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아침 다시 살아난다.

내가 생각하는 부활의 의미

by 꽃피랑

지난 토요일, 부활 전야 예배에 다녀왔다.

우리 교회의 전례 중에서도 나는 부활 전야 예배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신자들은 작은 촛불을 하나씩 밝힌다.

그 빛 아래서 우리는 하느님이 인간을 어떻게 구원하셨는지에 대한 말씀을 듣는다.


잠시 묵상의 시간이 흐른 뒤, 교회의 모든 불이 한꺼번에 켜지고 종이 울린다.

어둠과 죽음을 지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음을 알리는 순간이다.

재의 수요일부터 40일간 절제하며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했던 이들은 그제야 부활의 기쁨을 느낀다.

그날 새 신자들은 세례성사를, 다른 교회에서 온 이들은 견진성사를 받으며

이제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겠다고 다짐한다.


나에게 부활 전야 예배는 단순한 종교적 의례가 아니었다.

홍해와 이집트 군대 사이에서 절망했던 사람들,

이미 죽은 지 오래된 마른 뼈의 골짜기,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신 예수님.


성서의 이야기들은 별 의미 없이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매일 아침 일어나 해야 할 일을 처리하며 버티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끝나버린다.

이렇게 살다가 어느 날 예정된 대로 죽음이 찾아오겠지.


그런데 성서는 희망이 없는 그곳으로 하느님이 인간을 찾아오신다고 말한다.

하느님은 바람을 일으켜 바다를 가르셨고, 마른 뼈에 숨을 불어넣어 다시 살아나게 하셨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라고 말씀하셨다.

성서에 나온 바람과 숨, 성령은 모두 히브리어 '루아흐'로 같은 단어이다.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

주저 앉고 싶은 자리에서 다시 살아가게 하는 숨.

내게 신은 그런 존재이다.


그래서 부활은 죽음 이후의 영생에 관한 것이 아니라

절망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다시 살아갈 수 있느냐를 묻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아무 희망도 없어 보이는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도 끝내 삶을 포기하지 않는 것.

예수님 역시 깊은 고통 속에 있었지만 그 시간을 지나 지금도 나와 함께 계시다고 믿는 것.

그게 바로 부활의 의미가 아닐까?


돌이켜보면 우리는 역사 속에서 이미 그런 시간들을 여러 번 지나왔다.

극심했던 일제의 억압 속에서도 끝내 굴하지 않고 독립을 꿈꾸던 사람들.

침묵하라는 압박 속에서도 양심을 버리지 못하고 목소리를 냈던 사람들.

그때 그들은 아무 의미도 없이 스러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결국 그런 사람들 덕분에 지금의 우리는 일상의 자유를 누린다.

그 순간들 또한 어둠을 지나 빛으로 나아가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부활절 예배를 마치고 나오니

겨울 내내 말라있던 나무에 연두색 새잎이 돋고 꽃들도 앞다투어 피어나고 있었다.

봄은 저절로 오는 것 같지만 어쩌면 수많은 어둠을 지나 마침내 우리에게 도착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 하루가 더 고맙게 느껴진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름다운 봄날을 만끽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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