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의 발견 2
얼마 전 전라남도 영암에 있는 동아보건대학교 HiVE 센터의 로컬 크리에이터 양성과정에서 강의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완도살롱의 사례를 발표했는데요. 주말 오전 강의였음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숫자의 수강생들이 오셔서 놀랍고 감사했던 기억이 납니다.
강의를 준비하며 교육과정을 살펴보다가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과정을 주관하는 동아보건대학교 HiVE 센터에서 총 9회 차 과정의 첫 번째 시간을 영암의 역사, 문화, 산업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으로 채웠다는 거였습니다. 덕분에 저는 영암에 대해 잘 아는 분들 앞에서 완도의 사례를 발표할 수 있었고, 수강생 또한 영암과 완도의 같고 다른 점을 이해하며 수업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지난 글에서 로컬 크리에이터의 역할이 로컬(지역), 로컬러(사람), 로컬 콘텐츠 중 최소 두 가지 이상을 조합하거나 연결하는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만약 이 셋 중 우선순위가 있다면 단연 로컬입니다. 다른 무엇보다 로컬을 먼저 알아야 하고 로컬을 먼저 고민해야 합니다. 영암 로컬 크리에이터 양성과정에서처럼.
로컬의 발견 시리즈 두 번째 글은 로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크리에이터보다 로컬이 먼저
30년 동안 수도권에만 살던 제가 완도로 이주한다고 했을 때, 그리고 완도에서 창업을 한다고 했을 때 지인들의 가장 큰 걱정은 지역민들의 텃세에 시달리지 않겠냐는 거였습니다. (고백하자면) 저도 어느 정도는 맞서 싸울 각오를 하고 있었고요. 하지만 실제로 마주한 완도의 인상은 예상과 달랐습니다. 섬사람 모두 저를 반갑게 맞아주셨고 지금까지도 물심양면으로 크고 작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완도의 따뜻함을 마주하며 저는 궁금해졌습니다. 수도권에서 줄곧 들었던 텃세에 대한 이야기가 단지 허무맹랑한 시골괴담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어딘가에서는 실제로 그런 무시무시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말이죠.
그러던 어느 날, 완도살롱을 찾아온 한 손님으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70이 넘었다는 어르신께서는 완도살롱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산다고 하셨습니다. 수 년째 주변을 오가며 완도살롱이 영업하는 걸 보았는데 그날만큼은 내부가 어떻게 생겼고 칵테일이며 위스키는 무슨 맛인지 궁금해서 오셨답니다.
어르신께서는 수십 년째 어선 표지판을 만들고 있으며, 당신도 저와 같은 이방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출신이 특이했습니다. 저처럼 다른 도나 시군이 아닌 완도 본섬에 있는 군외면에서 오신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 완도 본섬은 북부 군외면과 남부의 완도읍으로 양분되며, 자동차로는 서로 15분 거리입니다.
무튼 어르신이 저와 같은 이방인이라는 사실이 반가워 이야기를 더 나누다가, 평소 궁금했던 시골괴담, 아니 텃세에 대해 조심스럽게 여쭈었습니다. 그런데 어르신께서 해주시는 이야기가 퍽 흥미로웠습니다.
청산, 보길, 노화, 금일 등 다른 섬사람들은 진학이며 취업을 위해 완도 본섬으로 오려하고, 완도 본섬 사람들은 같은 이유로 목포나 광주 등 주변 도시로 가려한다는 겁니다. 260개가 넘는 섬으로 구성된 제도(諸島, Islands)라는 완도의 환경이 수십 년째 사람들의 흐름을 이끌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자연스럽게 완도는 이방인들의 섬이 되었고 서로 돕고 살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어르신께서는 또 "자네가 하는 일이 완도에는 없던 것이라 다들 경쟁심보다는 반가운 마음이 컸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해주셨습니다. 제가 창업할 때만 해도 완도에는 서점이나 바가 없었으니까요. 어르신과의 대화를 통해 저는 완도라는 지역의 특성과 완도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성분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새로운 도시에 이주하고자 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집을 구하거나 일자리를 얻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지역의 특성을 이해하고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이 도시에 머물고 있는지 조사하고 탐구하는 것입니다.
로컬 크리에이터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역에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거나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한다면 다름 아닌 로컬에 대해 가장 먼저 연구해야 합니다. 간단하게는 인구조사부터 시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인구가 늘어나고 줄어드는 흐름은 어떠하며, 각 연령대별 인구는 숫자가 어떻게 되는지 등의 일들입니다.
제가 처음 완도에 닻을 내린 2017년 완도 인구는 5만 3천에 육박했습니다. 하지만 2023년 현재 인구는 4만 7천 남짓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흐름의 배경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어르신의 말씀처럼 취업과 진학 때문일까요? 그게 아니라면 다른 이유가 있을까요? 지역에서 바라본 지역이 사멸하는 이유와 인구가 줄어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양하고 복잡한 요인이 영향을 주겠지만 배경에 로컬이 있다는 분명한 사실을 알면, 크리에이터는 무엇을 어떻게 조합하고 연결해야 할지, 어디서 시작하면 좋을지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방인들이 모인 이 섬에서 저는 많은 것을 배웠고, 또 배우고 있습니다. 가장 큰 깨달음은 이 지역 생태계가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겁니다. 절대 빠르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은 변화의 속도는 아마도 여기 사는 사람들의 속도와 비슷할 겁니다. 다음 글에서 '로컬러(Local-er)', 즉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