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쓰는 로마 여행기 - Nomad in Roma (6)
새벽 출국을 앞두고 압구정으로 향했다. 스포츠 마케터로 일했던 두 번째 직장(압구정역과 로데오역 중간쯤에 있었다.)을 나와서는 압구정의 압자도 거들떠보지 않았으니, 거의 십 년 만의 정식 방문이려나.
이곳에서는 두 분의 아름다운 인연과 함께했다. 며칠 전 유럽에서 돌아온 지인으로부터 바통과 선물을 건네받았으며, 밀라노에서 만나 사귄 친구가 일을 시작한 바(Bar)에 방문하는 등, 그야말로 아페리티보 같은 시간을 보낸 것이다.
그리고 도착한 공항과 비행기에서 나는 묘한 인연을 두 번이나 더 마주하게 된다.
첫 번째 사건은 여자축구 국가대표팀과 같은 비행기를 타게 된 것이다. 그들은 포르투갈과 체코로 원정을 떠나는 길이라고 했다. 같은 비행기를 기다리며 나는 대표팀에서 조금 더 익숙한 얼굴을 발견하는데, 그는 여러분도 잘 아는 지소연 선수다.
(지 선수는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우리는 구면이다. 10년 전, 압구정역과 로데오역 사이에 있는 회사에서 만났던 것이다.
당시 회사 프로젝트 중에는 선수들을 초청해 인터뷰하는 콘텐츠가 있었다. 지소연, 황희찬 등 내로라하는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섭외에 응해주신 덕에 흥행한 콘텐츠였다. 인터뷰를 마치고는 함께 사진을 찍고, 사담을 나누기도 했다.
그로부터 10년이나 흘렀음에도 여전히 국가대표로 활약하는 그녀를 보며 왜인지 자랑스럽고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탑승 전 응원의 메시지와 함께 사진을 부탁하자, 지 선수는 여전히 반갑고 해맑은 미소로 응해주었다.
이 못지않은 두 번째 사건은 기내에서 벌어졌다. 잠깐 몸을 풀 겸 갤리 쪽 화장실에 갔는데, 누군가 “사장님?”하고 인사를 건네온 것이다. 같은 이유로 그곳에 와 있던 그녀는 알고 보니 수년 전 완도살롱에 방문한 손님이었다. 수염이며 머플러 덕에 알아보기가 참 편리했다나.
그녀를 기억해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시나리오를 쓰러 완도에 갔었다”라는 말에 그날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것이다. 그녀는 여행 차 프랑스와 포르투갈에 가는 길이라고 말하며, 이번에도 무척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포르투의 어느 공원에서는 죽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대요. 여러 명이 같은 경험을 했다는데, 이번에는 저도 거기에 가보려고요. 보고 싶은 사람이 있거든요.”
그녀들과는 경유지인 암스테르담에서 모두 헤어졌다. 하지만 여자축구 국가대표팀의 친선 경기들과 포르투의 공원 이야기만큼은 이번 여행 내내 비행운처럼 따라다니며 나를 궁금하게 만들 것 같다.
한편, 곧 도착할 이탈리아는 건물의 층수를 셀 때 1이 아니라, 0부터 시작한다. 나이를 셈할 때와 비슷한 이유이리라 추측한다. 0과 1은 분명히 다르며, 그사이에 많은 이야기가 있다는 걸, 그들은 이미 아는 듯하다.
이탈리아식으로 셈을 하자면, 아직 여행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갑자기 하루를 번 것 같기도 하고.
영과 일 사이 어딘가에서 나는 다시 비행기에 오른다. 마침내, 로마에 닿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