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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인 Feb 16. 2024

시네마 천국과 여행의 이유

미리 쓰는 로마 여행기 - Nomad in Roma (5)

몇 년 전, 소설가 김영하는 '여행의 이유'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독자들은 작가 본인의 여행담을 엮은 이 산문집에서 여행하는 이유를, 질문의 답을 얻길 기대했다. 나도 그들 중 하나였다. 그래서 책을 통해 해답을 얻었냐고 묻는다면, 역시 직접 읽고 경험하는 것을 추천하는 바이다. 줄곧 작가 김영하를 신뢰해온 나로서는 객관적 판단이 불가능하기도 하고.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가? 여행의 이유가 무엇인지, 이제는 아는가? 이유는 여전히 잘 모르지만, 순기능 하나쯤은 알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것은 ‘결심’이다. 익숙한 것들로부터 유리시키고, 돈을 시간과 교환하며, 온갖 불확실성과 공포에 투신하는 일 같은, 크고 작은 결심들.


써놓고 보니 여행이 무언가 어렵고 두려운 일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일면 그것은 사실이다. 여행지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떠날 때까지 우리는 수많은 선택지를 마주하고, 마음을 맺거나 끊는 일을 반복한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것들과는 차원과 장르가 다른 선택지다. 그런 점에서 나는 모든 여행을 호러나 스릴러로 만드는 것에 특출난 재능을 가진 여행자인데, 계획보다는 운명과 임기응변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런 자가 매번 로맨스를 꿈꾸는 것도 참 이상한 일이다.


어떤 마음들은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맺어진다. 사놓고 읽지 않았던 소설을 편다거나, 장바구니 속 옷가지를 결제하고, 수년간 미루었던 긴 휴가를 내고, 글을 쓰는 것처럼.


지난밤에는 '시네마 천국'을 보았는데, 정식으로 본 건 어제가 처음이었다. 감상을 마음먹은 이유는 이번 여행을 준비하며 (곧 도착할) 시칠리아가 촬영지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또한 직접 보고 경험할 것을 추천한다. 여전히 격정에 사로잡힌 나로서는 객관적 평론이 불가능하므로.


시네마 천국의 주인공들도 여러 결심을 한다. 그리고 이 결심들은 헤어지거나 맺어지는 결과로 이어지는데, 어느 것도 나쁘거나 좋다고 말할 수 없다. 오로지 주어질 뿐이다.


한편, 어떤 영화의 주인공처럼 나는 전역 후 줄곧 고향이 아닌 곳에서 살고 있다. 멀어지고 헤어지겠다는 이 결심은 처음으로 오롯이 홀로 내린 판단이었고, 그렇게 주어진 삶은 다시 나를 다른 결심들로 이끌었다. 어쩌면 이 순환의 끝에 그토록 찾고 좇았던 이유를 발견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오늘, 서른다섯의 나는, 한다.


소설가 김영하는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우리가 여행과 호텔을 사랑하는 이유가 슬픔이 묻어 있는 익숙한 풍경에서 벗어나게 해주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나는 그 말에 절반의 동의를 표한다. 여전히 내게는 미루고 아끼는 것들이 많이 남아 있으며, 그럼에도 나는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 겨운 것들을 온전히 사랑해야만 비로소 나의 여행을 시작할 수 있으리라.


*

#시네마천국 주요 촬영지인 시칠리아 Palazzo Adriano 마을에는 토토의 아역 배우인 Salvatore Cascio 씨가 여전히 살고 있다고 한다. 내게 그를 마주치는 행운이 찾아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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