 대중음악에 관한 호기심을 계속 이어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 어릴 적엔 소위 ‘팝송’이라고 불렀던 월드뮤직을 주로 들었던 세대였지만, 1988년 전후부터 K-pop, 당시 말로는 한국 가요를 다시 듣게 됐거든. 그래서 아빠의 1988년 마음속 BGM은 a-ha의 ‘Stay on these roads’와 이문세의 ‘내 오랜 그녀’, ‘끝의 시작’이 함께 플레이된단다.


딸은 어려서부터 아빠랑 빅뱅, 투애니원 같은 ‘케이팝’을 듣다가, 유학 가면서부터 세계 각국의 음악을 아빠한테 소개해줬지. 방학에 한국 들어올 때마다 네가 들려주는 여러 나라의 최신 음악을 들으면서 술 한잔 걸치는 시간은 아빠에게 항상 기대와 행복을 준단다. 부녀의 29년의 나이 차이도, 취향 차이도 그렇게 음악이 자연스럽게 메꿔준다는 게 참 신기하기도 하고.


혹시 기억하니? 너 중학생 무렵이었을 텐데, 아빠랑 음악 들으면서 차 타고 가다가 델리스파이스의 ‘고백’이라는 노래를 네가 알고 있어서 깜짝 놀랐던 날. 2003년에 나온 노래를 2000년에 태어난 네가 어떻게 알까 싶었는데, 알고 보니 드라마 <응답하라 1994> 삽입곡이었잖아. <응답하라 1988>은 아예 성시경의 ‘너에게’, 오혁의 ‘소녀’, 박보람의 ‘혜화동’으로 아빠의 10대와 20대를 너의 10대와 이어줬지.


응답하라 1994 Ep.16 : 델리스파이스 - 고백


동물원 혜화동


얼마 전 내한 공연을 했던 오아시스도 아빠가 군대 있을 때 인기 있던 밴드라 정작 전성기 때는 많이 듣지 않았는데. ‘비긴 어게인’에서 이소라가 부르는 ‘Don’t look back in anger’을 듣고부터 좋아하게 됐고. 이렇듯 좋은 리메이크와, 어떤 연상을 불러일으키는 음악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으면서 많은 사람의 공감대를 만드는 듯해.


Oasis - Don’t Look Back In Anger


아빠가 이 블로그에서 대중음악 이야기로 해보고 싶은 역할도 그런 거야. 음악으로 세대 간 소통과 통합을 만드는 것. 노년-중장년 세대에게 ‘레트로’로 들리는 음악이 청년-청소년 세대에겐 ‘뉴트로’로 들릴 수 있듯. 우리는 음악으로 공감대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하지만 아빠는 음악 평론가도 아니고 그저 음악과 영화를 많이 좋아하는 사람일 뿐이라 전문적인 칼럼은 못 쓰겠지만. 아빠 세대가 너희 세대 음악을 알게 되고 너희 세대는 아빠 세대의 월드뮤직을 들어보면서 지금의 K-pop에 영감을 줬을지 모를 다양한 아이디어를 느껴보면 좋겠다.


자, 그럼 29년의 시간 차와, 동북아시아와 서유럽의 먼 거리를 음악으로 넘어볼까? 거기도 일교차 심할 테니 건강 조심하고.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