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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인 Aug 26. 2023

로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로컬의 발견 4

서울을 떠나 완도에 정착해 살며 느끼는 불편함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여가시간을 채워줄 놀이의 수도 부족하고, 어디가 아프기라도 하면 50km 떨어진 종합병원까지 운전을 해서 가야 하고, 크고 좋은 피트니스 짐도 없고, 버거킹이나 도미노피자도 없고...


우리가 도시를 벗어나 시골에 가는 까닭은 이와 같은 불편함을 일부러 마주하기 위함이 아니겠으나, 시골에 산다는 건 그만한 각오가 필요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지역 혁신가로도 불리는 로컬 크리에이터에게 불편함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저는 이 불편함로컬의 문제야말로 로컬 크리에이터들의 진정한 먹거리라고 생각합니다.


로컬의 발견 시리즈 네 번째 글은 로컬 콘텐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컬의 문제를 파악하고 정의하기


제가 처음 완도에서 마주한 불편함은 집을 구하는 일이었습니다. 서울에 살 때는 피터팬의 좋은 집 구하기, 직방, 다방 같은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할 수도 있었고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발품을 팔아도 되었는데 완도에는  피터팬도 다방도 부동산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은 이 섬 완도 사람들은 지역신문을 통해 부동산 정보를 얻고 거래한다는 거였습니다.


이를 몰라 발품을 팔며 살 집을 구하는 동안에는 먼저 완도에 살고 있던 친구 집에서 신세를 졌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두 번째 문제를 마주합니다. 30대 초반, 서울에서 10년 가까이 살았던 두 남자가 저녁 시간을 즐겁게  채울 방법을 찾기가 몹시도 어려웠던 겁니다. 서울에 살 때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도 쉬웠고, 새로운 공간을 찾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는데 이 섬 완도에서는 매일 비슷한 사람들과 비슷한 곳에서 먹고 마시는 것이 반복되었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사귄다는 건 정말이지 가뭄에 콩 나는 일이었고요.


이런 문제의식(?)을 마음에 품고 있었던 탓인지 저는 거주를 위해 계약한 부동산에서 완도살롱 창업을 결심하게 됩니다. - 물론 책과 술, 그리고 사람이 함께 하는 공간인 완도살롱의 탄생과정에는 더 로맨틱한 사연과 사건이 있지만 - 기본 콘셉트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사교의 장을 만들고, 나를 포함한 사람들이 즐길 수 있게 하자!"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사교의 장도, 사람들도 아닌 '나'였습니다. 우선 내가 즐거워야 공간의 분위기와 에너지가 모두 긍정적일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오롯이 나를 위해, 완도에 정착한 지 4개월 만에 문을 연 완도살롱은 현재까지도 완도의 유일한 사교클럽이자 독립서점이며 칵테일바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저는 완도에 이주하고 완도살롱을 창업하기까지 4개월 동안 '자연스럽게' 완도의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정의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 즐겁고 싶어서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자연스럽게 완도가 가진 문제를 풀어나가고 있는 겁니다. 그렇게 저와 완도살롱은 로컬 크리에이터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게 되었습니다.



로컬 콘텐츠 = 해결할 문제


로컬의 발견 시리즈 첫 글에서 저는 로컬의 영역을 <로컬 - 로컬러 - 로컬 콘텐츠>로 나눈 바 있습니다. 비교적 정의가 단순하고 명확한 로컬, 로컬러와 달리 로컬 콘텐츠는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처음의 저처럼 단순히 즐거움을 위해 로컬 콘텐츠를 찾는 사람도 있을 것이지만, 지금의 저처럼 로컬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로컬 콘텐츠를 정의하는 크리에이터들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로컬의 문제를 발견하고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뾰족하게 다듬은 로컬 크리에이터들에게는 해결해야 할 로컬의 문제가 곧 먹거리가 됩니다. 문제의 답을 내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일이 된다는 겁니다. 일거리가 사라진 조선소터를 개조해 카페로 만들어 운영하는(칠성조선소 등) 경우, 청년이 떠난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고 도시생활에 지친 이들에게 휴식을 제공하는(공장공장, 괜찮아마을) 경우 등이 있겠습니다.


최근 완도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를 받았습니다. 양식업의 산물인 전복이나 김, 다시마 등의 가격이 폭락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도시의 주요 산업에 타격이 있을 경우 도시 전체가 침체에 빠지는 걸 수없이 목격해 왔습니다. 양식업은 완도의 주요 산업이고 생산, 유통 등 연관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도 아주 많습니다. 사실 완도에서 양식업은 포화상태에 이르러 쇠퇴하는 산업군이기도 했기에, 오염수 방류로 인한 이번 타격이 치명타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산업을 전환해야 하는가, 아니면 다시 한번 불꽃을 틔우고 엔트로피를 만들어낼 것인가 하는 고민의 순간에 놓인 겁니다.


또 하나 완도가 직면한 문제는 훌륭한 관광 자원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교통, 관광 및 여행 콘텐츠의 부재, 산업 구조의 고착화 등으로 인해 가진 관광 자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도해의 깨끗한 바다와 아름다운 해안선, 맛있는 음식 등을 보유한 완도의 진면목을 어떻게 알리면 좋을지 고민한다면 그 또한 새로운 콘텐츠이자 로컬에서 크리에이트하는 일이 될 겁니다. 최근 저와 완도살롱의 관심도 이 분야에 있고요.


이처럼 로컬의 문제를 파악하고 정의하는 것에서 시작해, 해결 방안을 찾는 것이 로컬 크리에이터의 일입니다. 당장은 막막하고 앞이 보이지 않지만 답을 찾는 과정에서 변화도 함께 찾아온다고 저는 믿습니다. 한 사람의 완도인으로서 저 또한 완도가 당면한 여러 문제를 현명하고 효율적으로 해결해 나가길 바랍니다.



해결이 어렵다면 해소라도


로컬의 어떤 문제들은 너무나 깊이 뿌리가 박혀 있어 해결이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지역사회라는 미명 아래 카르텔화 되어 있는 산업 구조, 익명성의 부재로 인한 관계에서의 피로, 절대 단기간에 개선되지 않을 교통 및 편의시설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로컬 크리에이터들의 임무는 '해결 아닌 해소'입니다.


도시에 비해 시간의 지평이 오히려 짧은 시골 청년들에게 수년 뒤에 고속도로가 생기고, 대형마트가 들어오고, 아파트가 보급된다는 이야기는 어쩌면 허무맹랑한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릅니다. 그들에게는 당장 오늘 저녁, 그리고 이번 주말을 위한 콘텐츠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로컬에 진정으로 필요한 건 어떤 거창한 해결 방안이나 담론이 아니라,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과 기쁨을 제공하는 해소방안인지도 모르겠다는 말로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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