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른 채로 시작했기에 가능했다] Epilogue
예비부부이자 2인 제작자. 60평 작업실 셀프 인테리어 중. 테이블웨어와 가구 제작을 시작으로 인테리어까지 손을 댔다.
오빠와 함께 지금의 작업실을 직접 만들기 시작한 건 2024년 8월이다. 일 년이 지난 지금으로 치면 창업을 시작한 지 약 1000일하고도 22일째다. 아직 눈에 띄는 결과를 낸 것은 없다. 다만 이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은 여전하다. 아직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게 어찌 보면 미련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지금까지의 과정에서 느껴온 많은 감정들이 나열되었을 때, 나와 같은 사람들 혹은 새로운 일을 앞둔 이들에게 분명 공감이 전해질 것이라는 것은 확신한다.
소규모 사업자에게 정보는 곧 금이다.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모아야 원하는 지점에 도달할 수 있을지 생각하면 벌써 머리가 아득해진다. 꿈을 크게 꾸었던 나는 현실을 자각하며 내 삶의 목표 가지를 여러 방향으로 꺾어갔다.
이 글은 그 이야기에 관한 것이다.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가능한 한 솔직하게 적어보고자 한다. 이야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고, 나는 과정중심의 사람이다. 결과적으로 좋은 여건이 된다면 그것은 더할 나위 없는 바람일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23년, 첫 결심
2023년 1월, 우리는 가구 제작을 하기로 다짐했다. 16평 남짓의 사무실을 월세로 마련했다. 보증금과 관리비를 포함해 500/ 60 정도 했던 곳이다. 지식산업센터였지만 제조업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공예를 전공했기에 처음에는 디자인만 맡고 공장에 의뢰할 생각이었다. 클래스 101이나 패스트 캠퍼스 등 온라인 강의 플랫폼에서 3D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동시에 사진 촬영과 영상 촬영 등 브랜딩에 필요한 여러 요소를 독학했다. 마침내 프로그램을 어느 정도 다룰 수 있게 되었을 때, 마주한 것은 '내 브랜드의 가치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현실이었다. '브랜딩이 뭐 어렵다고 레퍼런스만 잘 모으면 되지.'라는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자료를 모으고 제품을 만드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참 그래서 이거 만들면 견적은 얼마나 나오는데?”
그래, 돈이 문제였지. 자영업자에게 원 잡은 없다. 당연하게도 우리는 생계를 위한 직업이 있다. 창업하기 전, 2021년도 말부터 2년 동안은 주말마다 함께 악세서리를 판매하며 플리마켓을 돌기 시작했다.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엄마의 제안이었다. '아르바이트보다 조금 더 쉽게 벌 수 있다.'는 말에 바로 수긍을 했다. 차에 짐을 가득 싣고 서울, 경기, 파주 할 것 없이 돌아다녔다. 재미있었다. 야외여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게 즐거웠다. 처음 만나는 손님들에게 내 물건을 판매한 경험. 내향적인 내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른 셀러와 관계를 맺는 경험 모두 신선했다. 물론 장사를 하며 오빠도 나도 부끄러움과 마주한 순간이 많았다. 목소리 높여 호객하기도, 판매하면서 장사에 대해, 나 자신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배웠다.
무너진 일상
투잡을 하면서, 주말은 플리마켓에 전념하고 평일은 사무실에 출근했다.
“우리 그럼 휴무를 월요일로 할까? 화요일부터 목요일은 사무실, 주말은 플리마켓 어때.”
이렇게 살다 보니 일과 삶의 밸런스가 완전히 무너졌다. 주말에 플리마켓이 잘 되면서 평일에도 플리마켓 업무에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동대문, 남대문 할 것 없이 사입도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나가야 했다.
‘그럼 잘되는 일 하면 되는 거 아니야? 왜 주말 일을 전업으로 안 하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의 답은 분명했다.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 잘 돼 가던 플리마켓 사업도 코로나로 인해 들쑥날쑥한 매출을 기록했다. 원하는 대로 되는 것 없는 삶이 지속될수록 평일은 더욱 쉬고 싶어 졌지만 주말에 하는 플리마켓은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다.
자존감과 사진
나의 일의 존재감이 적어질수록 자존감이 무너졌다. 그 마음을 극복하고자 취미 겸 브랜딩을 위해 배웠던 부족한 촬영 실력으로 사진을 찍으러 다니기 시작했다. 사진은 내 자존감을 채우고, 마음을 치유해 주었다. 어릴 적, 엄마는 사진 출사를 나갈 정도로 사진을 즐겁게 배웠다. 엄마는 아빠의 만류로 인해 그만두었는데 촬영이 이렇게 내 삶에 깊은 존재가 되다 보니, 엄마의 마음을 알 것 같기도 했다.
오빠와 전국 곳곳의 좋은 곳은 다 돌았다. 평일의 사무실은 공허하게 남아 있었고, 우리는 촬영 실력을 늘린다는 핑계로 여행을 다녔다. 산과 바다 어디든 가서 영상을 찍고 더위에 땀 흘리고 추위에 떨면서도 그저 즐거웠다.
그렇게 일 년이 흘렀다. 비어있던 사무실도 마침 1년 계약이었고, 우리는 사무실을 정리하기로 결정했다.
“열심히 살자. 즐겁게 살자. 어떤 삶을 살고 싶어”
“제작 맡기는데 돈이 너무 많이 들어.”
“이럴 거면 직접 만드는 게 낫지 않을까?”
막막했던 생각을 정리한 시점은 오빠가 목공을 정식으로 배우기 시작했던 때였다. 오빠는 부산으로 목공을 배우러 가는 것도 고려했지만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현재 하는 주말 일을 계속해야 생활이 원만히 유지되는 이유가 컸다. 결국 오빠는 다시 서울에서 지원하는 목공 프로그램을 수강하기 시작했고, 수업을 마치는 동안 나는 영상 편집을 다시 배우는 것을 목표로 했다. 아마도 이때가 서로가 떨어져, 각자의 일에 가장 집중했던 찰나의 시간이지 않을까 싶다.
새로운 공간에서
오빠가 목공을 다니는 6개월 동안 나는 영상 작업을 하며 내가 좋아하는 공간, 물건 그리고 삶의 가치에 대한 탐색할 시간이 많았다. 그 기반 위에서, 부족하지만 진정성 있는 이미지를 사람들과 공유하고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것을 꿈꾸기 시작했다. 수강을 마침과 동시에, 우리는 오프라인에서 일했던 경험을 기반으로 쇼룸과 작업실을 함께 운영할 수 있는 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원하는 곳이 딱히 없던 찰나 오빠가 제안했다.
“동아리 가던 길에 괜찮은 카페 있던데, 가볼래?”
오빠와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오자마자, 위층이 비어 있음을 발견했다.
“혹시 네이버 부동산에 매물 나와있어?”
“아니 없네.. 사장님한테 여쭤보면 어떨까.”
“그러자.”
“사장님 혹시 여기... 위층이 비어있을까요? 매물이 안 나와 있어서요.”
“아, 여기 매물 안 내놨어요. 원하는 직종이 들어왔으면 해서요.”
어떤 사업을 준비 중인지 설명하며 사장님께 포트폴리오를 보여드렸다. 알고 보니 사장님께서도 공예 관련 직종이나 예술하는 분들이 들어오셨으면 했다고 한다. 건축사무소에서 연락이 왔을 때 거절하셨다고 했다.
"이 공간이면 바꿀 수 있을 거 같지."
"응. 채광도 좋고 괜찮다."
인테리어는 전혀 되어있지 않은 폐 건물 같은 공간이었다. 계약 조건을 조율해 원하는 정도의 금액을 맞췄고, 1년 뒤 월세 인상을 조건으로 서류를 계약했다.
그때부터 우리가 가진 전부를 걸어 이 공간을 바꾸기 시작했다. 기계를 들이고 작업실과 쇼룸을 인테리어중이다. 그나마 자신 있는 오프라인 매장 운영, 사입, 제작 등 모든 것을 총 동원해 브랜드 하나를 만드리라고. 지금까지 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우리가 잘하는 것이 명확하지 않았다. 그것을 찾아가는 데 너무나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릴 적, 잘하는 것을 찾지 못한 어른이 이해되지 않았는데, 이제 나는 그러한 어른이 되어 있었다. 성숙하지 못한 생각이었다. 지금도 잘한다고 자신하지 않는다. 다만 오래 걸리더라도 우리가 원하는 지점까지만 가기를 바랄 뿐이다.
3년의 시간
지금까지 오는데 무려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플리마켓도 그동안 이동하며 다니다 지금은 한 곳에 정착했고, 규모를 조금 넓혀 여성복까지 판매하게 되었다. 판매도 제법 잘한다고 생각한다. 운이 좋게 일을 하나 더 받아서 지금은 쓰리잡이 되었다. 한때 플리마켓이 부끄러웠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 시간 덕분에 지금 내가 오빠와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는 것에 만족한다.
아직까지도 주 직업과 부 직업 간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나를 직업 하나로 설명하기 어렵다. ”저는 뭘 하는 누구입니다. “라고 말해보고 싶기도 하다. 다 내 직업일 뿐이다. 독립해 내 벌이를 제대로 하기까지, 결혼을 앞두고 다시금 열심히 하자고 마음먹기까지 너무나 오래 걸렸지만. 아직 도달하지 못한 목표를 공유하고자 한다. 꿈을 바꾸는 사람들, 늦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이제 다시 무언가를 시작하는 사람들, 창업가들에게 도움이 될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이제부터는 실제로 인테리어를 진행하며, 가치를 스스로 매기고 공간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브런치에 기록하려 한다. 어떻게 발전할지는 알 수 없지만, 후에 취향이 맞는 분들이 찾아오길 바란다. 또한 우리의 시행착오가 관심 있는 분들께 작은 도움이 되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