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따뜻한 붕어빵 가게입니다.
영주가 일주일 내내 퇴근하면 자연스레 붕어빵 가게에 가 서하를 기다렸다.
서하와 우연히 만난다면 꼭 이곳에서 만나게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서하는 보이지 않았다.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붕어빵이 질린 건가. 아니면 나를 피하는 걸까.
“이서하 대체 어디에 꼭꼭 숨은 거야.”
오늘도 허탕을 친 영주는 붕어빵을 잔뜩 사서 선아의 집에 놀러 갔다. 결혼식 준비로 바쁜 선아와 오랜만에 보내는 불토였다.
캔 맥주 4개와 붕어빵 3천원어치. 추운 겨울에는 맥주에 붕어빵 만한 조합이 없다.
매서운 추위를 뚫고 오느라 약간 식은 붕어빵이지만 여전히 맛있었다. 살짝 식은 붕어빵 기름의 눅진함은 오히려 맥주와 잘 어울렸다.
둘은 매서운 추울 날씨로 호프집 살얼음 맥주 느낌이 나는 맥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크으..... 이맛이야... 선아야 너 결혼하면 나 이 즐거움과 행복 누구랑 함께하지.”
“결혼해도 종종 놀러 오면 되지. 이거 비밀인데. 우리 반달가슴곰 요리 되게 잘해.”
“특히 파스타는 웬만한 양식집 뺨친다니깐.”
“으으…. 부럽다 오선아!”
“히히.”
영주는 선아가 결혼하면 어떨까 생각해보았다. 유부녀가 된 선아는 분명 지금처럼 못 만나겠지.
결혼을 하게 되면 앞으로 불토를 함께할 동료가 사라질 생각에 아쉬운 영주였다.
아쉬운 마음에 붕어빵과 맥주를 양손에 들고 선아에게 짠하자고 하였다.
“짠!!!!!!!!!!”
오늘은 결혼이 얼마 안 남은 선아와 불토를 맘껏 만끽하고 싶었다.
“선아야 요새 결혼 준비는 잘 되가?”
“말도 마 영주야. 나 진짜 할 일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플래너 결정, 스드메결정, 식장예약, 스냅촬영, 스튜디오 촬영, 드레스 투어, 청첩장 준비…….”
“와……. 아니 해야 할게 왤케 많아? 나는 결혼 엄두도 못 내겠다.”
“그러게 말이다 영주야…. 심지어 우리 곰 아저씨는 요새 야근이 많아서 거의 나 혼자 준비하고 있다?”
“뭐? 내가 곰 아저씨한테 한소리 좀 해야겠네!!”
“히히 역시 내 편은 영주 너밖에 없어.”
영주는 선아를 빤히 쳐다보았다. 결혼 준비로 그 어느 때보다 바쁜 그녀였다.
하지만 선아는 빛나고 있었다. 평생을 함께 할 남자와 결혼을 준비하여 그 어느 때보다 빛나고 있었다.
영주는 그런 선아가 사랑스러웠고, 사랑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사랑스러운 선아의 눈에서 눈물이 나오면 그 반달곰을 가만두지 않을 거라 다짐했다.
그녀들은 남은 붕어빵에 맥주 4캔을 다 비웠다. 불토에 맥주 4캔은 조금 아쉬웠는지 배민 어플로 요거트 아이스크림을 시켰다.
그리고 예전에 바텐더 알바를 해 본 경험이 있는 선아는 오늘 자기와 놀아준 값이라며 특제 하이볼을 제조해 주었다.
선아표 하이볼은 레몬 향이 살짝 나며 전혀 쓰지 않고 달콤한 맛이었다.
“뭐야 오선아!!! 왤케 맛있어???”
“훗. 오늘은 특별히 공짜입니다. 마음껏 주문하세요. 손님.”
“오예!!!! 나 한잔 더!! 한잔 더 부탁드려요. 오선아 사장님.”
요거트 아이스크림에 선아표 하이볼을 3잔 먹으니 시간은 어느덧 12시가 되었다. 맥주 2캔의 하이볼 3잔.
취기가 오를 대로 오른 영주였다. 더 늦기 전에 집에 돌아 가려 했다.
취한 영주가 걱정이 된 선아는 집에서 자고 가라 했지만, 영주는 괜찮다며 거절했다.
결혼 준비로 바쁜 그녀를 혼자 쉴 수 있도록 배려해주고 싶었다.
선아가 잡아 준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 영주는 핸드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꾸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 생각나는 그 사람에게 연락하고 싶었다.
4년 동안 잘 참아온 영주였지만, 오늘은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이제는 아무것도 없는 그와의 채팅방에 들어가 쓰고 싶은 말을 썼다 지웠다 반복하길 10분째.
선아에게 잘 가고 있냐는 메시지가 왔다. 그 메시지에 답하려 하는 순간 실수로 전송 버튼을 잘 못 눌렀다.
그 순간 영주는 술이 확 깼다. 그리고 서둘러 삭제 버튼을 눌렀다.
“망했다……. 망했어!!!!”
“서영주 이 바보!!!! 아니 왜 그 순간에 그 버튼을 누른거야!!!!”
앞으로 흑역사라 생각하며 자신을 자책하고 있는 그 순간. 그 남자에게 메시지가 왔다.
그 남자의 메시지는 영주의 얼굴을 빨갛게 만들었다.
서하와 썸 탈 때 였을까. 아니면 서하와 사귈 때 였을까.
그 남자가 너무 좋아 닭볶음탕처럼 볼이 빨개진 적이 있었다. 그때 닭볶음탕같이 빨갛던 영주의 볼.
오늘 영주의 볼이 그 상태였다.
‘나도 보고 싶어.’
서하와 영주 사이의 오늘의 사건이 일어나기 1주일 전. 서하는 퇴근 후 붕어빵 가게로 가 영주를 기다릴 생각이었다.
오늘 만약 영주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고민하는 서하에게 거친 파도가 닥쳤다. 갑자기 거래처의 문제가 생겨, 야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서하는 야근이 끝나자마자 붕어빵 가게로 달려갔다. 전력 질주하고 싶었지만 벌써 30대 아저씨가 되어버린 서하의 몸은 서하를 도와주지 않았다.
그래도 달렸다. 영주와 예전에 야자를 째고 같이 노래방에 갔던 때처럼 열심히 달렸다.
“제발 있어라…. 제발 있어..!”
그녀를 만날 생각에 서하의 심장은 계속 요동쳤다. 붕어빵 가게에 도착하자마자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영주는 이미 가게에 없었다. 매서운 겨울 추위를 뚫고 달려서인지 서하의 코와 볼은 빨개져 있었다.
점원은 서하를 보곤 난로 쪽에 앉으라 말했다. 그리고 서하가 제일 궁금해할 만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엇갈리셨네요. 그 손님은 조금 전까지 있다가 가셨어요.”
점원의 말에 서하는 그만 헛웃음을 짓었다.
“그래 이렇게 쉽게 만나면 재미없지. 곰도 100일 걸렸잖아. 100일은 각오했다고!”
서하는 지난 2년 동안 그녀를 만나기 위한 노력을 생각했다. 그 노력에 비하면 오늘 엇갈린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지난 2년은 기약 없는 기다림이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이제는 이 붕어빵 가게에.
나만의 아지트였던 이 공간에. 그녀가 찾아온다.
그래서 내일은 조금 더 빨리 오겠다 다짐했다. 하지만 운명은 둘을 계속 방해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란 듯이.
오늘은 영주를 꼭 만나리라 다짐하며 출근한 서하는 갑자기 3박4일 부산 출장이 잡혔다. 6개월 전쯤 부산 바다가 보고 싶어 부산 출장에 가고 싶다 팀장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근데 하필 오늘이라니. 서하는 야속한 운명을 탓했다. 하지만 운명에 질 수 없었다.
그가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서영주 기다려. 나 절대 포기 안 해. 이 야속한 운명 따위 이겨내면 그만이야.”
“자그마치 2년이었다고. 다시 너를 보기까지.”
부산에서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오전 내내 바쁜 업무에 시달린 서하는 싱싱한 회에 소주가 땡겼다.
또 겨울 하면 방어 아닌가. 호텔 근처 횟집에서 싱싱한 방어 횟감을 들고 가는 길. 서하는 누구보다 행복했다.
기름진 방어와 시원한 소주는 업무의 시달린 서하의 피로를 싹 녹여주었다.
방어는 그냥 먹어도 맛있고, 백김치와 김에 싸 먹어도 맛있었다. 혀에서 살살 녹는 방어 때문에 소주를 한 병 다 비워 취기가 올랐을 쯤.
예전에 영주와 처음 먹던 방어가 떠올랐다.
우리가 사귄지 횟수로, 4년 10개월쯤 되던 해였다. 영주가 취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영주는 부당한 업무지시를 하는 정과장이라는 사람 때문에 힘들어했다.
“흑흑…. 서하야 나 너무 힘들어. 특히 정과장 때문에 엄청 짜증 나…. 흑.”
“정과장이 또 괴롭혔어? 정과장 이 자식을 진짜…. 내가 회사에 한번 찾아갈까?”
“응. 와서 정과장 좀 혼내줘 서하야. 흑흑….”
“알겠어! 내일 지훈이하고 소매 걷고 찾아간다! 감히 내 여친을 울려?”
영주가 취업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영주는 부당한 업무지시를 하는 정과장이라는 사람 때문에 힘들어했다. 나는 그런 영주가 걱정됐다.
“근데 정과장 덩치 엄청 커. 괜찮아?”
“어…? 진짜? 지훈이한테 무기도 챙기라고 해야겠다.”
“거기에 그 사람 유도 유단자야.”
“유단자? 자기야 난 태권도 품띠야. 걱정하지 마. 거기에 내가 위험하면 지훈이가 뒤에서 달려 들거야.”
나의 허세에 영주는 기분이 풀린 듯 미소를 되찾았다.
“킥킥. 하여튼 이서하 허세는. 그래도 여자친구 편들어줘서 고마워 태권도 유단자씨.”
“내 발차기 필요하면 말해! 거기에 지훈이 검도 유단자야!”
“으이구. 내가 지금 필요한 건 이서하의 따뜻한 포옹이거든요? 얼릉 안아줘.”
나는 사랑스러운 내 여자친구를 꼬옥 안았다. 만약 영주를 작게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영주를 작게 만들어 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싶다고 나는 항상 생각했다.
“우리 서영주씨를 위해서 준비한 선물이 있어요~”
“오 뭐야!! 이서하!!”
“바로 먹는 것입니다. 스트레스 받는날에는 먹는걸로 기분전환 해야죠!”
“오예!!! 역시 울 자기 날 너무 잘 안 다니깐? 암요 암요!”
영주와 나는 스트레스 받으면 맛있는 걸 먹어야 한다는 우리만의 철학이 있었다.
오늘 힘들었을 그녀가 준비한 선물을 마음에 들어 했으면 좋겠다.
“자 그러면 제가 뭘 시켰을까요?”
“음……. 떡볶이?”
“땡! 겨울에 꼭 먹어야 하는 음식입니다.”
“음……. 붕어빵? 오뎅? 호빵?”
“다 땡! 정답은 바로. 두구두구두구. 방어입니다!”
“뭐어…? 방어라고? 자기야!!!!! 사랑해 진짜!!!!”
방어란 말에 아까 시무룩 해있던 서영주는 어디 가고. 어린이날에 롯데월드 가는 아이처럼 영주는 한껏 신나 있었다.
“나밖에 없지?”
“역시 내 남친밖에 없다니깐! 사랑해 이서하.”
“오늘 일은 방어 먹고 싹 잊는거야 알았지?”
“네~~~~ 내가 제이이일 좋아하는 남자친구씨~~~”
“술은 소주 맥주. 골라 골라.”
“아이 왜 그러셔. 당연히 소맥이지.”
지금은 너무나도 오래된 그날을 생각하자 목구멍이 막히는 것 같았다. 내 눈에서 따뜻한 무언가가 흘렀다.
나이 서른에 갱년기인가. 그녀를 만나고 요새 툭하면 눈물이 난다. 아직 갱년기는 멀었는데 큰일이다.
분명 8년이란 시간이 흘러 지나간 그때였지만. 너무 오래되어 영주와 함께 먹은 방어 맛은 기억도 나지 않지만. 방어를 먹고 좋아하던 그녀의 미소는 생생하게 기억난다.
정말이지 이뻤다.
“영주야 보고 싶다. 보고 싶어 미치겠다.”
영주는 내가 지금 술 냄새 풀풀 풍기며 자신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걸 알까.
10대와 20대 시절 내 심장을 요동치게 만든 그 여자. 그리고 세월이 흘러 30대에 다시 내 심장을 요동치게 만들고 있는 그 여자.
요즘 영주가 자꾸 생각난다. 붕어빵 가게에서 영주를 만나고부터 영주가 미치도록 너무 보고 싶다.
취기가 살짝 오른 서하는 영주의 프로필을 보았다. 싱글 코트와 단발머리가 잘 어울리는 그녀였다.
그 모습을 보자 그녀에게 연락하고 싶었다. 취기에 하고 싶은 말을 적은 서하였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 생각하며 그 말을 지웠다.
서하는 부산에서 마지막 날 밤.
소주에 취기가 잔뜩 오른 그 밤. 영주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서영주 너는 나 안 보고 싶었어? 나 혼자만 보고 싶은 거야?”
“만약에. 아주 만약에. 영주 너한테 연락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 이럴 때 서영주에게 먼저 연락이 온다면 어떨까. 만약 연락이 온다면 그건 꿈이겠지?”
서하는 영주에게 먼저 연락이 오는 만약을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그 만약은 일어나지 않을 거 같았다.
꿈이라면 모를까. 서하는 일어나지 않을 일을 가정하며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