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숨죽인 새벽 다시 살아난 나

아이들과 도망쳤던 그날 밤

by 손지영

차가웠던 공기


이혼을 결심하고 마주 앉아 이야기를 꺼냈던 그날 공기는 살얼음처럼 차가웠다.

대화는 끝내 합의로 흐르지 못했다.

오히려 전 남편은 두 아이를 각자 키우자는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내세웠다.

말이 오갈수록 내게 불리하게만 흘러갔다.

나의 잘못도 있었지만 그와 함께한 십 년은 나 자신을 끊임없이 부정하며 살아야 했던 시간이었다.

나는 늘 못난 아내였고 지혜롭지 못한 엄마였다.

그 사람을 원망하기보다는 우리는 애초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이미 틀어진 관계


사이는 이미 오래전부터 좋지 않았다.

우리는 같은 집에 살면서도 각방을 쓰고 있었다.

말은 줄었고 서로의 기척조차 피하며 살아갔다.

그 안에서 나는 점점 더 작아졌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그렇게 참고 살았지만 맞지 않는 관계를 억지로 붙들며 사는 건 결국 나 자신을 잃어가는 길이라는 걸 깨달았다.



살기 위해 선택한 밤


그날 밤 모두가 잠든 뒤 나는 결심했다.

방 안 공기는 숨이 막히듯 무거웠고 가슴은 쿵쿵 뛰어 나를 배신하려는 것 같았다. 두려웠다.

하지만 그 두려움은 곧 ‘용기’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잠든 아이들을 하나씩 안아 들었다.


어린아이들의 체온이 팔에 전해지며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울음은 꾹 눌러. 삼켰다. 단 한 줄기 소리도 내면 안 됐다. 아이들이 깰까 혹은 남편이 깨버릴까—그 모든 것이 공포였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새벽의 적막 속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집 앞 골목에서 택시를 잡았다. 기사님은 행선지를 물은 후 대답을 듣고 그 이후에는 아무 말하지 않고 조용히 달려주었다. 창밖의 어둠은 깊었고 나는 숨을 죽인 채 아이들을 꼭 끌어안고 있었다.

소리 없는 울음이 목구멍에 걸려 올라왔지만 끝내 내지 못했다. 숨 막히는 새벽이었고 동시에 내가 처음으로 진짜 용기를 낸 순간이었다.


그날 새벽 나는 직장에 개인 사정으로 출근을 할 수 없다고 예약메시지를 보냈다. 최대한 담담한 내용으로 보냈지만 심장은 쿵쿵 뛰고 있었다. 직장에 가지 못한다는 사실보다도 내 삶이 완전히 다른 궤도로 옮겨가고 있다는 사실에 더 크게 떨리고 있었다


낯선 공간 안도의 한숨


도착한 곳은 여성 쉼터였다. 낯선 방 낯선 이불. 아이들은 곤히 자고 있었고 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지금 잘한 걸까?” 죄인 같았고 동시에 구원자 같았다.

무너진 것 같으면서도 처음으로 나 자신을 지켜낸 것 같았다.

그날 아침 전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받지 않았다.

"어디야?" 라는 메세지를 시작으로 계속 전화가 왔다.

자리를 옮겨 화장실에 가서 전화를 걸었다.

어디인지 말하지 않고 궁금해 하지 말라고 이야기 했다. 다음 날 퇴근 후 만나기로 약속과 함께 짧은 통화를 끝냈다.



새로운 시작


이혼을 결심한 순간 나는 집을 미리 알아보았다.

경제적인 것은 전 남편이 관리했기에 월급을 받으면 곧바로 이체해야 했고, 내 손에 남는 것은 아예 없었다. 결국 퇴직금을 정산해 작은 돈으로 월세 방을 마련했다.


쉼터에서 나와 도착한 집은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이었다.

가구도 짐도 생활의 흔적도 없는 텅 빈 방.

하지만 내게는 그 빈 공간이 처음으로 자유로운 공간처럼 느껴졌다. 아이들이 그곳에 자리를 잡는 동안 나는 비로소 숨을 크게 내쉴 수 있었다.


그날 직장에 출근해 하루를 마친 뒤 아이들을 친정엄마에게 맡기고 전 남편을 만나 마주 앉았다. 우리는 서로의 잘못을 이야기했고 결국 합의 이혼에 뜻을 모았다.


다음 날 나는 연차를 내고 합의이혼서를 제출했다.

그날 오후에는 첫째의 전학과 유치원 입학 절차까지 모두 마쳤다.

하루 만에 아내에서 한 사람의 엄마로 돌아왔다.


그날 밤

나는 두 아이를 품에 안고 도망쳤다.

하지만 새벽이 밝아오며 깨달았다.

그것은 도망친 것이 아니라 드디어 내 삶을 향해 걸어 나간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