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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인 Feb 14. 2024

사실은 로마나 나폴리가 아니라,

미리 쓰는 로마 여행기 - Nomad in Roma (4)

그들이 들으면 퍽 서운해하겠지만, 사실 이번 남부 이탈리아 여행의 진정한 목적지는 로마도 나폴리도 아닌 시칠리아다. 마침내 시칠리아에 가닿으려 나는 다시, 이탈리아로의 비행을 마음먹은 것이다.


지난 새벽에는 팔레르모행 페리 승선권을 예매했다. 시칠리아의 주도인 팔레르모는 항공편을 이용하면 로마와 나폴리에서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비교적 가까운 나폴리에서 출발해도 페리로는 열 시간 남짓이 소요된다.


굳이 이런 번거로움을 선택한 이유는 역시나 로맨티시즘에 있다. 나는 여행이 익숙함을 깨부수고 벗어던지는 행위라 믿는다. 승선 예약 또한 같은 메커니즘에서 진행되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20시에 출발해서 이튿날 6시에 도착하는 페리의 운항 시간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광선처럼 내리쬐는 지중해의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파라디 파란 바다를 눈에 담으며 느리게 흘러가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게 된 것이다. ‘세계 3대 미항’ 나폴리의 야경을 꼬리 삼아 떠나는 것에 만족할 수밖에.


시칠리아라는 이름은 여러 곳에서 여러 차례 마주했지만,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1유로 주택’에 관한 이야기였다. 사람들이 떠나며 남긴 섬의 빈집들을 주 정부가 매입해 1유로에 되파는 이 정책은 몇 해 전 창의적이고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소개되었고, 오늘날까지도 지구의 예술가와 노마드들에게 커다란 관심을 받고 있다. 타향살이라는 열망을 품어온 나도 그중 하나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이주를 위한 답사라던가, ‘시칠리살롱’을 위한 전초기지 탐색이 전혀 아니다. 앞선 이야기는 지난 7년 동안 달마다 인구가 100명씩 줄어드는 섬에 살면서 지역과 사람이 어떤 방향으로 고이고 흐르는지 목격한 자가 품은 호기심이라 하면 딱 적당하리라. 물론 ‘시네마 파라디소’와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의 영향도 조금씩은 있다.


한편, 시칠리아에서는 총 여정의 절반 가까운 일주일을 머물 예정이다. 특별한 이벤트가 없다면 하나 또는 두 도시에 닻을 내리고 살아볼 것인데, 이 프로그램에는 같은 식당과 카페에 여러 차례 방문해 다른 메뉴를 맛보는 것 등이 포함되어 있다.


몇 해 전 나의 오래된 친구 중 하나는 여행, 방랑 그리고 모험에도 반드시 끝이 있다며, 부디 앞으로는 안정을 추구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내게 조언한 적이 있다. 요즈음 나는 그때 그의 말들이 몹시도 따뜻하고 달콤하게 여겨진다. 닻이 아닌 뿌리를 내려, 익숙해지고, 살을 찌우며, 늙어가는 것. 그것은 조금도 나쁘거나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그러나 여전히 나라는 불꽃이 모험이라는 바람이 부는 쪽으로 타오르며, 아직은 연료도 꽤 남아 있다는 걸, 새벽 페리와 비행기의 저울질을 통해 나는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이 밤 저 멀리 등불처럼 빛나는 완도항에서 나는 시칠리아를 본다. 그리고 언젠가는 도착하고야 말 안정을 꿈꾸며 잠시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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