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사라진 감정
그러게. 나는 왜 슬프지 않을까.
얼마 전, 회사 동료를 대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상담을 받은 적이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동료 때문에 힘든 줄 알았지만
사실은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서 받았던 신체적 폭력과 학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에게서 사랑받고 싶은 나를 직면하는 순간이었다.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오히려 상담사가
감정이입이 되어 눈물을 흘렸다.
반면, 나는 덤덤하게 그녀가 눈물을 그칠 때까지 기다렸다.
잠시 후, 이미 다 아는 이야기인 데다 오랫동안 겪어와서
이제는 별로 슬프지도 않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상담사는 대부분의 사람이 자기 일이기 때문에
울면서 말하는 반면, 나는 내 일인데도 남의 일처럼 바라본다고 했다.
나는 스스로 감정이 둔한, 전형적인 T라고 여겼다.
그나마 기쁨이나 즐거움은 함께 느낄 수 있었지만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서는 도대체 어떻게 공감해줘야 할지.
우두커니 옆에 서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다른 사람뿐 아니라 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하지만 심리테스트에서 나는 의외로 예민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에 민감한 사람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어차피 그런 감정을 드러내고 수용되거나
원하는 결과가 나온 적이 없었기에
어느 순간,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부정적인 감정을
아예 느끼지 않으려 덮어놓았다고 한다.
영화 인사이드아웃에 빗대어 생각해 보자면
불안이와 기쁨이, 버럭이는 마음속에 있는데
슬픔이는 스스로 비참한 자신을 마주하기 싫어서 그랬는지.
나도 모르는 마음속 어딘가에 꽁꽁 가둬둔 모양이다.
이제 그런 회피도 한계에 달해서
밤에 누워도 잠이 오지 않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소화시킬 수가 없는, 신체적 증상이 나타나기에 이르렀다.
어젯밤도 밤새 못 자고 뒤척였더니 머리가 아파.
부정적인 감정을 직면하고 충분히 느낀 다음,
놓아주어야 한다는데..
이제는 도통 슬픔이나 서러움이 느껴지지를 않으니
도대체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