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시간의 소중함
영장에 있는 목욕탕에서 알아가는 시간의 평등(2편)
누군가가 말했다. 책에서 봤을까?
평등하게 주어지는 것은 시간이라고.
내가 수영장을 다닌 지 벌써 16년이 되어간다. 우리 수영장에 있는 목욕탕은 특히 어르신들이 많이 찾아온다. 온탕, 냉탕, 사우나 시설이 있어서 남녀 어르신 할 것 없이 많은 분들이 이용하신다.
평등하게 주어진 것이 시간이라고 했던가?
그런데 그 주어진 시간을 거슬러 계속 간다면, 언젠가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 어르신들이 있다.
나는 한 어르신을 기억한다. 그분은 매일 수영장에 오셔서 온탕과 사우나를 즐기셨다.
날마다 온탕에서 뵙다 보니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만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그 어르신이 무슨 일을 하시는지, 어떤 일을 해오셨는지, 어디에 사시는지, 자녀는 있으신지, 혹은 혼자 사시는지... 그런 것들이 궁금해야 하는데, 나는 물어보지 않았다. 그저 만나면 인사만 하는 사이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그 어르신이 보이지 않았다. 자주 뵈어야 할 분인데, 목욕탕에서 인사를 해야 하는데, 보이지 않아서 여러 어르신들께 물어보았다.
"그 어르신 가끔 목욕탕에서 쓰러지시더니, 결국 하늘나라에 가셨대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매일 보던 그분이, 건강해 보이던 그분이 이제 더 이상 이곳에 없다니.
왜 진작 말을 걸지 못했을까.
왜 그분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을까. 단지 "안녕하세요"라는 인사 한마디만 나누다가 이렇게 헤어지게 될 줄은 몰랐다.
세월이 지나니 그 어르신도 결국 하늘나라로 가시는구나. 나 또한 그 어르신처럼 세월이 지나면, 어느 날 이 목욕탕에서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나보다 나이가 적은 후배가 어느 날 내가 잘 보이지 않을 때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겠지.
"그 사람 어디 갔어요?"
그러면 옆에 있는 사람들이 대답하겠지.
"그분 하늘나라 가셨어요."
목욕탕에서는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이다. 나 또한 지금 그 어르신이 보이지 않아서 물어봤을 때 그렇게 소식을 들었던 것처럼.
목욕탕에서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이이고, 인사만 하는 사이인데도 보이지 않으니 궁금한 것을 보면, 사람의 만남이라는 것이 시간 속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16년 동안 수영장을 다니면서 수많은 어르신들을 만났다. 어떤 분들은 친하게 지내고, 어떤 분들은 그저 인사만 나누는 사이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한동안 보이지 않으면 그 어르신이 궁금해진다.
"그 할아버지 요즘 안 보이는데 어디 가셨나?"
"아프신가 봐요."
"아, 요양병원 가셨대요."
"그분 돌아가셨어요."
이런 대화들이 목욕탕에서 오간다. 처음에는 무심코 지나쳤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대화들이 가슴에 와닿기 시작했다.
시간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주어진다. 부자에게도, 가난한 사람에게도, 건강한 사람에게도, 아픈 사람에게도 하루 24시간이 똑같이 주어진다. 하지만 우리는 그 시간을 가지각색으로 사용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그 시간을 의미 있게 사용하고, 어떤 사람은 허비하고,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을 돕는 데 쓰고, 어떤 사람은 자신만을 위해 쓴다.
시간이 흐르면 우리 모두, 후배도, 선배도, 친구도, 가족도 언젠가는 하늘나라로 가게 된다. 이것만큼은 모두에게 평등하다.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평등하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아닐까.
시간을 다 사용하지 못하고 떠나는 사람도 있고, 주어진 시간을 온전히 누리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시간을 어떻게 채웠느냐다.
선하게 살았는가. 의미 있게 살았는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는가. 사랑을 나누었는가. 좋은 기억을 남겼는가.
목욕탕 어르신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나는 생각했다. 내가 떠난 후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아, 그 사람 참 좋은 사람이었어."
"맨날 밝게 인사하던 사람."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도와주던 사람."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이 진정으로 의미 있게 산 삶이 아닐까.
지금도 수영장에 가면 새로운 어르신들이 오시고, 오래된 어르신들은 하나둘 보이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시간은 정말 평등하게 주어지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채우느냐는 각자의 몫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이제 좀 더 적극적으로 사람들에게 말을 건다.
"오늘 날씨 좋네요."
"건강하세요?" 간단한 말이지만,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하루의 위안이 될 수 있다.
또한 내 제자들에게도 가르친다. 시간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주어지지만, 그 시간을 의미 있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장애가 있어도, 어려움이 있어도, 주어진 시간 속에서 최선을 다하며 선하게 살아가자고.
목욕탕에서 만난 그 어르신은 내게 큰 가르침을 주셨다. 비록 깊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그분의 부재가 나에게 시간의 소중함을, 만남의 소중함을, 그리고 인사 한마디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 주었다.
평등하게 주어진 시간,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선하게, 의미 있게, 사랑으로,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언젠가 내가 이 목욕탕에서 보이지 않게 될 그날, 누군가 "그 사람 참 좋은 사람이었어"라고 말해준다면, 그것이야말로 평등하게 주어진 시간을 잘 사용한 증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