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큰 축제 연습, 그리고 영원한 무대(1편)

삶의 방식

by 윤호근

큰 축제 연습, 그리고 영원한 무대(1편)


어릴 때 나는 나름대로 악기에 소질이 있었다. 여러 가지를 조금씩 다루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경험이 훗날 제자들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 제자들이 악기를 통해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독립된 삶을 살아갈 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학교에 밴드부를 구성했다.




2003년쯤이었을까. 우리 학교는 2박 3일 동안 큰 축제를 열었다. 첫째 날은 과별로 특성을 담아 발표하는 행사, 둘째 날은 과별 스포츠 대회, 셋째 날은 게임 대회. 그중에서도 둘째 날 저녁 전체 학생 대상 노래자랑과 밴드부 발표는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았다.


노래자랑은 예선을 거쳐 12명의 결승 진출자가 무대에 오르고, 최종 우승자에게는 엄청 큰 상품이 주어졌다.


나는 6개월 전부터 밴드부 멤버를 모집했다.


기타, 드럼, 베이스 기타, 그리고 싱어. 각자의 자리를 채울 학생들을 찾아야 했다.


드럼에는 스마트전기전자를 전공하는 왜소증 지체장애 학생이 지원했다. 기타는 콘텐츠디자인을 전공하는 정신장애 학생이 손을 들었다.


베이스 기타와 키보드는 지원자가 없어서 내가 맡기로 했다. 싱어는 우리 직원 중 한 분이 노래하기로 했다. 수업이 끝나면 매일 2시간 이상 연습했다.


드럼을 연습하는 제자는 오래 앉아 있지 못하는 아픔이 있었다. 30분 연습하고, 쉬고, 또 30분. 진행성 장애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은 더 힘들어질 것이었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드럼을 배우려는 그 모습이 안쓰러웠다. 하지만 열심히 하려는 모습에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잘 가르쳐서 꼭 무대에 올라가자." 나는 그렇게 다짐했다.


기타를 배우는 정신장애 제자는 날씨에 따라 기분이 달랐다. 좋았다가, 좋지 않았다가. 기분이 좋을 때는 조금 더 시간을 두고 가르쳤다. 기분이 다운될 때는 조금만 연습하고 기숙사로 보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났다.


드디어 무대에 올라가는 날이 왔다. 우리 직원이 노래를 부르고, 드럼, 기타가 함께했다. 나는 베이스 기타를 치다가 키보드를 치다가, 노래에 따라 악기를 바꿔가며 무대를 이끌었다.


전교생 앞에서 6개월 동안 연습한 것을 보여주었다. 실수도 있었고, 미숙했다. 하지만 제자들과 함께하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았다. 그 순간은 지금도 선명하다.




제자들은 졸업 후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장애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걱정이 됐다.


그러다 들은 소식. 왜소증 제자는 하늘나라로 갔다. 정신장애 제자는 병원에 있다고 했다. 너무 슬펐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장애로 인해 소외받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세상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왔다고 믿었다. 하지만 장애와 병으로 인해 짧은 생을 살아야 했던 제자를 생각하면 너무 슬프다.




나 또한 힘이 든다. 좋은 세상에서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삶의 방식일 텐데, 운명이 주어지는 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나는 기억한다.


무대 위에서 드럼을 치던 그 제자의 땀 흘리는 얼굴을. 기타를 치며 조금씩 자신감을 찾아가던 그 제자의 미소를. 6개월의 연습, 하루의 무대. 그것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혹시 그들의 마음속 어딘가에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을까.


나는 오늘도 제자들의 마음에 좋은 기억으로 남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이고, 내가 해야 할 전부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기차역에서 만난 자랑과 고독