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절제·성실 ― 아버지의 그림자를 따라〉
어릴 적 내게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분이었다.
화를 내지 않았고,
스스로의 감정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분의 하루는 단정했고,
언제나 한결같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자랐다.
말보다 행동으로,
설명보다 실천으로 삶을 보여주는 사람.
그분의 침묵 속에는
늘 책임과 절제, 그리고 성실이 깃들어 있었다.
세월이 흘러 공직의 길을 걷게 되었을 때,
그 세 가지 단어는
내 삶의 기준이 되었다.
누가 보지 않아도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그것이 책임이었다.
유혹이 앞을 가려도 한 발 물러서는 것,
그것이 절제였다.
결과보다 과정을 더 소중히 여기는 것,
그것이 성실이었다.
나는 일을 대할 때마다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렸다.
겨울 아침,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도
묵묵히 밭으로 나가던 그 뒷모습.
그분의 발자국 위에 내 발자국을 맞추듯,
나도 매일의 일상을 책임으로 채워나가고자 했다.
공직의 현장은 언제나 복잡했다.
수많은 이해관계 속에서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일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마음속에서 들려오던 목소리는
언제나 아버지의 것이었다.
“남이 보지 않아도 옳은 일을 하라.”
그 한마디가 나를 붙잡아 주었다.
한 번은 업무상의 유혹이 눈앞에 다가온 적이 있었다.
그때 아버지의 낡은 고무신이 떠올랐다.
가난했지만 떳떳했고,
힘들었지만 단 한 번도 남의 것을 탐하지 않던 그분.
그 기억이 나를 멈추게 했다.
그 길이 비록 험하더라도,
정직하게 걷는 것이 결국 가장 단단한 길임을
몸으로 알게 되었다.
직장 생활의 후배들에게 자주 말하곤 한다.
“큰 성취보다, 작은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돼라.”
그 말은 사실 아버지의 말이다.
한겨울에도 팽이의 균형을 맞추던 손끝처럼,
하루의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했던 그분의 마음이
지금의 내 언어로 이어지고 있을 뿐이다.
이제 나는 안다.
책임이란 남이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고 느낄 때 생기는 것이다.
절제란 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하지 않아야 할 때를 아는 지혜이다.
그리고 성실이란 결과를 바꾸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사람의 품격을 지켜주는 방패라는 것을.
“아버지는 나에게 공직을 가르쳐준 적이 없다.
그러나 그분의 삶이 이미
가장 완벽한 교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