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의 발견 1
서울을 떠나 완도살롱을 창업한 지도 어느덧 6년 차. 처음에는 그저 제 몸과 마음을 다스리려 이 섬에 왔는데 이렇게 오래 머물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언제부터인가는 저와 완도살롱을 로컬 크리에이터라 불러주셔서, 그리고 이에 힘입어 다른 지역으로 강의를 다니고도 있습니다. 제 이야기와 완도살롱 이야기로 다른 분들 앞에 설 수 있다는 것에 커다란 감사함을 느낍니다. 정말이지 매 강의 때마다 '완도를 대표해서 왔다'는 각오로 연단에 서고 있습니다.
지금껏 보내주신 과분한 관심과 사랑에 어떻게 보답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나누자는 것에 생각이 이르렀습니다.
로컬의 발견 시리즈 첫 글은 로컬과 로컬 크리에이터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로컬이란 무엇인가?
과거에는 로컬을 어떤 지역에 사는 사람, 그러니까 지역민 또는 원주민 정도의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로컬의 의미는 더욱 확장되었습니다. 이 시대의 로컬은 그 지역 사람뿐만 아니라 생태계와 경험 등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하이데거가 자신의 실존 철학을 존재와 존재자, 현존재로 나누어 설명한 것처럼 저도 저의 로컬 철학을 설명하기 위해 세가지 개념을 제시하겠습니다.
로컬(Local) : 범위로써의 지역 & 지역 생태계
로컬러(Local-er) : 지역에 사는 사람들 &지역을 오가는 사람들
로컬 콘텐츠(Local Contents) : 지역에서 할 수 있는 경험의 총체
그리고 다시 위의 개념을 제가 사는 지역인 전라남도 완도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완도 로컬 : 260여 개 섬으로 구성된 완도. 완도의 역사, 문화, 산업 생태계 전반
완도 로컬러 : 완도 토박이, 이방인, 외국인 근로자, 여행자 등
완도 로컬 콘텐츠 : 명사십리 해수욕장, 완도 타워, 특산물, 바다낚시, 지역 축제 등
이중 로컬 콘텐츠의 경우 꼭 특정 장소나 특별한 경험일 필요는 없습니다. 산책을 하거나, 식당에서 밥을 먹는 등의 일상적인 경험 또한 훌륭한 로컬 콘텐츠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앞으로 이야기할 로컬 콘텐츠는 배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완도에서만 즐길 수 있고, 완도에서만 먹을 수 있으며, 완도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을 가리킨다는 말입니다.
그리하여 로컬 콘텐츠의 조금 더 정확한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로컬 콘텐츠(Local Contents) : 지역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의 총체
로컬 크리에이터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로컬 크리에이터란 무엇일까요? 저는 로컬, 로컬러, 로컬 콘텐츠 중 두 개 이상을 조합 또는 연결하는 주체를 가리켜 로컬 크리에이터라 부릅니다. 지역과 사람을 연결하거나, 사람과 콘텐츠를 연결하고, 지역과 콘텐츠를 연결하는 등의 '행위'를 하는 주체가 바로 '로컬 크리에이터'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 로컬 X 로컬러 : 완도의 역사 및 문화를 주제로 한 로컬 매거진 발간.
- 로컬러 X 로컬 콘텐츠 : 지역민, 여행자를 대상으로 명사십리 해수욕장에서 원데이 서핑 클래스 개최.
- 로컬 콘텐츠 X 로컬 : 섬 여행 가이드북 또는 대중교통 이용 시간표 제작.
그동안 전국 각지의 로컬 크리에이터 양성과정에 참여하며 느낀 아쉬움 중 하나는 로컬 크리에이터를 일종의 예비 창업자로 보는 시선이었습니다. 물론 서점, 카페, 바 등 도시와 거리에 활력을 불어넣어줄 공간이 생기는 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닙니다. 다만 지역에 정착하기 위해, 그리고 지역에서 잘 살아보기 위해 무언가 시작해보려는 이들이 소모되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무언가를 창조하기 전에 이미 로컬에 존재하는 것들을 발굴하고 조합하며, 연결하는 것이야말로 로컬 크리에이터의 기본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공간이나 콘텐츠가 필요하다면 그때 만들어도 늦지 않고요. 누군가를 외부로부터 유입시키지 않고, 창업을 하지 않아도 로컬러들 삶의 만족도와 행복에 기여하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로컬(Local)에서 크리에이트(Create)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