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까 말까 고민될 땐 일단 안 하는 MD의 사건∙사고 예방 수칙
MD라면 누구나 인쇄 오류 등의 문제가 생겨 책을 일괄 교환해야 하는 일을 가끔 겪는다. 어떤 출판사 담당자는 내게 “구매 고객의 이름, 주소, 전화번호를 전달해주면 연락을 드려 사과한 후 직접 교환을 처리하겠다”라고 메일을 보냈다. 최선을 다해 CS를 처리하겠다는 선의의 제안이었다. 그러나 순간 나는 지옥의 문을 지키는 머리 셋 달린 개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고객의 개인정보는 ‘반드시 고객의 동의를 얻은 다음’ 출판사 등 외부 업체에 전달할 수 있다. 도서 구매자, 이벤트 당첨자, 오프라인 행사 참여자 등 어떤 유형이든 마찬가지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는 해킹에 따른 개인정보 유출 사건 때문에 법정에 선 뒤 억울함을 호소하며 청산가리를 삼킨 온라인 쇼핑몰 CEO 이야기가 나온다. 이만큼 치명적인 사태로 이어질 수 있는 실책이 불안전한 개인정보 취급이다. 개인정보 유출, 나와 회사의 파멸입니다!
마지막으로 ‘TOP 3’ 요소는 아니나 기본 중 기본에 해당하는 일을 추가한다. MD는 추천의 ‘적합성, 맥락, 설득력’ 확보를 위해 노력한다. 단적인 예로 건강 기능 식품이나 의약품 마케팅에는 굉장히 까다로운 광고 기준이 적용된다. 고객의 건강, 나아가 수명까지도 관련 있는 제품이므로 허위나 과장이 들어가면 안 되기 때문이다. 건강 분야 ‘책’도 같다. 건강 상식과 배치되는 내용을 과도한 확신을 담아 주장하는 책이 있다면 노출과 홍보에 주의해야 한다.
문학, 인문 등 단행본 분야의 책 또한 적절하지 않은 추천은 리스크로 연결된다. 한 번은 큰 기대를 모은 신작이 나왔다. 저자의 유명세, 수상 이력, 예상 판매량 모두 화려했다. ‘오늘의 책’에 올리려고 메모했다. 내용이 너무 잔인해 보여서 점검 차 꼼꼼히 읽어보았다. 끝까지 읽기 힘들었고, 유해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오늘의 책 후보에서 제외했고, 노출과 홍보도 하지 않았고, 기본 재고 관리만 했다. 얼마 후 그 책은 청소년 유해간행물로 지정되었다.
내용이 해롭지는 않지만 책을 조심스럽게 추천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내게는 『리틀 라이프』가 그랬다. 스포일러를 감수하고라도 상세하게 줄거리를 파악하고 다른 독자의 반응을 살핀 뒤 읽을지 말지 결정하는 것이 좋은 책이다. 이런 내용인 줄 모르고 읽었다가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소설의 ‘괴로움 지수’를 정할 때 『리틀 라이프』를 100으로 두고 비교하여 매긴다.
친구에게라면 이 책을 “야 그거 멘털 다 털릴 수 있으니 잘 생각하고 봐라”라고 솔직하게 설명하겠으나, 고객에게는 어떻게 소개할지 확신이 안 든다. 수위 높은 웹소설, 웹툰은 이 작품에는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니 유의하라고 안내하고 시작한다. 책도 비슷한 경고 문구를 책소개 상단에 표기하는 건 어떨까. 실제 이 정도 주의를 추가하지는 않았지만 ‘역주행 화제작’, ‘필독서’ 같은 꾸민 수식어를 붙여 『리틀 라이프』를 홍보하는 건 삼가고 있다.
영아였을 때 버려져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된 주인공 주드. 고난과 학대의 나날을 거쳐 기적처럼 대학에 입학하고 기숙사에 도착한다. 전 재산을 가방 하나에 모두 넣어 온 자신처럼 빈털터리인 친구도 있고, 반대로 가지지 않은 것이 없어 보이는 친구도 있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평범한 각양각색의 사람을 만나며 인생에서 교류라는 것을 시작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세상에 나가는 주드는 아픔을 치유하고 남 같은 행복을 맛볼 수 있을까? 예상은 비관적이다.
책을 읽으며 <첩혈속집>이 떠올랐다. 영화에서 주윤발은 병원에서 총격전을 벌이기에 앞서 신생아실의 모든 아기의 귀를 솜으로 막아준다. 총소리에 놀라지 않고 청력이 상하지 않도록. 이처럼 허구인 이야기 속이어도 인간에 대한 예의가 필요하다. 아무리 창작이라고 할지라도 한 사람의 인생을 가혹한 수난으로만 채운 작품은 경계하는 편이다.
『리틀 라이프』가 윤리적으로 옳은 작품인지 고민이 많았다. 옹호할지 말지 결정 내리는 것도 어려웠다. 지금은 ‘우호적 중립’에 가깝다. 2015년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이력의 영향이 컸다. 그리고 분명 고통스러운 책이기는 하나, 읽기를 지속하게 하는 아름다움 또한 들어 있다.
주드도, 주드를 돕는 주변 인물들도 투명할 정도로 순수하다. 제목을 『주드와 순수한 사람들』이라고 바꿔도 어울리겠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완벽한 존재라는 뜻은 아니다. 각자 연약하고 약점이 있다. 너무 감정에 솔직해서 쉽게 허물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모두의 내면은 진심으로 가득 차 있다. 『리틀 라이프』를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끝까지 읽은 사람도, 도중에 멈춘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각자 다른 견해로 책을 변호하거나 비판할 것이다. 한 가지 사실에는 모두 공감할 것 같다. ‘세상에는 천사, 악마, 인간이 있고 그들은 서로의 삶의 일부를 공유하며 살아간다.’ 이 사실을 『리틀 라이프』는 일깨운다.
추천할 책을 고르는 일인 ‘선서’의 중요성을 나 자신과 동료에게 반복해 강조한다. 이 역시 각종 클레임을 방지하는 수많은 방법의 하나이다. 서점이든 출판사든 고객을 상대하는 모든 회사는 마케팅 활동 중에 발생하는 사고 사례를 수집하고 체계화해서 대응안을 만들 필요가 있다. 단, 매뉴얼 작성은 완료가 아닌 시작일 뿐이다. 오가작통법으로 마을의 치안을 다스린 선조의 지혜를 빌려 동료끼리 서로의 일을 크로스 체크하며 안전제일의 업무 내재화를 이뤄야 한다.
피곤할수록 판단력이 흐려져 실수할 확률도 높아진다. 조직 차원에서 업무를 적절하게 배분하고 팀원의 컨디션을 관리하는 건 사건, 사고를 차단하는 핵심 조치 중 하나다. 시스템 개선도 필요하다. 휴먼이 다 할 수는 없다. 인공지능의 도움도 받자. 돈 좀 들어도 기술의 힘을 적극 빌리는 것이 남는 장사다.
예방을 위해 모든 사항을 꼼꼼하게 체크했는데도 돌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팬데믹 시기에 작가 만남 행사가 갑자기 취소되기도 했다. 이처럼 천재지변이나 불가항력 사유로 인한 일이든, 내게 귀책 사유가 있는 일이든 불편을 겪은 고객에게 사과, 양해 메시지를 보내는 건 MD의 주요 업무 중 하나다.
나는 지금까지 동료가 쓴 사과문을 많이 첨삭해주었다. ‘노벨 사과문상’ 같은 것이 있다면 영국 도박업체가 나를 유력 후보로 올렸을 것이다. 그만큼 긴 MD 생활에 걸쳐 사과문을 많이 써봤기 때문이다. 이 말이 뜻하는 것은 즉……(더 말하면 괴로우므로 생략).
자신의 담당 분야가 있고 마케팅 결과물을 세상에 공개하는 MD의 일은 언뜻 화려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는 일이 전부가 아니다. 고객이 감정과 금전과 시간의 손해를 입지 않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통제해야 하는 일이 많다. 간혹 사고가 나면 수습에 전전긍긍하며 잠을 못 이룰 때도 있다.
“할까 말까 할 때는 해라.”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마주하면 일단 응하라는 뜻이다. 동의한다. 반면 리스크 차단에 있어서는 조금이라도 불확실하다면 나는 “하지 마라”를 택한다. 안전하다는 확신이 들어야만 실행한다.
‘위험 최소화 법칙’을 금과옥조처럼 따르는 세 가지 이유. 우선 겁이 많아서다. 사고가 나면 수습이 힘들어서다. 나 중심의 사고를 내려놓고 생각하면, 고객이 피해 겪는 일은 적으면 적을수록 좋은 것이 당연해서이기 때문이다.
글쓴이: 구환회
교보문고 소설 MD. 십수 년간 성공과 실패 사이를 오가며 쌓은 MD로서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오늘도 판매 실적을 향해 정진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