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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인 Aug 27. 2023

로컬에서 지우고 덜어야 할 것

로컬의 발견 5

로컬 크리에이터 관련 행사에 가면 지역에서 다양한 일을 하며 살아가는 분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마치 예술가와 대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저는 예술이란 내면의 열정과 하고픈 말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것이며, 예술가란 그걸 아주 세련된 방법으로 해내는 사람들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예술가와 로컬 크리에이터는 닮은 점이 많습니다. 지역혁신과 문제해결이란 로컬이라는 캔버스와 오선지에 세상에 전하고 싶은 자신만의 메시지를 채워 넣는 일로도 볼 수 있으니까요.


로컬 예술가들과의 만남과 대화는 각 지역에서 겪는 힘듦과 어려움을 나누고 위로받는 하소연의 장이 되기도 합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긍정적인 부분을 찾을 수 있습니다. 다른 지역의 사례를 통해 장애물을 피하는 방법을 배운다거나 어려움을 현명하게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미리 고민해 볼 수도 있으니까요. 또한 안타까운 사실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로컬 어디에서나 비슷한 문제 상황이 펼쳐진다는 겁니다. 분명 지역 특성도 다르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도 다 다른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로컬의 발견 시리즈 다섯 번째 글은 로컬의 명과 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정량평가보다는 정성평가를


최근 정부에서 과학 연구개발(R&D) 예산을 삭감하기로 결정했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저도 팔로우하고 있는 여러 매체와 커뮤니티를 통해 과학계와 연구자들의 성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요. 모두 한 목소리로 성토한 과학계의 문제 중에는 단기간에 결과를 내지 못하거나 연구에 성공하지 못하면 예산지원을 끊거나 줄이는 정부와 담당 부처의 근시안적 태도에 있었습니다.


이에 비하면 로컬 씬(Scene)은 상황이 좋은 편입니다. 로컬 크리에이터, 그리고 로컬에 대한 예산과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방소멸과 인구절벽에 대한 대책으로 로컬이 부상하면서 관련 지원사업도 다양하게 펼쳐지는 중입니다. 완도살롱이 회원사로 있는 로컬브랜드포럼(LBF)처럼 로컬 크리에이터들의 연합체가 생겨나는가 하면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중심으로 각지에서 로컬 세미나와 워크샵도 활발히 열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로컬계(?) 또한 과학계와 비슷한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사업과 철학이 근시안적 태도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초기 단계에 있는 산업군이라 그런 것일 수도 있으나, 실적을 위한 정량평가에 치중하느라 실제 로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지방 지자체의 경우 순환보직 등을 핑계로 담당자가 자주 바뀌고 사업이 연속성을 갖지 못하는 한계도 있습니다. 정부와 지자체의 로컬에 대한 철학과 방향성이 무엇인지도 알기 어렵습니다.


가장 먼저 각 지역의 고유성과 독창성을 탐색하고 이미 활동 중인 크리에이터를 발굴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평가를 위한 숫자 채우기에 급급하다 보니 타 지역에서 성공한 사례를 복사해 붙여 넣는 일도 잦습니다. 바다에 면한 점이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동해안에서 성공한 프로젝트가 서남해안에서도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물론 정부 또는 지자체와 협업하지 않고 로컬 크리에이터 스스로 자생할 수 있는 힘을 기르고 환경을 만들어나간다면 가장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역, 사람, 로컬 콘텐츠(지역의 당면 과제 및 문제) 중 둘 이상을 조합하고 연결해 새로움을 창조하는 것이 로컬 크리에이터의 진짜 역할이라 믿는 저는 지자체와 로컬러가 어울리는 방법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 또한 로컬에서 함께 어울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니까요.



외부 요인보다 내부 요인에 집중


또 하나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느끼는 한계는 각종 지원사업들의 초점이 외부 요인을 통제하는 것에 맞춰져 있다는 점입니다.


행정안전부의 청년마을 만들기 지원사업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많은 청년마을 운영 주체들은 다른 지역에 있는 청년들을 자신들의 지역으로 모셔오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고 있습니다. 한달살이를 통해 지역의 멋과 맛을 경험하게 한다던가, 지역에서 새로운 도전을 해볼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는 등의 일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게 과연 좋은 해답일까요?


지방소멸과 인구절벽이 거스를 수 없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생각하는 저는 초점을 외부가 아닌 내부 요인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해당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이들을 위한 정책과 지원사업을 편성하고 그들을 위한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 먼저라는 겁니다. 로컬 크리에이터가 청년 사업가만을 가리키는 용어가 아닌 것처럼, 로컬 크리에이터 정책과 지원사업 또한 외부인을 지역으로 유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부인이 떠나지 않고 더 큰 행복과 만족을 느끼며 살게 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단지 완도가 좋아 서울에서 누리던 라이프 스타일을 내던지고 온 저처럼 대한민국 곳곳, 로컬에는 단지 지역이 좋아 이주했거나 지역에서 태어났고, 앞으로도 머무르고 싶어 떠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로컬에서 주목해야 할 사람들은 바로 그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행복과 만족이 보장될 때 외부에서의 유입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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