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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인 Feb 21. 2024

콜로세움이라 불리는 돌 앞에서

Nomad in Roma (7)

마침내 로마에 도착했다. 그리고 어느새 서른여섯 시간이 흘렀다. 대부분은 잠을 자며 보냈다. 예전 같았으면 여행 중 수면에 인색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러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시차에 적응하는 일도 몸이 알아서 하도록 놔둘 것이다. 파스타를 삶는 게 물의 일인 것처럼, 달과 태양이 하는 일을 믿고 몸을 맡기는 것이다. 졸리면 잠을 청하고, 컨디션이 좋으면 움직일 것이다.


노트북 앞에 앉은 지금 이탈리아는 자정을 막 지났다. 슬슬 눈꺼풀에 무게가 실리는 걸 보니 제대로 시차에 적응하는 것 같다. 어쩌면 귀가 전 마신 올드패션드와 삼만삼천 보의 도움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나는 지금 로마의 시간을 살고 있다. 그리고 기분 좋은 피곤을 느낀다.


어제 아침 아니, 새벽에는 콜로세움엘 갔다. 새벽에 출발한 이유는 단지 그때 눈이 떠졌기 때문이었다. 숙소에서 콜로세움까지는 도보로 30분 정도. 아침 산책으로도 적당한 거리였다. 운이 좋으면 일출을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자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일곱 시가 안 되어 도착한 콜로세움에서는 이제 막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장관이었다. 나를 포함해도 열 명이 되지 않는 귀여운 인파가 개장 전의 콜로세움을 각각 독차지했다. 개중에는 운동복 차림으로 달리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왜인지 그들이 부럽게 여겨졌다.


개장을 기다리는 동안 근처 카페에서 아침을 먹었다. 근처라고 했지만 콜로세움과는 꽤 거리가 있는 곳이었다. 나는 주로 관광객보다 주민들이 이용하는 곳을 선호하는데, 이번에도 제대로 찾아온 것 같았다. ‘라떼’라고 주문했더니 ‘스팀밀크’가 나와서 당황한 걸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특히 크루아상이 맛있었다.


관람을 위해 돌아간 콜로세움에는 그야말로 인간이라는 파도가 범람하고 있었다. 어림잡아도 수백에서 천은 되어 보였다. 문득 콜로세움에 물을 채워 해전을 벌이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곳곳에서는 한국인 여행자로 보이는 여러 무리가 가이드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번에도 왜인지 그들이 부럽게 여겨졌다. 금세 숫자가 더 늘었고, 입장 대기열은 처음 두 줄에서 세 줄, 다시 네 줄이 되었다. 곧 나도 그들 사이로 숨어들었다.


콜로세움은 4년 전 마주했던 베로나의 아레나와는 다른 웅장함을 내뿜는 경기장이었다. 그러나 나를 압도한 건 따로 있었는데, 그건 바로 콜로세움의 건축 과정을 보여준 그림과 모형들이었다.


'함락시킨 예루살렘에서 끌고 온 유대인 10만 명이 콜로세움 건축에 동원되었다. 자재는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광산에서 가져온 것도 있었다. 건축 자재를 옮기는 일에는 순수한 사람의 힘만을 동원하기도 했다. 그렇게 8년 만에 완성된 콜로세움에서는 해전을 비롯해, 사냥, 처형, 결투 등 다양한 이벤트가 벌어졌다. 어떤 이벤트는 개인이 개최해 부를 과시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콜로세움을 나와서는 포로 로마노와 팔라티노 언덕에 올랐다. 그곳에도 너무나 많은 돌덩이가 있었다. 어떤 돌에는 순결이, 어떤 돌탑에는 정복이, 그리고 어떤 돌의 무리에는 종교적 믿음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카메라로 찍기만 하면 번역해주는 세상이라니, 참 편리하다고 생각하며 이리로 저리로 휩쓸려 다녔다. 가끔은 이탈리아 사람인 척을 하며 한국인 가이드의 설명을 도강하기도 했다.


단 몇 시간 만에 로마 제국의 역사를 섭렵한 나는 한가지 감정에 사로잡혔다. 이러다가는 역사에 잡아먹히고 말 것 같다는 두려움이었다. 목이 탔다. 까르푸에서 산 물에서는 돌 맛이 났다. 가까스로 출구를 발견했다. 그곳은 입구로도 사용되는 곳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수많은 파도가 밀물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넙치처럼 그곳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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